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가 올 때

by 꼬마마녀 심명숙


저의 길이 닿는 곳의 사진과, 사진에 대한 저의 생각과, 떠오르는 시를 올려요. 여기 올리는 시는 저의 시는 아닙니다. 시인이다 보니, 시를 좋아해서 어떤 장면을 볼 때 머릿속에 시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저랑 같이 길을 나가보실까요?


플라타너스 열매와 잎


가을이 살포시 다가오는 듯하여, 산책을 나섰어요.

동글동글한 열매와 잎이 보이네요. 도로변을 따라 길을 걷게 되면 흔히 보이는 이 열매와 잎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런 열매를 떨어뜨리는 것은 플라타너스 나무예요.

버짐 나무과의 버즘나무는 낭만의 나무이다. 그러나 버즘나무는 낭만을 떠올리기에는 뭔가 부족한 이름 같다. 반면에 플라타너스라 부르면 낭만을 떠올릴 수 있을까? 버즘나무는 한국식 이름이고, 플라타너스는 학명이다. 버즘나무는 이 나무의 껍질을 강조한 이름이고, 플라타너스는 큰 잎을 강조한 이름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플라타너스를 낭만의 나무로 인식하게 한 것은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와 김수용 감독의 영화 「만추」(1981) 일지도 모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낭만의 나무, 플라타너스 (세상을 꾼 나무, 2011. 6. 30., 강판권)


위의 글을 보면 버즘나무는 한국식 이름이고, 플라타너스 나무는 학명이라고 하며,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에 낭만의 나무가 되었다고 하네요.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문예』, 1953. 6







플라타너스 열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공을 연상케 해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심어져 있었어요.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은 시원하고 좋았지만, 송충이가 많아서 싫어했던 기억도 나요.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송충이로 장난을 쳤던 기억도 나요. 플라타너스 나뭇잎은 다른 잎보다 커서, 이 잎으로 얼굴이 가려지나 해서 얼굴에 되어보기도 했어요.

플라타너스의 열매로 서로 부딪치게 어떻게 될까 하며, 부딪쳐 보기도 했어요.

플라타너스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실까요?





위의 사진보다는 잎도, 열매도 말라 보이네요. 나무에서 떨어진 지 조금 된 듯하네요. 열매와, 잎, 떨어져 있는 가지가 서로 다른 모습인데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플라타너스를 뒤로 하며, 가을 발걸음을 재촉해 볼까요?





이번에 만난 것은 나무의 밑동만 남아있네요. 지난여름의 흔적 같지는 않고, 안쪽까지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이 조금 된 듯해요. 자신의 밑동을 보이면서도, 주변의 풀과 떨어져 있는 잎에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 듯 해요.

나무 밑동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생각나요.



집을 짓고 있는 거미



이번에 만난 친구는 거미네요. 봄철 우연히 만난 글에서 거미가 다른 시각으로 느껴졌으며, 거미는 징그럽다에서 거미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따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 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작 문학상 수상 작품>




이 시의 거미를 보고, 거미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며, 거미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시로 썼어요.

시의 제목은 길이며, 이 시로 시인 등단을 했어요. 이 시가 궁금하신 분은 이 글 끝에 링크해 놓을게요.


여름에는 거미가 어머니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산책에서는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리기를 한없이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며. '기다림'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기는 이끼도 있네요. 이끼와 플라타너스 열매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나무뿌리가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듯해요. 이끼에 대하여 학창 시절 재미있게 배우기는 했지만, 이끼에 대한 통념과, 이끼를 안 좋게 비유하는 것이 많아서 좋게 와 닿는지는 않았어요. 어느 브런치 작가의 이끼에 대한 글을 보며, 이끼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그때 시인 등단에 도전하고 있던 중이어서 '도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 같이 읽으면 좋을 시 - 시인 등단작품


https://brunch.co.kr/@littlewt8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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