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마나 Sep 09. 2020

23화. 인생은 현재진행형

 더위나 한풀 꺾고 가겠구나 싶었던 비는 계절을 바꾸어 놓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긴 소매 옷이 생각날 만큼 날이 선선했다. 아파트 작은 공터에는 이른 가을바람을 즐기려 밤산책을 나온 이들로 제법 북적였다. 나는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앞에 놓인 파라솔 의자에도 맥주 한 캔과 조촐한 안주를 놓아두고 혼자 술을 마시는 이들이 네댓 있었다.

 “어서오세요.”

 이 시간이면 원래 아르바이트생이 있곤 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편의점 사장님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열대 모서리를 돌아 주류코너로 향하는 내게 사장님은 눈을 맞추며 인사해 주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수학학원을 했었다. 친한 친구 몇몇은 그가 하던 학원에 다녔다. 그중에는 진우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 한 놈이 나더러 같이 그 수학학원에 다니자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 뻔히 알았던 터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난데없이 짜증을 냈다. 친구들 다 다니는데 나만 학원을 못 다닌다고. 그 말은 사실과 달랐다. 친구들이 모두 다니지도 않았을 뿐 더러,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학원 다니고 싶다고 제대로 말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학원을 ‘못 다녔다’는 건 사실과 달랐다. 나는 배포조차 크질 못해 그렇게 짜증을 내고도 엄마 눈치를 살폈다. 엄마가 필경 이놈 새끼, 저놈 새끼 라며 나를 잡아댈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는 입안 가득 밥알을 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다시 숟가락과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엄마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엄마가 떠난 식탁에서 혼자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정말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 바가지 듣고, 등이라도 서너 대 맞고 나면 다시 꽤 괜찮은 아이가 될 것 같았지만 엄마는 야속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 가는 내게 엄마가 봉투를 쥐여주며 말했다 - ‘오늘부터 학교 앞에 있는 그 으뜸수학학원 다녀, 빠지기만 해봐. 가만 안 둬.’ 그렇게 엄마는 여느 때처럼 먼저 시장으로 나섰고 나는 봉투를 가방 가장 안쪽에 조심히 찔러넣었다. 

 그날 학교를 끝내고 나는 어울리던 그 친구들과 함께 수학학원으로 들어갔다. 학원에 가자 작은 교실 두 개와 원장실이 전부인 작은 학원이었다. 친구 녀석들을 따라 반으로 들어섰고 뒤이어 지금은 편의점 사장님이 된 원장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나를 본 그가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 ‘새로운 친구네. 네가 덕구구나, 반갑다. 잘해보자.’ 그날 수업이 끝나고 학원비를 내러 원장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온종일 행여 잃어버릴까 걱정했던 그 돈 봉투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들며 말했다 - ‘보통 첫날은 엄마가 직접 주시는데. 덕구가 착한 아이인가 보네.’ 나는 적당히 웃어 보이고 몸을 돌려 나오려는데 봉투를 열어 돈을 꺼내는 그의 손놀림이 그 순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 물었다 - ‘선생님, 그게 얼마예요.’ 그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서둘러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두고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내게 8만 원이라고 답했다. 

 그날 한바탕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없었다. 혼자 저녁을 먹고 나서도, 졸음이 쏟아지는 밤이 되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엄마 이부자리라도 봐 두자 싶어 이불을 펴는데 엄마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는데 엄마는 전에 없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품하며 집에 들어서던 엄마는 다짜고짜 내게 오늘 학원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엄마의 지친 어깨와 내려앉은 눈꺼풀을 보자 나는 툭, 이렇게 말을 뱉었다 - ‘엄마, 그게 학교랑 똑같애, 나 안 다닐래.’ 엄마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내 귓불을 잡고 흔들어대며 말했다 - ‘야, 이놈 새끼야, 무슨 사내놈이 변덕이 죽을 끓이냐, 그거 환불은 된다니? 아우, 진짜! 어쩐지 니놈새끼가 공부 좀 하는가 싶었더니.’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자 나는 시원한 바람이 내 마음 속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다음날, 나는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보다 먼저 학원으로 달려갔다. 수업을 준비하느라 집중하고 있었는지 원장 선생님은 요란스레 들어서는 나를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맞으며 말했다 - ‘덕구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왜? 무슨 일 있냐?’ 내가 알고 있는 남자 중 가장 다소곳한 말투를 가진 그의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었는지 나는 바로 하루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뱉었다 - ‘저, 학원 안 다니게 되어서요. 혹시 학원비는 다시 받을 수 있어요?’ 그는 나를 오래도록 응시하더니 말투보다 훨씬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 - ‘그럼, 원래 맛보기 수업이라는 게 있지. 전부 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바로 봉투에 만 원짜리 여덟 장을 넣어 돌려주었다. 

 한동안 수학학원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살던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학원이 오래전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사람 좋은 그가 사람 나쁜 어느 놈에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학원을 접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한참 흘러 운곡맨션 앞 오래된 슈퍼가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그 덕에 동네 입구가 훤해졌다며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을 때 엄마는 슈퍼집 사위가 처가 재산까지 말아먹으면 어쩌나 걱정이라고 했고, 나는 나중에서야 슈퍼집 사위가 그 수학학원 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산대에 나는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내려놓았다. 지금은 편의점 사장이 된, 내 앞에 선 그 수학학원 원장은 계산을 다 마치고는 예전의 그 다정했던 목소리로 돌아서는 내게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옛날을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편의점을 나섰다. 

 몇 개 없는 아파트 벤치에는 사람이 모두 있어 나는 적당히 어둑한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까만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야옹’하고 한번 아는 체를 하더니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맥주캔 따는 소리가 청량하다. 한 모금 벌컥 들이키자 예전 같으면 시원하다고 느꼈을 맥주가 변한 날씨 탓에 차게 느껴졌다. 좋았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멀리 편의점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엄마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요근래 뜸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 소식지에서 일하기 전까지 숨죽이듯 방에서만 지냈던 시간들, 매일 보는 엄마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향해 불현 듯 솟구치던 분노, 뻔히 할 일 없다는 사실을 알고 연락해 오는 친구들에게 말도 안되는 핑계를 들어 약속을 물리고, 그렇게 점차 줄어드는 그들의 연락을 지켜보며 그들로부터 잊히는 만큼 내 자신도 조금씩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고, 소식지와의 근로계약은 연장할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대출금은 줄어들고 있고, 정규직 확률도 높아진다는 믿음이 있어 그러한지 근심거리는 근심이 되지 않았다. 엄마의 편의점 사장을 향한 걱정이 기우였듯, 내가 내 자신을 학대하듯 퍼부었던 걱정 역시 이젠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안도가 밀려왔다. 달라진 건 그저 소식지에 계약직으로 출근하며 대리라는 직함을 달게 된 것뿐이건만, 그로 인해 스스로는 물론 박춘수나 은옥 아주머니까지 따뜻하게 돌아볼 여유가 생겼구나 싶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또 허무하리만치 쉽다.

 “여기서 뭐해.”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박춘수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덕구 너도 날이 좋아서 그냥 들어가기 싫었지? 벌써 가을이네, 날씨 참.”

 그가 내 옆에 앉더니, 과자 몇 개를 집어 입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연애 안 하고 여기서 뭐하냐.”

 “남 걱정 마시고요.”

 내 말에 박춘수가 나를 돌아보더니 던지듯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네, 덕구 니 말이 맞네. 하하.”

 가을을 알리는 실바람이 그의 머리 위로, 내 이마 위로 솔솔 불어왔다. 

 “맞다. 홍영경찰서에 통역요원으로 신청했다면서요?”

 “어떻게 알았어? 아. 진우가 말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춘수가 시원하게 미소지었다. 

 “돈벌이도 하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니까 그런 것도 좀 주워듣고. 거기 좀 높으신 분이 마침 내 오동나무 각목에 관심 있어 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겸사겸사.”

 그가 이번에는 내 맥주캔을 집어 한 모금 털어넣었다. 

 “한 캔 사다드릴게요.”

 내가 몸을 일으키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음이 새어나오는 얼굴로 내 팔을 다급히 잡았다. 

 “안되지! 이게 뺏어 먹는 재미라는 게 있는 건데. 앉아. 너꺼 사 오려면 그렇게 하고.”

 개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준중년의 사내에게서 소년티가 물씬 났다. 나는 풀썩 주저앉듯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좋겠어요. 돈벌이를 겸사겸사 할 수 있어서.”

 내 말에 박춘수가 당황한 듯 나를 돌아봤다. 어떤 의도를 담고 했던 말은 아니었으나 막상 말을 뱉고, 박춘수의 그런 표정을 마주하니 괜한 몽니가 부리고 싶어져 나는 일부러 표정을 굳혔다. 그러자 그의 집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카메라, 얼마 전 봤던 그의 매끈한 볼보, 언제나 말끔한 그의 옷매무새, 종일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한 그의 일상이 떠올랐고, 갑자기 질투가 났다. 그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만하면 내 삶은 퍽 괜찮고, 이제 차근차근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위안이 어디론가 불시에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아 슬며시 화가 났다. 

 “고맙네. 내 주변에선 다들 걱정하는데. 부러워하는 사람은, 글쎄, 없는 것 같다. 다들 한소리씩 하던데. 좋은 직장 그만두다니 참을성 없다, 홍영이라니 일은 어쩌느냐, 나이가 찼는데 결혼은 왜 안 하느냐. 덕구, 너가 보기엔 안 그렇다는거지?”

 내 말 탓에 어색해질 줄 알았던 우리 사이의 공기는 그가 말을 마치자 되려 부드러워졌다. 미안한 생각에 나는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 관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춘수가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십여 년 앞도, 뒤도, 옆도 없이 일하다 보니까, 돈벌이도 겸사겸사하는 때가 나한테도 오네. 뭐 길게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회사를 관둔 덕에 퇴직금 생겨서 그동안 달고 있던 마지막 빚도 털어내고. 작게나마 다달이 적금을 들어놓기는 했어도 서울이며 수도권에는 전세 엄두도 못 냈는데 홍영 이곳에서는 아파트도 전세 얻어 살 수 있으니 좋고. 그러게, 이만하면 진짜 부러운 삶이지.”

 그가 그렇게까지 말을 덧붙이고 나자 나는 미안한 마음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입을 달싹거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오늘은 그의 과거의 결과임을, 그리고 내일을 위한 과정임을 너무나 쉽게 간과했다. 순간의 감정으로 아무렇게나 뇌까려버린 내 옹졸한 마음 씀씀이가 부끄러워졌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박춘수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도시계획공사 들어가기 전에, 한 2년 정도 취직이 안 되어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살았었거든. 이게 주변에 친한 친구 녀석들은 다 잘 풀렸어. 어떤 놈은 행정고시 붙고, 다른 놈은 대기업 붙고, 또 다른 놈은 박사도 하고 그러는데 나만 그냥 백수인거야. 여튼 그렇게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고 있을 때, 연말 모임이 하나 생겼어. 동아리하면서 어떤 교수님하고 인연을 맺은 뒤에 연말에는 꼭 그 교수님하고 송년회를 한 차례씩 했었거든. 그런데 나가기가 싫은거야. 친하다는 친구놈들도 다 쓸모 없어 보이고, 돈이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안 나가기로 하고 교수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그분이 대뜸 그러더라. 취직 안 되어서 그러는거냐고. 갑자기 너무 훅 들어오니까 다른 말을 못 했어. 그래서 ‘네’라고 대답하고 훌쩍거렸지. 그러니까 그분이 뭐라고 하셨는 줄 아냐. 지금 취직해서 잘 나가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냐고 묻더라. 취직 못한 네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럼요?’라고 했더니 그러시대. 그럼 대통령까지 되었는데 암살 당한 케네디가 성공한 인생이냐. 인생이라는 것에 정말 성공이나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거냐. 정 결론을 내리고 싶거든 죽을 때 그때 가서 해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나는 박춘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내려와 방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지냈을 때 박춘수를 만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고 주임하고는 내일 저녁에 본다고? 어디라고 했지?”

 “아, …맨하탄노래방이요.”     

(금요일, 24화에서 계속)

이전 02화 22화. 때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