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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Oct 12. 2020

34화. 그날, 서울에 간 이유


 

 “이 대리, 잠깐 이리로 좀 와 봐.”


 편집장이 나를 자기 자리로 불렀다. 군청에 다녀온 그날 이후 편집장, 김 실장 그리고 고보영까지 부쩍 내 눈치를 살핀다. 우리 네 사람 사이의 공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그런 시선을 외면하는 것 뿐이다.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려면 그 불편한 사실을 터 놓고 직면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고역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피하기로 했다. 엄마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박춘수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이유가 같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기에 도대체 어떤 연유로 박춘수는 운곡시장 상인 무리에 섞여 그들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째로는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 몰라 두려웠고, 둘째로는 내가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모든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보면 혼자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날도, 내가 곁에 있는 줄조차 모르는 채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날도 많았건만 나는 엄마에게, 시장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동요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정말 군청 앞마당에서 그들을 보기  전까지, 길로 뛰쳐나가 악을 쓰는 사람들은 그 부류가 따로 있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엄마도 내게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내게 완벽하게 비밀로 숨기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조끼나 머리띠는 어디에 두고 다니는지, 군청 앞마당에서 시위를 끝마치고 오면 어딘가에 모아서 벗어두고 오는 것인지 집 안에서 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가끔 내 앞에서 말을 망설이기는 했으나 결국엔 말을 삼키기 일쑤였다. 한번은 매번 엄마가 시위를 나갈 때마다 가게를 닫아두고 가는 것 같기에 ‘그렇게 문 닫고 다녀도 돼?’라고 물으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물을만큼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결국 나는 그 어느 것도 엄마에게 물을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네, 부르셨어요?”

 편집장 앞에 서자 그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봉투와 편집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일 서울에 좀 다녀와라. 당일 코스로 다녀와. 여기에서 오전 기차 타고 가면 서울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는 행사니까, 뭐, 크게 번거롭지는 않을거야. 어렵게 구한 표니까 다녀와.”

 편집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멍하니 서 있었고, 그런 내게 편집장은 턱짓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나는 봉투를 천천히 열어 안에 든 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초대권이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제14회 한국기자클럽 컨퍼런스> 1인 미디어 시대의 탐사보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편집장님, 제가 여기를 왜…. 가서 뭘 하면 되는지…”

 내 말에 편집장은 혀를 끌끌 차며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띠운 채 답했다. 

 “너가 거기를 왜 가, 매일홍영 대표 기자니까 가는거지, 그리고 가서 하긴 뭘해. 그냥 세상이 요즘 어떻게들 돌아가는지 구경 좀 하고 와. 가끔씩 그런데도 가 주고 해야, 사람이 시야가 넓어지는거야. 내가 그랬지? 매일홍영을 언젠가는 큰 언론사로 키우고 말 거라고, 이게 다 그런 거대한 청사진에서 나오는 거니까, 잘 다녀오라고.”

 편집장의 말에 듣고 있던 김 실장이 웃으며 나섰다. 

 “그 거대한 청사진에 인력확충, 뭐 이런 건 없어요? 요즘 고 주임이 홈페이지에 소식지 편집틀 잡는 거 혼자 하기에는 좀 벅차보이던데. 그리고 저도 이제 일 좀 나눠서 할 직원 하나 붙여주세요. 그리고 이 대리 하나 가지고 언제 큰 언론사로 키워요, 기자도 하나 더 뽑고요, 결국은 사람인건데.”

 김 실장이 편집장을 골릴 요량으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뱉자 편집장이 그녀의 말을 막아서며 대꾸했다. 

 “참나, 무슨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덤벼드니까 내가 이야기를 못하겠어. 일단 이 대리가 서울 다녀와서 있었던 일 이야기 좀 해 주면, 본격적으로 청사진을 짜든지 회식을 하든지 하자고. 이제 인력보충이네 확충이네 그런 말 그만하고. 이 대리는 알았지? 내일 다녀와. 명함 두둑하게 챙겨가고. 다른 사람들 명함도 두둑하게 받아오고. 결국은 이게 다 네크워킹이야, 네트워킹 알지?”

 내가 여전히 망설이며 우두커니 서서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않자 편집장은 일어서서 내 오른쪽 어깨에 그의 두툼한 손을 툭하고 올려놓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 표 구한다고 애 좀 썼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다녀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이름표를 목에 건 사람들이 분주히 그랜드볼룸 앞을 오가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초대권을 보여주고 참석자 등록을 마치자 나에게도 파란줄이 달린 이름표가 생겼다 - ‘매일홍영 이덕구 기자’. 분명히 ‘매일홍영 이덕구’라고 했는데 ‘기자’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나는 다시 이름표를 뽑아달라고 하려다가 내 뒤로 늘어선 줄의 길이를 보고 관두었다. 어차피 나를 알아볼 사람도, 내가 먼저 가서 인사를 건넬 일도 없겠지 싶어 나는 행사가 열리는 그랜드볼룸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스크린을 무대로 하여 마치 토크쇼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게 반짝이는 하얀색 소파 두 개가 무대 한가운데 놓여있었고 소파 사이에는 유리로 만든 커피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단상 오른편에는 사회자 자리로 보이는 마이크 단상이 보였고 그 뒤로는 거대한 LED가 행사개요를 알려주고 있었다. 무대 아래로는 수많은 의자가 깔려있었고 나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어렵게 표를 구했다던 편집장의 말을 떠올려 적당히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다섯 자리를 띄우고 어떤 여자가 앉아있었는데 그녀 손에는 커피잔과 쿠키 몇 개가 들려있었다. 아마 행사장에서 들어오는 길에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이 있었는데 커피를 먹느라 다들 그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등록할 때 받았던 팸플릿을 의자 위에 올려두고 커피를 가지러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커피와 쿠키가 놓여져 있는 곳은 처음보다 훨씬 한산했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대개는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웃고 떠들며 안부도 묻고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홀로 커피를 타고 쿠키를 고르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하나같이 다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마치 쿠키를 고르는 일이 매우 심각한 일이라도 되는 양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접시 위에 쿠키를 골라담고 있었다. 그때였다. 

 “참, 호화스럽네요, 그쵸?”

 나는 문득 들려온 그 말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눈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그곳에 박춘수 또래의 어떤 남자가 장난기 넘치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요?”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내 자신의 어리숙하고 이질적인 모습에 그렇지 않아도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 같아 마음 다독이기가 어려웠던 차에 나와는 정 반대되는, 노련해 보이고 여유가 넘치는 그 낯선 기자 앞에서 되지도 않는 말을 되물었으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시사7213 유도영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매일홍영 이덕구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뾰족하지 않은 턱, 하얀색 면 남방 위로 갈색 헤링본 정장 자켓을 입고 청바지에 로퍼까지 챙겨신은 모양새는 제법 그럴싸했다. 안경은 쓰지 않았지만 눈빛은 유리알보다 반짝거렸으며 웃는 얼굴 위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굵은 주름이 길을 내고 있었다. 그도 어른이므로 나름의 속셈이라는 것이 없을리 없겠으나 신뢰가 가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거들먹거리지 않는 차분한 말투, 사람을 관찰하는 따뜻한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매일홍영이면, 운곡산 있는 홍영에서 오신 건가요?”

 주변의 소음과는 종류가 다른, 심지어 다정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가 내게 물었다. 

 “아, 네네. 맞습니다. 운곡산 있는 홍영.”

 “아, 그러시구나. 반갑습니다. 제가 요즘 홍영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친근하게 웃으며 오른 손을 자켓 주머니 속에 넣어 명함지갑을 꺼내었다. 그리고 내게 빳빳한 그의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옆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으며 두 손으로 그의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메고 있던 가방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그에게 한 장 건넸다. 그 역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내 명함을 받아들더니 마치 내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듯 한동안 명함을 바라보다 다시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덕구 기자님, 반갑습니다.”

 그때였다. 금테 안경을 쓴 키가 큰 어떤 남자가 유도영을 향해 걸어오더니 반갑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와아, 어디 박혀있나 했는데, 여기에서 보내. 뭐하고 지내요?”

 “잘 지내지? 여기는 매일홍영에서 오신 이덕구 기자님.”

 그의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니 손꼽히는 신문사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유도영으로부터 나를 소개받은 금테 안경의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여 아는 체 하듯 인사를 건넸고 그의 시선이 슬쩍 내 목에 걸린 이름표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내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유도영과 그 금테 안경의 남자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뻘쭘해진 나는 쭈뼛거리며 유도영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뜰 기회를 노렸고, 다행히 유도영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몇 걸음 멀어졌을 때야 나는 커피와 쿠키 접시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하게 짧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다시 그 금테 안경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그대로 행사장 안 내 자리로 향했다. 



 행사는 한 마디로 지루했다. 그래서 결국은 1인 미디어 시대인 오늘, 기존 방송사나 신문사가 그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탐사보도에 인력, 예산 등을 투입하여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가진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쉽지 않다는, 결국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말들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행사가 끝나자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이름표를 둘둘 말아 배낭에 집어넣고는 마무리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또 다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번번이 혼자가 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긴 싫었다. 물론 이 중에 관심있게 나를 봐 줄 사람은 없겠지만.     

 시계를 보니 기차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 나는 행사장 로비를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호텔과 지하통로로 연결된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없겠거니 하는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백화점 식품관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그 틈바구니를 헤치며 간식거리가 될만한 것들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케익이나 쿠키, 전병, 월병, 화과자 등을 파는 가게들이 이어지고 있는 곳에 다다랐고 나는 소식지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롤케익 하나를 골랐다. 점원이 롤케익을 포장하는 동안 쇼케이스에 올망졸망 놓인 작은 케익과 쿠키를 구경하다 큼지막한 초콜릿이 아무렇게나 박힌 쿠키에서 시선이 멈췄다. 계산과 포장을 마친 점원이 내게 카드와 영수증 그리고 롤케익이 든 쇼핑백을 건넸을 때 나는 그녀에게 다시 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저기, 이 롤케익 같은 걸로 하나 더 주시겠어요. 그리고 저, 자이언트 초크청크쿠키하고 말차쿠키, 크랜베리쿠키도 하나씩 주세요.”

 그렇게 나는 양손 가득 케익과 쿠키를 품에 안 듯 받아들고 인파를 헤치며 지하철역을 향해 갔다. 결국 나는 이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서울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오늘 하루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났다.   


        

 “어머, 우리 센스쟁이 이 대리,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이렇게 케익까지 사 오고, 안 그래도 달달한 게 땡겼어, 하하하하.”

 회의 테이블에 케익 하나를 두고 오순도순 소식지 네 사람이 모여 앉았다. 나는 롤케익을 한 조각씩 잘라 접시에 내어주었고, 고보영은 미리 내려둔 커피를 가져오며 우리 세 사람에게 한 잔씩 따르고는 마지막으로 자기 텀블러에 따랐다. 

 “그래, 회의 내용은 관심 없고, 사람들은 좀 만났어? 어떻디? 잘난 척 드럽게 하든? 허허허허”

 편집장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보다 말투에 피곤한 기색이 묻어났지만 나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아, 다들 이미 서로 아는 사람 같더라고요. 행사장도 엄청 넓어서 뭐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고. 그래도 누구지, 이상한 숫자가 달린 시사, 칠 무슨 삼 그런데서 온 유도영이라는 사람하고는 명함도 주고 받았어요.”

 가지고 간 명함을 모두 뿌리고 오기를 기대했을 편집장에게 나는 그리하지 못했음을 그렇게 돌려 말했다. 그리고 나서 밀려오는 민망함과 자괴감에 고개가 떨구어 지려는 순간 고보영이 입에는 롤케익을 가득 문 채 두 손으로는 손뼉을 짝 치며 동그란 눈으로 내게 되물었다. 

 “시사7213 유도영? 그 유도영을 만났다고?”

 “왜, 유명한 사람이야?”

 고보영의 전에 없는 호들갑에 편집장이 오른 주먹으로 오른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물었다. 그러자 고보영이 눈을 흘기듯 편집장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진짜 이 대리도, 편집장님도 3년의 유도영을 모른단 말이에요?”

 “3년의 유도영은 또 뭐야, 하여간 사람들 말 지어내기는, 영웅이나 스타가 없으면 재미가 없지들? 참나.”

 고보영의 말에 편집장이 이번엔 왼손 주먹으로 왼쪽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의 반응에 고보영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서? 사인은 받았어? 뭐래?”

 “그런데 왜 3년의 유도영이야?”

 내가 대답하기 전 이번에는 김 실장이 고보영에게 물었다. 

 “3년마다 대박 특종 터뜨린다고 3년의 유도영이잖아요. 그 숫자가 72세까지 특종 13개 낼거라고 시사7213이에요. 그 사람이 어쩌다 보니까 3년에 하나씩 지금까지 3번 특종을 냈거든요. 그 사람 유튜브 구독자도 많고 그런데, 오늘 그 1인 미디어, 탐사보도 뭐 그런 이야기 나와서 왔나보다. 대박, 아, 나도 갈걸. 나 그 사람 진짜 팬인데, 아쉽다.”

 고보영이 근래 들어 그렇게 활기차게 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본 적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내가 사온 롤케익도 ‘유도영’만큼이나 그녀의 기분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었을거라 생각하며 대꾸했다. 

 “사인은 말고, 그 사람 명함 받았는데 줄까?”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입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책상 위에 꺼내놓은 유도영의 명함을 고보영에게 건넸다. 고보영은 명함을 받아들더니 신기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대박. 맨날 컴퓨터나 핸드폰 속에서만 보던 사람인데 명함을 들고 있으니까 기분 이상하다. 이거 나 줘도 돼?”

 “응, 나야 뭐 연락할 일이 있겠어? 그 사람도 그렇고. 너 가져, 난 필요없어.”

 나의 말에 고보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의 핸드폰 아래로 명함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즐거운 간식시간이 끝나고 퇴근 준비를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가려할 때 고보영이 편집장과 김 실장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내게 뒷정리를 하자며 탕비실로 나를 끌고 갔다. 포크와 접시를 개수대에 담그고 수도꼭지를 틀기가 무섭게 그녀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내일 군청에서 공청회한대, 들었어? 그 운곡시장 점거농성하는 거. 춘수 삼촌한테 오늘이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언제까지 서로 말 안할거야.”

 나는 그녀의 말에 별다른 대꾸없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힘 없이 탕비실을 나섰다. 그녀가 툭 던지고 간 골치 아픈 나의 현실이 뇌리에 날아들자, 문득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을 중요한 듯 떠벌리던 오늘 한낮의 컨퍼런스가 그리워졌다. 


(수요일, 3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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