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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Sep 04. 2020

21화. 진실을 겨누는 사실의 조각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

 이용선 면회를 다녀온 이야기를 다 들은 박춘수가 여전히 골똘한 표정으로 거실 바닥을 응시한 채 되물었다. 언제나 말끔하던 그의 얼굴 위로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모습을 보니 어딘지 초췌해 보였다. 그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나를 향해 앉으며 물었다.

 “그럼 전과기록이 있겠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전과기록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마땅한 맞장구를 치지 못하고 눈만 껌벅인 채 박춘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뒤로 물러나 앉으며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용선이 사람을 죽여봤다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그때 사람을 죽였을 때도 하재명 사장 밑에 있었는지 알아보면 단서가 될 것 같다. 만약 그때도 하재명 사장이 데리고 있었다면 이번 은옥 아주머니 사건하고 뭐가 다르고, 뭐가 같은지 비교해 볼 수 있으니까.”

 “하재명 사장이 그때는 어떻게 했었는지 말이죠?”

 나의 말에 박춘수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지, 그걸 말해줄 사람은 한 사람 뿐인데.”

 그의 망설임을 무지르며 내가 답했다.

 “진우한테 물어볼게요.”

 나의 말에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은옥 아주머니네 가게가 있었던 그 건물로 가 볼게. 간 김에 속옷이나 좀 사지, 뭐.”     



 경찰서 앞은 한산했다. 그간 진우에게 부지런히 연락해 온 덕에 만나자는 말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었다. 사실 만나자고 약속을 잡기 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이전처럼 돌려서 말하기에는 이미 자주 물었던 터라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 놓고 묻자니 그건 또 나답지 않다. 보나 마나 진지해진 분위기 탓에 진우가 경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묘수를 냈다. 고보영. 나는 할 수 없는 질문들을 고보영은 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얻게 될 정보도 어쩌면 혼자 만나 물었을 때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우는 고보영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말에 나의 급한 연락에도 흔쾌히 약속을 수락했다. 그 사실이 내 기분을 그리 썩 유쾌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 대리야!”

 저편에서 고보영이 손을 흔들며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게서 한걸음 떨어져 걸음을 멈춘 그녀는 잠시 경찰서 입구를 기웃거리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 은근 긴장 돼. 아까 뭐라고 했지? 다시 정리해 줘.”

 “은옥 아주머니 죽였다던 그 사람이 살인 전과가 있다던데 언제 저지른 건지, 그때도 쉽게 잡혔는지, 그리고 갑자기 타살로 결정짓게 된 계기. 마지막 질문은 목격자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싶은건데 그건 아마 말 안할테니까. 그렇게 물어보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고보영은 나를 마주 보며 선 채로 눈만 굴려 하늘을 쳐다본 채 부지런히 내가 하는 말을 외우듯 정리했다. 그리고는 다 정리가 되었는지 짧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바람에 내 앞머리가 풀썩 그녀의 숨에 날렸고 고보영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이쿠!’하며 살짝 웃었다. 때마침 경찰서 입구에서 진우가 뛰듯 걸어나왔다.

 “어! 와 있었네!”

 그는 반듯하게 다려진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훤칠한 느낌이었다. 그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건네고는 고보영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차진우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보영입니다. 저번에 인사 나눴는데. 하하”

 “소개팅하냐?”

 마주 선 채로 웃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처럼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내 말에 진우가 당황했는지 팔꿈치로 내 팔을 툭 치며 눈을 크게 떠 보였고, 고보영은 나의 말이야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핸드폰으로 근처 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아, 보영 씨. 제가 파스타 맛집 다 찾아놨어요.”

 진우가 고보영을 향해 으스대듯 우쭐거리며 말하자 고보영이 그를 돌아봤다.

 “나폴리, 맞죠? 찾긴 뭘 또, 찾아요. 홍영 시내가 손바닥만 한데 거기 모르면 안되죠, 가요.”

 고보영이 앞섰고, 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와 눈을 한번 마주치더니 뒤를 따랐다. 나는 어쩐지 고소한 생각이 들어 잠시 오늘의 목적을 잊고 콧노래까지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동갑이면, 우리 말 놓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고보영이 말했다. 진우는 시원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보영은 만족스럽다는 듯 두 손바닥을 몇 차례 비비더니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고보영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런 성격의 아이가 학창시절 친구가 없었는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결국 좋아한다는 것과 싫어한다는 것의 이유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자,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그 옛날 중고등학생 고보영이 안쓰러워졌다.

 “파스타, 샐러드, 피자 이렇게 하나씩 시키면 되겠다, 그치?”

 고보영이 옆에 앉아있던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좋네. 파스타는 게살 로제로 하자, 그거 맛있던데.”

  나 대신 진우가 대답했다. 나는 사실 이 식당이 처음이고 파스타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아서 둘이 고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건만 고보영이 자꾸 내게 물었다.

 “이 대리님은 피자 뭐할래? 마르게리따, 이거 할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가 손을 들어 일사천리로 주문을 끝내고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씩 들이켰다.

 “덕구는 안 심심하겠다. 동갑이 같은 사무실에 있어서.”

 진우가 그렇게 말을 건네고 고보영을 슬쩍 보았다. 고보영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지 나를 보았고 나는 흘긋 고보영 눈치를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른들하고만 있는 것보다는, 뭐.”

 고보영은 별다른 말 없이 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경찰서에서는 무슨 과에 있어? 덕구 대리가 말해줬었는데, 뭐더라.”

 “아, 나는 수사과에 있어, 외사계.”

 “원래 생활안전과였나? 옮겼구나. 수사과라고 하니까 멋있다. 외사계면 뭐냐?”

 내 물음에 진우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껏 들뜬 얼굴로 말했다.

 “요즘 홍영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졌잖아. 그래서 외사계가 작게 생겼는데 거기로 갔어. 골치 아플 때가 종종 있는데, 나는 뭐 아직 처음이라 그런지 재미있네. 아 맞다!”

 진우는 말하던 도중 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가 테이블을 향해 몸을 숙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박춘수 씨 알지?”

 별안간 진우의 입에서 나온 그의 이름에 나는 물론 고보영도 움찔거렸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갑자기 박춘수 씨는 왜?”

 “아, 얼마 전 우리 계에서 통역요원을 모집했거든. 근데 박춘수 씨, 그분이 지원했더라고. 그 사람 영어 진짜 잘하더라. 면접관보다 더 잘하더라고. 진짜 깜짝 놀랐어.”

 문득 편의점 앞에서 담배 꽁초를 아무데다 버리던 미군들을 향해 콜린 퍼스의 영어로 그들을 꾸짖던 박춘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우리 두 사람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는지 진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매일홍영으로 바뀐 뒤엔 어때? 소식지 예쁘더라.”

 “아, 여기 보영 주임 작품이야.”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한꺼번에 식탁 위에 차려졌다. 샐러드를 가장 먼저 집을 줄 알았던 고보영은 피자를, 피자를 가장 먼저 집을 줄 알았던 진우는 샐러드를, 나는 내 앞에 가장 가까이 놓인 파스타를 접시에 덜었다. 음식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었고 고보영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꺼냈다. 늘 그렇듯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만둣집 주인 살인사건 말이야. 그거 범인이 살인전과가 있다며? 그때도 홍영이었어?”

 상추 같은 채소와 오렌지 한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려던 진우가 멈칫했다.

 “응? 전과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응? 뉴스에서 봤어.”

 아무렇지도 않게 뉴스에서 봤다는 고보영의 말에 진우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더 의아하여 진우가 고보영에게 시선을 둔 사이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뉴스에서?”

 되묻는 진우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를 눈치 챘는지 못했는지 고보영이 다시 물었다.

 “응, 뭐 어디서 봤으니까 알겠지. 그때도 홍영이었대? 조사하면 그런 거 안 나오나? 그때 뉴스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홍영은 절간 같아서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이 또 있었다니까 겁나더라. 여자만 골라서 죽이는 그런 사건들도 종종 있잖아. 으.”

 고보영이 어깨를 옹송거리며 말을 내뱉고 피자를 한입 베어물었다. 그런 고보영을 유심히 살피던 진우는 고보영의 또래와 외모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걱정이라 생각했는지 표정이 풀어지며 다독이듯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로 고보영에게 말했다.

 “살인전과가 있기는 했는데, 피해자가 여자는 아니었어. 그리고 그 사람 잡혔잖아. 홍영에선 드문 일이라고들 하니까.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워낙 무서운 세상이니까.”

 “아, 그래? 그럼 그 사람 살인은 두 번이었던거야? 그래도 빨리 잡혔네. 하마터면 연쇄살인범 될뻔 했네.”

 정보를 캐낼 목적으로 물어본다기에 고보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진우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응, 연쇄살인범은 아니고. 연쇄살인범이라고 하기엔 첫 범행이 십년 전인가 그랬고 그때도 거의 바로 잡혔었더라고. 그냥 재범인거지.”

 진우의 말에 고보영이 그를 향해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와아, 홍영경찰서가 일을 잘하나봐. 그때도 그렇게 빨리 잡은 걸 보면. 덕구 대리 말 들어보니까 이번에도 하마터면 자살로 결론날 뻔 했다며.”

 고보영의 칭찬에 진우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낯빛이 슬쩍 상기되었다.

 “아, 뭐. 홍영 사람들이 워낙 적극적이니까. 목격자 진술 확보도 잘되고 하니까.”

 “그래? 나같으면 무서워서 그냥 뒷짐질 것 같은데. 나한테 보복하면 어떻게 해.”

 고보영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래도 다행히 그 건물 사람들이 용기내어 진술을 해 줘서 수월하게 잡았어.”

 진우는 그렇게 말을 뱉고 순간 움찔거렸다.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잔뜩 난처해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에 손에 들린 파스타 집게가 안절부절 제자리를 잃고 방황했다. 나와 고보영이 그런 진우를 바라보자 그는 애써 표정을 담담하게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원래 목격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면 안되는데. 보호해야하니까. 너희들도 어디에 가서 이런 말은 하지마. 괜히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밖으로 돌면 곤란해서, 알았지?”

 나와 고보영은 걱정말라는 듯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고 고보영은 한동안 말없이 입을 부지런히 오물거려가며 놓인 음식을 골고루 먹었다.      



 “그럼 들어가! 반가웠어! 보영이도 다음엔 같이 술 한잔 하자!”

 진우가 손을 흔들며 경찰서 입구로 들어갔다. 진우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고보영은 잠시 말이 없더니 나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말해봐. 그건 왜 알아보려는거야?”

 “응?”

 “갑자기 은옥 아줌마 사건을 캐는 이유가 뭐냐고. 매일홍영에 실으려고 그러는 건 아닐테고.”

 어쩐지 이유도 묻지 않고 알겠다며 따라서던 고보영이 이상하다 여겼는데 이쯤 기여했으면 나도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제야 묻는다.

 “이용선 씨 면회를 다녀왔었어.”

 고보영의 눈망울이 커졌다. 이윽고 호기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뭐래?”

 ‘왜’가 아닌 ‘무엇’을 묻는 고보영의 질문에 맥이 풀리는 바람에 머릿 속에서 정돈되어있던 말들이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허탈하게 웃는 내 모습을 보며 고보영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채근했다.

 “왜 웃어. 뭔데,"

 그리고 이윽고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자기가 예전에도 사람을 죽여봤다고 했구나! 아, 그거구나! 어쩐지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나는 침묵으로 긍정했고, 고보영은 무언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너 교도소까지 다녀오느라 고생했으니까, 내가 하나 더 말해줄까?”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입꼬리로 눌러가며 말했다.

 “뭘?”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섰다.

 “이용선 씨가 하재명 사장 밑에서 20년 넘게 일했대.”

 그렇다면 이용선의 첫 살인 또한 하 사장과 있을 때의 일이다. 내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는지 고보영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서서히 걸음을 옮겨 저만치 멀어져갔다.      


(월요일, 2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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