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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마녀 Jun 12. 2020

갱년기는 제3의 성이 아니다

남자가 운다고 ㅇㅇ이 떨어질까?

 

  그는 세 번째 울음에 무너졌다. 첫울음에 이 세상 신고식을 하였다. 위로 연년생 형, 누나가 있는 터라 그는 할머니 품으로 기어들었다. 힘든 군 생활에도 울지 않던 그는 나와의 연애에 두 번이나 울었다.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서, 그의 생일은 한가위 3일 전이다. 둥근 보름달 기운을 못 받아서인지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신혼 시절에는 장인어른과 생일이 한날이라 장인어른 생신 상에 같이 축하를 받다가, 지금은 오롯이 그만의 미역국과 케이크가 그를 축하해주고 있다.        


  

  그에게 나는 첫사랑이자 순결한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많았지만, 표현하는 것이 아주 서툴렀다. 그런 그에 비해 나는 마음먹으면 돌진하는 형이라 뜨뜻미지근한 그가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사랑 표현의 차이로 말다툼하다가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어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작은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버스 태워 보내며 우는 그의 모습에, 나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두 번을 울면서 나보고 대단한 여자라고 했다.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 하나 없던 사람이 여자로 인해 울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울었다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울었다고 많이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했다. 나하고 4살 차이가 나는 그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남자가 울었다고 ㅇㅇ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는 면도하지 않은 얼굴로 식구 얼굴에 비비적대는 것을 좋아했다.

  “아, 저리 가, 따가워.” 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면 나와 애들의 태도가 재미있는지 더 비비적거렸다. 아이가 어릴 때는 더 그랬으며, 그의 수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듯했다. 회식이나 친구와 술을 먹고 오는 날이면, 수염과 알코올의 냄새는 이상하게 섞여 비릿한 젊음이 산재하는 것 같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사랑의 갈증에 할머니 품으로 기어든 것처럼, 우리에게서 그 흔적을 찾곤 하였다. 아빠를 기다리다 간신히 잠들었던 아이는 아빠 수염에 잠이 깨 울먹거렸고, 나는 아이를 다시 재우기 위해 그의 얼굴을 막았다. 그의 2차 공격은 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를 어르고 달래서 재워야 했다.



   삼 년 전부터 그는 이상했다. 70~80년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서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하면, 그냥 너무 슬퍼서라고 했다. 얼굴도 열기가 확 올랐다 내렸다 했으며, 혈압도 널을 뛰었고, 그의 소변 발도 그런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 조용했으며, 하얀 수염도 띄엄띄엄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런 증상이 이상하다고만 했다. 밖에서 친구와 어울려 놀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정년퇴직한 남자처럼 방콕 생활을 즐겼다. 한마디 두 마디 잔소리도 늘어갔으며, 별것도 아닌 일에 자주 삐지곤 하였다.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서 똬리를 틀었다.     



  나는 그의 갱년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30, 40을 넘기면서 한 번도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다. 우리는 흔히 갱년기는 경사가 완만한 비탈길을 내려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는 완만할 수도, 가파른 비탈길일 수도 있다. 그의 경우는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미처 자신의 갱년기에 적응할 새도 없이 그는 퐁당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완만한 경사가 되도록 건강기능식품을 사주고, 되도록 그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 영화를 보고 똑같은 감정으로, 똑같은 장면에서 똑같은 감정으로 우는 그를 보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게 많이 울지 않으나, 여전히 눈물이 많기는 하다. 최근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드라마를 자주 보던 그의 성향은 나는 자연인 이다나 미국판 CSI를 본다. 이제는 공적인 회식 자리 아니고는 칩거 생활을 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밖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웅크리고만 있는 그의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다. 흰 수염이 반이나 덮어버린 턱은 아무리 비벼도 따갑지 않으며, 수염이 자라는 속도는 거북이걸음을 많이 닮았다. 그는 우리에게 수염을 비비지 않으나, 나는 가끔 그의 수염을 만지작거린다. 그는 그렇게 울음과 갱년기를 맞바꾸었으며, 세월에 순응하는 듯하다. 이제는 딸 바보라는 감투까지 하나 쓰고 있다.           


  우리는 갱년기가 오면, “이렇대, 저렇대” 하는 이야기는 많이 해도, 어떻게 잘 넘겼는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의 인식이 남자는 항상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항상 여자다워야 하는 이런 고정관념에 잡혀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남자라고 해서 눈물을 참을 필요는 없다. 사람은 때로는 힘들면 울거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 좀 더 나은 자신과 대면할 수도 있고, 자신을 성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와의 결혼생활 짬밥으로 그를 알아차리고 응해줄 뿐이다. 그는 순응해가는 중인데, 나는 이제 갱년기라는 폭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호르몬 변화에 따른 감정의 변화, 갱년기로 인한 급격한 체력 저하, 나잇살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끝나고 있다는 것, 여자도 아닌 남자도 아닌 제3의 성(性)으로 사는 것, 우울증, 수면장애 등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가장 고민되는 문제는 나의 글이나 시에도 이런 영향들이 올 거라는 것이다. 준비한다고 해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때로는 뗏목으로 급물살을 타야 하는 것처럼 그냥 흘러볼까 한다. 뗏목을 타서 물이 조금씩 계속 새어 들어오겠지만, 한 번에 홀랑 젖지 않도록 최대한 유지를 하며, 순리(順理)라는 강물을 즐겨볼까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사랑해주고, 즐기고 익숙해지다 보면 멋있는 중년을 맞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3의 성이 아닌 조커(Joker) 같은 패가 되고 싶다.     




  최근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가 크게 와 닿는다. 아이들이 일찍 객지 생활을 하는 관계로, 이웃은 제2의 신혼을 즐기라고 하는데, 나의 자작시 중년의 사랑에서처럼 눈빛 호흡 하나로 같이 발을 맞추고 싶을 뿐이다. 가끔 하얀 수염이 난 그가 귀여워 보여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남자도 때론 귀여울 때가 있는 듯하다.          



오늘도 그의 수염을 쓰다듬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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