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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마녀 Oct 13. 2020

나는 왕초보다

작가가 되는 길


  

   초보는 초보라서 버벅대는 것일까? 자신감이 없어서 갈팡질팡하는 것일까?     



  9월 마지막 주 볼일 보러 갔다가, 잠시 들린 바닷가에서 명아주와 비슷한 식물을 보았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명아주는 초록색이었는데, 소금기를 먹었는지 잎의 색이 빨간색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에서 만난 명아주 비슷한 식물(명아주 일지도?)



   들녘이나 공터, 아파트 단지의 작은 틈에도 명아주는 그 자리에 있다. 명아주나 강아지풀, 우산 모양을 만드는 풀은 나에게 너무나도 친숙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늘 가지고 놀던 것이며,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도 이따금씩 보던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하루는 수염뿌리와 원뿌리, 곁뿌리 식물을 배운다고 명아주와 강아지풀을 가져오라 하였다. 그날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명아주는 쌍떡잎식물에, 원뿌리, 곁뿌리가 있는 곧은 뿌리이고, 강아지풀은 외떡잎식물에 수염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명아주보다는 강아지풀이 훨씬 더 잘 뽑혀서, 나에게 수염뿌리는 힘이 없는 뿌리로 생각되었다.      



수염뿌리인 강아지풀과, 우산 모양으로 만든 풀



    이런 수염뿌리는 가끔 옥수수를 볼 때도 생각나서, 한여름에 옥수수를 내어놓으면, 자신의 의지를 쉽게 꺾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애달픈 사랑 맛에 한때 푹 빠진 적이 있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 것처럼 여름내 쟁여놓고 먹던 시기도 있었다.     



  블로그를 하며, 브런치를 운영하는 나는 봄철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블로그를 하기 이전부터 꽃,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시로 적은 적도 있었고, 블로그에 나만의 색을 입히게 위하여 꽃, 식물 사진을 찍어 내가 올리는 글과 연계하여 쓰는 경우가 많았다. 봄 향기가 물씬 나는 어느 날, 동네를 돌며 장미와 찔레꽃 사진을 찍었고, 찔레와 장미에 대하여 올리려다 제때 못 올리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것은 찔레꽃과 장미꽃은 분류는 둘 다 장미과로 되며, 꽃이 피기 전에는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구분이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찔레꽃이 가시, 잎의 크기가 더 작다. 블로그 이웃 답방을 다니다가, 이웃이 올린 글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웃이 올린 글은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분이어서 식물의 생태, 사진, 식물의 성장 과정 등 여러 가지를 적어 놓으셨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는 블로그의 이웃이 브런치 독자가 된 예도 있어서, 블로그 쪽은 나의 사유를 조금씩 적고 있으며, 블로그와 브런치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서 같은 글을 두 번이나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찔레꽃과 장미 사진은 결국 서랍 속에 파묻혔다. 그때는 그냥 찔레꽃, 장미로 구분하지 않고, 장미과로 불리기를 원했기에 포기했고, 초보라 두리뭉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왼쪽은 찔레꽃, 오른쪽은 장미. 가시, 잎의 모양, 줄기의 생김새는 같다.



   시인 등단을 하고 감성은 조금 더 오픈되었고,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식물, 꽃 사진에 요리, 블로그 릴레이, 여러 이야기를 연계해서 글을 썼다. 브런치에서도 찔레꽃 사건은 발생이 되었다. 블로그 때랑은 충격의 대미지가 달랐다. 나의 작가의 길, 시인의 길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막힌다면 나의 감성은 점점 닫힐 것이고, 이래서 못쓴다, 저래서 못쓴다고 할지도 몰랐다. 순간 울컥하며, 가을 들녘에 수염뿌리를 거나하게 보이는 옥수수 밑동이 생각났다.      



  어느 브런치 작가가 나의 글 댓글에, 자신의 브런치 얘기를 하며 놀러 오라고 적은 것이다. 나는 이 댓글을 보며, 느낌이 이상했다. 블로그를 하며 쐐 한 느낌의 댓글을 알고 때문이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브런치 북 도전 글은 내가 블로그 하면서, 상위 1%의 블로그를 유지했던 방법과 나의 꿈, 블로그 내내 함께 했던 꽃의 이야기를 연계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초보라 브런치 북 도전의 글을 쓰면서도, 그런 종류의 글이 있는지 브런치에서 검색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검색을 하면, 더 갈팡질팡 할 수도 있기에 하지 않았다. 책 방향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현재 쓰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생각도 들어 우울하고, 비참하기도 했다. 여전히 찔레와 장미는 동격 같았다.      



  딸과는 추리소설, 읽는 책, 추리 드라마, 요리 등 여러 가지를 같이 나누어서 이번도 딸과 여러 얘기를 했다. 브런치 초기의 글은 발행하기 전 딸이 읽어주고, 독자의 눈으로 얘기를 해주어 브런치 글쓰기 실력이 좋아진 것도 있다. 글의 소재, 주제 등에 대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엄마,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 그냥 해”라며, 딸은 무심한 듯 우아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간단하기도 하겠다”라고 나는 말을 했다. 딸의 말에 쉽게 뽑히는 강아지풀이 또다시 생각났고, 바닷가에서 본 명아주도 생각났다. “그래 썩은 무를 자르자”라는 생각에, 댓글에 현재 책의 방향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이 브런치 북 도전 기간이 아니라면, 또 다른 방식을 취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올린 ‘꽃들에게 희망을’ 댓글에 나의 글이 조금씩 힘을 얻는 것을 알았다. 브런치의 글을 블로그에 링크하고, 못 올렸던 장미, 찔레꽃 사진, 그것을 못 올렸던 이유,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도 블로그 글에 적었으며, 온전히 작가가 되는 것과 시인에서 ‘글 쓰는 여자’로 바뀐 초점이 피부로 와 닿는다고 적었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글쓰기에 대해 나와 있는 책도 많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글쓰기 책을 그만큼 많이 읽어봐야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찔레꽃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인데, 왜 작가마다 냈을까? ‘맥락은 비슷할 텐데’ 하는 생각과 ‘디테일’도 생각났다. 꽃이 피기 전 가까이에서 봐야 구분되는 찔레꽃과 장미꽃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녹여냈기 때문에 그 많은 글쓰기 책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의 치트키로 해서 쓰세요’라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잘 들춰보면, 같은 소재라도, 자신만의 언어로 입히기에 자신의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길만 그러할까? 초행이면 다 그렇지 않을까? 내비게이션도 봐야 하고, 좌, 우 백미러, 룸미러, 전방 주시도 해야 하니, 초행의 길은 버벅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수염뿌리가 아닌 원뿌리와 곁뿌리가 있는 곧은 뿌리로 나의 길을 가려한다. 소금기가 묻어있는 땅에서도 자신을 곳곳이 세우며, 자신이 온전히 그곳에 있음을 알리는 명아주처럼 말이다.



명아주야, 힘내게 해 줘서 고마워.


장미와 찔레꽃은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시



-. 봄꽃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정당대회로~


https://brunch.co.kr/@littlewt82/8




-. 700년을 뛰어넘은 연꽃의 이야기


https://brunch.co.kr/@littlewt82/20




-. 여름날 부채꽃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https://brunch.co.kr/@littlewt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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