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마녀 Sep 18. 2020

당신 때문이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은 색다른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나는 가끔 화분 분갈이를 하며, 흙의 냄새와 촉감을 즐긴다.     



  식물이 현재 자라고 있는 화분에서 많이 컸거나, 흙 때문에 물 빠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성장을 못 할 때는 큰 화분으로 갈아주거나, 화분의 흙을 갈아주어야 한다. 나는 화분 분갈이를 하면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흙냄새에 빠지며, 어렸을 적 흙을 만지며 놀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부드러운 흙을 만지고 있으면, 뭉쳐지는 흙덩이 하나 없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맛에 응어리진 나의 마음도 봄눈 녹듯이 없어진다. 아이가 어릴 때 놀이터에 가면, 아이가 흙장난을 할 때 나도 같이 흙을 만지며, 아이랑 같이 놀곤 했다. 아이가 점차 크면서 놀이터 바닥도 흙이 아닌 우레탄 고무매트로 바뀌면서 이런 맛도 사라져서, 흙을 만질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오면서, 베란다에 비밀화원을 만들며 또다시 흙의 감촉을 즐기며, 나의 감정을 만지기도 한다. 흙을 만지고 있으면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 순수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나도 부드러우면서도 씨앗을 온전히 품어줄 수 있는 흙이 되기를 바래본다.     



   봄철에 이웃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스웨디스 아이비와, 풍란초, 오채각이라는 선인장을 받았다. 스웨디스 아이비의 경우는 몇 줄기, 풍란초는 몇 뿌리, 오채각은 작은 개체를 보내며, 그 끝을 휴지로 싸고 물을 축여 보냈다. 스웨디스 아이비와 오채각을 보고 이분도 식물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키우는 방식을 잘 알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에 따라서는 줄기나, 발디처럼 작은 잎 하나로도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줄기만 받은 스웨디스 아이비에 내린 뿌리와 잎에서 나오고 있는 작은 개체>



   처음 받았을 때는 분갈이용 흙도 없었고, 화분도 마땅한 것이 없어서 꽃가게에 가서 화분으로 옮겨 심어 왔다. 시간이 점차 흐르며 하나둘 비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분갈이용 흙을 하나 사서 흙을 갈아주기로 했다. 스웨디스 아이비 5개 중 2개는 죽어가고 있었고, 풍란 초도 비실비실, 오채각의 본 체구는 죽어가고 있었다.      



  화분 흙을 갈아 주면서 보니, 물 빠짐이 잘 안 되는 흙이어서, 뿌리가 점점 썩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갈이를 할 때는 식물의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뿌리에 붙어있는 흙을 털지 말고, 잔뿌리에 붙어있는 흙덩어리까지 옮겨 심는 것이 좋다.

     

 

화분 분갈이를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화분 밑바닥에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화분 거름망을 하나 깔아준다.

2) 식물 뿌리 길이를 보고, 뿌리 끝 높이까지 흙을 채워준다.

3) 식물의 뿌리 끝부분 높이까지 흙이 채워지면, 식물을 가운데에 넣고, 식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흙을 골고루 넣어준다.

4) 흙을 채울 때 지나치게 꼭꼭 누르면, 뿌리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므로 살짝 눌러 주어야 한다.

5) 식물을 옮겨 심은 후에는 뿌리가 새 흙에 정착할 수 있는 일정 기간(1~2일) 반그늘에 두었다가, 물을 준 후 옮겨주는 것이 좋다.     



  옮겨 심은 화분에서 식물이 잘 자라주면, 식물이 나의 손길에 제대로 꿈을 펼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분갈이 하나로 나도 조금은 이색적인 취미를 즐긴 듯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까칠한 흙의 촉감에 어지러웠던 마음도 몽글몽글 풀어지는 듯하며, 식물의 성장까지 그 기쁨은 3배로 와 닿는다.      



<스웨디스 아이비 분갈이 전 사진은 왼쪽, 오른쪽이 후 사진>



  물 빠짐이 좋지 않은 흙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나도 물도 못 흘려보내는 흙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나에게 언제나 흘러들지만, 보낼 것은 보내고 품을 것은 품어야 한다. 그래야 흙 자체의 쓰임새로도, 다른 씨앗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앗은 나의 아이, 키우고 있는 식물, 나 자신도 될 수 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고, 어른에서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매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른 마음, 때로는 자신의 역할에 따른 마음, 그때그때 아물지 않고 나이 먹어온 나 자신도 다독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키우던 식물이 잘 커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줄 때는 기쁜 마음이라 홀가분하게 분갈이를 해주지만, 식물이 제대로 잘 자라지 못하여 분갈이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에는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세심하게 따져서 분갈이를 해주어야 한다. 분갈이하며, 문제의 원인이 흙인지, 식물인지, 다른 원인인지를 따지는 것에, 아이 문제로 싸우는 나와 신랑도 떠오른다. 아이가 잘못한 것에는 서로 “당신의 이런 점을 닮아서 그래”(특히 나쁜 점)에서 시작해서 “당신 때문이야”라고 하기도 했고, 아이가 잘한 것에는 서로 자신을 닮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의 잘한 점이 자신을 닮았던, 안 닮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잘한 것을 나의 업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식물이나 아이가 잘 크는 데는 흙도, 식물도 다른 여건도 잘 맞아야 잘 크는 것처럼, 서로의 합심이 중요하다.       



<오채각 분갈이 전, 후 사진-왼쪽 사진의 기둥 구실을 했던 개체는 물 빠짐 안 되는 흙에 죽어가서 살릴 수 있는 개체만 오른쪽 사진처럼 살렸다>



   “당신 때문이야”라는 소리는 아이가 제 갈 길을 가면서 없어졌다. 20년의 결혼생활로 서로의 장, 단점을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누구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닮은 문제에 진을 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신랑은 큰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서 어깨 뽕이 많이 들어가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지만, 신랑의 어깨 뽕에 굳이 구멍을 내어 빼고 싶지는 않다. 아이는 신랑의 나의 합작품이니까 말이다. 공헌의 비중은 다르지만, 그 나름의 방식을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귀여운 맛이 없어진 지금, 신랑과 나 사이를 달래주는 것은 자그마한 식물 이야기이다. 물을 주는 것도, 안 좋은 잎 따주는 것도, 화분을 갈아주는 것도 다 내가 하지만, 꽃이 핀 이야기, 식물의 자라는 모습을 내가 재잘거리면 신랑도 열심히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요새는 가끔 나 대신 식물 집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나만의 취미생활로 끝날 줄 알았던 반려식물은 우리에게 또 다른 공통 관심사를 주기도 한다. 나는 반려식물을 키우는 초보 집사지만, 가끔 농사일을 도왔던 신랑은 고문 집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의 취미로 시작된 반려식물은 신랑과 공동 집사 생활을 하며, 또 다른 중년 일상을 공유해 가고 있다. 반려식물을 키우며 “당신 때문이야”에서 “당신 덕분에”로 많이 바뀐 듯하며, 이런 일상들이 많이 모이면 아이가 커가며 느끼는 허전함을 서로 달래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혼은 두 사람에서 출발해서 여러 가지를 뻗다가, 아이가 장성하면 또다시 그 초점이 지금 내 옆에 서있는 사람으로 옮겨지는 듯하다. 신랑과 나에게 또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진 지금, 같이 반려식물을 키우며 ‘서로에게 어떤 집사로 남을까?’하는 생각도 들며, 중년의 길목에서 우린 그렇게 서성거린다.    


 

오늘도 화분 분갈이나 해볼까?




----------------------

같이 읽으면 좋은 시


https://brunch.co.kr/@littlewt82/47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의 개파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