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입고 있던 흰 티셔츠를 벗고 검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지금 시각은 9시 55분. 집에서 비상구 계단까지는 내 걸음으로 길어야 1분. 누군가 어디에서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입고 있는 파란색 트레이닝복 바지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옷장을 뒤적여 검은 반바지를 찾아냈다. 위아래가 너무 검은가 싶은데 이렇게들 많이 입으니까 괜찮겠다 싶어 얼른 갈아입었다. 지금 시각 9시 57분.
엄마는 드라마를 볼 시간이니 내게 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각 9시 58분. 이제 슬슬 나가보자.
방문을 열고 나서니 엄마도 드라마 볼 채비 중이다. 엄마가 나를 쓱 돌아보기에 나는 손을 한번 들어 나갔다 오겠다는 신호를 했다. 엄마는 내게서 거둔 시선을 티브이로 옮겼다.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늦은 장마에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시원하다. 나는 속으로 박자를 세며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아파트 복도를 따라 켜진 불빛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빗소리를 들으려는지 창문을 열어놓은 집들도 많다.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비상구 계단으로 향하는 문 앞까지 왔다. 너무 한 번에 여기까지 걸어왔나 싶어 잠시 엘리베이터를 의미 없이 바라본 뒤 몸을 돌려 비상구 문을 열었다.
그가 서 있다. 그 역시 어두운 옷차림이었고 돌돌 말린 검고 커다란 우산에서 빗방울들이 한데 모여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바짓단은 젖어있었고 한기를 느끼는지 얼굴은 창백했다.
나는 뒤를 돌아 다시 아파트 복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가 뒤에서 나를 따랐다. 내 뒤에 그 남자가 서 있다는 사실이, 빗소리가 요란하다는 사실이, 박춘수 집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느껴져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804호를 지나, 우리집 앞을 지나 드디어 802호 앞에 다다랐다. 그의 집 불은 꺼져있었고 나는 들어가자마자 불을 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벨을 누르기도 전에 발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타이밍을 맞춰 문을 열었다. 우리 셋 중 누구에게도 표정이랄 것이 없다. 누군가 이 풍경을 본다면 참으로 괴이하다 생각할 만큼.
802호 현관문이 닫히고 까만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마 전 했던 생각을 다시 상기했다. 박춘수와 저 사내와 나는 우연히 처음 만났고, 저 두 사람이 내게 앙심을 품을만한 인연이 우리 사이에는 없으며, 엄마 역시 그럴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안전하다.
박춘수가 거실의 불을 켰다. 그의 집 불빛은 언제봐도 아늑하다. 그가 거실 중앙의 테이블로 향했다. 나와 그 사내도 신발을 벗고 테이블로 향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박춘수였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물, 콜라 중에서 어느 걸로?”
말이 존대인 것을 보니 그 사내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답했다.
“그냥, 물로.”
“저는 콜라.”
나는 갑자기 입에 단 맛이라도 있으면 살 것 같아 묻지도 않은 질문에 뱉어내듯 대답했다. 박춘수가 콜라 두 캔과 생수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테이블로 향했다. 나와 그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는 박춘수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보니 나와 그 남자가 나란히 앉고 우리의 맞은편에 박춘수가 앉았다. 나는 자리를 옮기려다 그 남자에게는 제일 편안한 배치이겠다 싶어 그만두었다.
박춘수는 말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 역시, 말 없이 자기 앞에 놓인 생수병을 바라보았다.
“이용선이오.”
그가 말한 것은 고작해야 이름뿐인데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되자, 차갑다고 느꼈던 그의 표정에도 온기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박춘수입니다.”
박춘수의 대답에 나도 이름을 말해야 하나 싶어 잠시 몸을 들썩였다가 말없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덕에 이 대화는 두 사람의 것이고, 나는 다만 듣기 위해 초대받은 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이용선이 입을 열었다.
“길게 말을 나눌 여유는 없고, 젊은 양반은 괜한 고생 말고 서울로 돌아가시오.”
“...고생이라뇨, 제가 무슨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박춘수의 대답에 이용선이 고개를 들어 박춘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용선이 화가 났나 싶었는데 곁에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것은 분노라기보다 걱정에 가깝다. 이용선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쪽이 당한 일은 억울하겠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소.”
“제가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흔들리는 이용선과 달리 박춘수는 동요조차 없다. 표정은 고요하고 반문하는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단단하다. 이용선이 말이 없자 박춘수가 다시 말했다.
“다시 정확하게 여쭤보지요. 제가 당한 일이, 왜 억울한 일입니까?”
이용선은 대답 대신 오른쪽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반으로 접힌 종이쪽지를 박춘수 앞으로 밀어놓았다. 박춘수는 잠시 그 쪽지를 바라만 보더니 이용선을 한번 차갑게 쳐다보고는 종이쪽지를 펴 보았다.
쪽지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그의 미간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고 그 표정 그대로 박춘수는 이용선을 노려보더니 종이쪽지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흘긋 보니 아이디와 비번이 적혀있었다. 박춘수가 물었다.
“저한테 협박하러 오신 겁니까?”
이용선은 박춘수의 물음에 가만히 있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했다.
“그 반대요. 돌아가라는 내 말을 좀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눈에 안 띄게 적당히 요양하다가 올라가소. 그, 행복군민위원회는 당장 그만 두고. 나도 더는 얽히기 싫어 그렇소. 당신이든 누구든 전부.”
이용선의 말에 박춘수가 몸을 의자로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아무래도 말씀하시는 모양새가 당사자는 아니신가 봅니다. 누구 심부름으로 오셨습니까?”
이용선이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대화 중단에도 박춘수는 이용선이 현관문을 향해 가기까지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용선이 방금 앉아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이대로 이용선이 가버리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치듯 물었다.
“병원엔 왜 오셨었어요!”
이용선이 나가려다 말고 멈춰섰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다시 물었다.
“은옥 아줌마네 가게는 왜 있었고, 병원에는 왜 왔고, 왜 들어오지도 못하고, 왜 도망치고, 왜 그랬어요? 그것도... 박춘수 씨하고 상관있는 거예요?”
마지막에 덧붙인 나의 말에 박춘수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이용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용선이 천천히 돌아서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용선의 눈가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맞은편에 선 우리가 아닌, 실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그의 눈에서 붉게 번지는 듯했다. 병원 앞을 붉어진 눈으로 기웃거리다 도망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그냥 나 때문이었어. 다 나 때문에.”
이용선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이어 앙상한 그의 뒷모습이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박춘수를 바라보았다. 아까 그 아이디와 비번이 무엇이기에 협박이냐고 이용선에게 물은 것일까. 둘의 나눈 대화를 보건대 더 많이 아는 쪽은 이용선이다. 그는 실마리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뭐지. 나는 박춘수를 향해 물었다.
“아까 그게 뭐예요? 아이디랑 비번이요. 나더러 오라고 해 놓고, 나는 지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요!”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졌다. 박춘수가 홍영에 온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이용선을, 어쩌면 이용선이 아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박춘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피로가 몰려오는 표정이었다. 기대를 했었는지, 긴장을 했었는지 다소 허탈해 보이는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아이디하고 비번. 사람 육감이라는 게 참 무섭다, 그치? 그저 스쳐 지나면서 한번 본 사람인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그때 만둣집에서 우연히 그렇게 보고도 단번에 알아봤다니까. 하하.”
스쳐 지나듯 본 사람이 박춘수가 다니던 회사 아이디와 비번을 알고 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박춘수 말처럼 협박인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건 결코 유쾌한 일일 수 없음은 알 수 있었다.
홍영제일병원 앞에 다다르자 저만치 진우가 서 있었다. 할 말이 있다기에 개인적인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장소도 병원에서 보자고 하고, 옷도 사복이 아니라 제복이다. 은옥 아주머니 장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수차례 말하던 녀석이 무슨 일인가. 연고자라도 찾은 건가.
“어! 덕구야!”
진우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보였다. 나도 걸음을 재촉해 그에게 다가섰다.
“연락 와서 무슨 일인가 했지. 왜 여기에서 보자고 했어? 연고자 찾았어?”
진우는 나의 묻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더니, 나를 잡아끌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는데 녀석이 주변을 살며시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우리 둘이 있는 거, 누가 보더라도 여기에서 널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나중에 내가 둘러대기도 좋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그냥 너만 알고 있어. 절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고.”
목 뒤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 소리가 들릴까봐 나는 몇 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가 말을 시작했다.
“은옥 아줌마 말야.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될 것 같아. 놀라지 말고, 끝까지 들어.”
내가 눈이 휘둥그레졌는지 진우는 주먹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더니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자살로 종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목격자가 나온 거야. 아줌마 그렇게 되던 날, 남자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고. 그래서 CCTV 돌리고 그랬는데 남자 하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라고. 그 남자가 약 처방받은 기록도 막 나오고.”
“그럼 범인을 잡은거야?”
내 물음에 진우가 목소리를 더 낮추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해. 자살로 거의 뭐 확실하게 종결이었는데 다들 뜬금없이 너무 적극적이야. 갑자기 목격자도 나오고 그 남자에 대한 정보도 너무 술술 나와.”
“다들 적극적인게, 왜 이상해. 은옥 아주머니가 안됐다고 생각했나보지.”
진우 말대로 한달 가까이 아무 말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이 나 역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우에게 더 들을 말이 있을까 싶어 일부러 그리 물었다. 그러자 진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너가 몰라서 그래. 심지어 무연고자잖아. 보통 이런 건은 다들 안 나서거든. 그런데도 다들 먼저 나서는 건 물론이고 엄청 적극적이라니까. 그것도 갑자기. 심지어 우리 서장님까지도 그래. 그 남자에 대한 정보를 우리 서장님이 막 알아봐 줬다니까.”
“그래서, 잡았어?”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냐 묻고 싶었지만 진우도 예상했는지 선수를 쳤다.
“누구라고 말하면 니가 아냐? 아무튼 그렇게 됐어. 나도 너무 답답하고 이상한데 말할 데는 없고 너나 아주머니는 은옥 아줌마하고 친했으니까 뭐 아는 게 있나 해서. 아줌마가 연애를 했다거나. 이게 모양새가 치정살인, 뭐 그런 것 같거든.”
진우의 말에 내 낯빛이 변했는지 녀석이 아차 싶은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진우에게 말했다.
“아줌마 그런 거 없었어. 나도 그렇고 엄마도 은옥 아줌마랑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좀 됐거든. 그런데 아줌마가 연애를 한 건 아닌 것 같아. 엄마한테도 자긴 혼자 사는 게 좋다고 그랬대. 시장에 있을 때도 억울한 소문이 돌아서 힘들어했다나봐.”
진우는 내 말에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알았어, 참고할게. 이게 너한테 뭐 조사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니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내가 말한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네 엄마한테도."
“알았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아무튼, 고맙다. 나중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줘. 나도 엄마한테 뭐 듣게 되거나 그러면 알려줄게.”
며칠 전 박춘수 집에 찾아왔던 이용선이 떠올랐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 말하던 그 표정도 생생하게 기억났지만, 진우에게 말하진 않았다.
진우가 나를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병원 중앙현관까지 와서 인사를 나누고는 돌아서는데 진우가 가던 나를 갑자기 불러세우더니 내 쪽으로 달려왔다.
“하마터면 깜박할 뻔 했네. 덕구야, 너 박춘수라고 알지?”
또 다시, 생뚱맞은 이에게서 박춘수 이름이 나왔다.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진우의 표정은 내가 박춘수를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묻는 모양새였다.
“혹시 그 사람이 각목을 100개 넘게 목재상에서 주문했다던데, 알아?”
진우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물으려다 나는 말을 삼켰다. 혹시 사람들이 지목했다는 용의자가 박춘수인가 싶어 공연히 겁이 덜컥 났다. 박춘수가 그럴 리 없는데 혹 누명이라도 쓴 것이면 어쩌나, 나는 근거도 없이 박춘수를 믿었고, 그를 걱정했다.
“아, 어. 그 목재상 내가 소개해 준 건데. 나도 잘은 모르는데 별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은옥 아주머니하고 그것도 상관있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최대한 목소리를 꾸며가며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진우는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은옥 아주머니 일하고는 상관 없고. 누가 알아보래서. 들어가 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진우는 손을 들어보이더니 재빨리 가벼운 뜀걸음으로 병원을 향해 돌아갔다.
“어, 좀 일찍 왔네.”
박춘수가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내 사정으로 몇 번 건너뛴 적은 있어도 박춘수 쪽에서 수요일 사진공부를 미룬 적은 없었다. 그가 다 알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내가 써 보고픈 렌즈를 바꿔 끼워가며 셔터를 눌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비교해 가며 박춘수는 정말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열심히 질문하곤 했다.
회의 테이블로 가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아까 낮에 만났던 진우의 마지막 물음이 생각났다. 이용선이 찾아왔던 그 날, 박춘수에게 돌아가라며 건넨 이야기도 있었기에 나는 진우의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어떤 걸로 찍어볼거야? 그리고 오늘은 콜라캔 말고 다른 거 찍어보자.”
박춘수가 렌즈 장식장 앞에 서서 말했다.
“저기,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조심스러운 내 말투에 박춘수가 나를 돌아보더니 회의 테이블로 와 내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뭔데 표정이 그러냐.”
“저기, 은옥 아주머니요.”
나는 은옥 아주머니 일이 타살일 것이라던 진우의 말까지도 같이 건네려다 말았다. 그건 진우 당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은옥 아주머니 일을 담당하는 경찰이 제 어릴 때 친군데 오늘 우연히 만났거든요. 그런데 대뜸 저더러 박춘수 아느냐고 묻더니, 각목 100개 정도를 목재상에서 주문했다던데 맞냐고 묻더라구요.”
내 말이 끝나자 박춘수가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나를 바라봤다. 옅게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빙긋 웃으며 그가 말했다.
“재밌네. 물긴 물었네. 심지어 경찰이.”
“네?”
늘 그렇듯 바로 알아듣기 힘든 그의 말에 내가 반문하자 박춘수는 내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미끼 말이야. 내가 여기 있는 게, 정말 신경이 쓰이긴 하나 보네. 누군지 몰라도. 재밌네.”
혼자만 재밌는 박춘수를 멀뚱히 바라보는 나를 의식했는지 박춘수가 나를 바라보며 자못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덕구야, 나한테 카메라랑 사진 과외한다는 거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덕구 너가 보고 한번 아무한테나 쓱 말해봐. 가볍게.”
“저번엔 말하지 말라면서요.”
내 말에 박춘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절대 니가 나하고 친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마. 소식지 출근할 때 내 렌즈 가끔 들고 나가. 렌즈 빌리려고 나 가르치는 거라고 대충 둘러대고.”
그가 내 쪽으로 기울였던 몸을 다시 의자에 기대며 깍지를 낀 채 머리 뒤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이번 미끼는 누가 물고 오는지 한번 보자.”
(1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