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처럼 천천히 변해도 괜찮을까요?

이미 시작해 버린 것들

by 여름

<거북이처럼 천천히 변해도 괜찮을까요?>

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니까 답을 서두에 이야기해야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즉 사람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큰 시련을 겪고 새 삶을 살기도 하고 다른 이는 죽을 때까지 똥고집을 부리며 살기도 하며 나머지 사람들은 잔잔하게 자기도 모르는 변화를 겪으며 산다. 변한다는 것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로 살면서 은근히 변하는 것들은 내가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몇 가지 카테고리를 나누어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첫째는 계획이다. 나는 아마 계획형 인간에 속할 것이다. 남편은 반대다. 그래서 자주 부딪히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가 더 어릴때는 외출을 한 번 하는 것에도 그 부딪히는 정도가 심했다. 그런데 살다보니 남편 말이 다 틀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의외의 경우의 수를 만드는 남편 덕에 예기치 못한 기쁜 순간들도 많이 맞이했다. 주로 내가 계획을 하고 고집을 부리는 건 여전하지만,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자체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운동 챌린지를 신청했다. 지금까지 총 11일의 새벽 라이브 운동이 있었고 2번은 빠지고 9번은 참여했다. 초반에는 살이 잘 빠졌지만 지금은 오르락 내리락한다. 계획대로 체중이 줄지 않으면 짜증이 났었던 전과 달리,

이제는 내 몸의 세트포인트가 바뀌었구나.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야겠구나. 나를 다독인다. 사실 임신과 출산을 하고 남은 내 몸의 무게는 결혼 전의 +3키로다. 그러니까, 세심하고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나 알아볼 뿐이지 나에게 대놓고 아우 살쪘다. 하거나 다이어트 좀 해야지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는거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체중을 감량하면 좋겠지!

나도 안다. 하지만 거기에 파생되는 나의 짜증과 우울은 남은 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저 오늘 못했어? 그럼 내일 하면 돼. 오늘 조금이라도 할래? 그럼 스쿼트만 몇 개 할까? 하면서 유연하게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철저한 계획형에 본인에 대한 이상만 높아서 자신을 쪼아대는 사람(=나)에게는 득도의 경지와 가깝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린다. 참고하시길.>

단순히 어제의 나와 이어지는 오늘의 나를 변하지 않았다고 너무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아내는 것. 이것이 계획에 대해서 변한 나의 모습이고 지금이다. 물론 계획이 틀어졌을 때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은 여전히 고민거리가 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둘째는 관계다. 나는 사람 자체에 피곤함을 쉬이 느낀다. 그래서 아이가 기관에 다니면서 엄마들의 세계를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운이 좋게 나쁘지 않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개개의 속성은 다 다르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또 가까이도 지내면서 내 기분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유지한다. 그렇다고 마음에 서운하거나 속상한 일이 없었느냐! 그건 아니다. 나 혼자 오해를 하고 뭘 잘못해서 저 엄마가 저런걸까? 내가 말을 실수했을까? 왜 우리집은 같이 놀러가자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하면서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을 하는 밤이 있었다. 그럴 때 이과생이며 진실만 말해서 (나를 킹받게하는) 나를 진정시키는 남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렇게 애매하게 흔들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우리는 어차피 3년 후에 이사를 가야하고, 너는 그런 관계에 피곤함을 느끼면서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가 있냐? 우리끼리 잘 지내면 된다. 아이가 실수를 해서 관계가 틀어진다해도 그 인연은 거기까지다. (지금까지 쓴 문장은 남편의 이과적인 단순한 대답을 내가 문과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는 것을 적어둔다.)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쳇 하면서 너는 내 입장이 아니잖아 라고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밀라논나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 "몫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지 말라." 정확하게 저 문장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였다. 나를 아끼고 내 주변에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 있지만, 그 외에는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밀라논나님의 이야기는 혼자서 자주 땅을 파고 들어가는 나를 지면 위로 끌어내준다. 잠깐의 속시끄러움이야 내 천성상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도는 전에 비해 아주 빨라졌다.

셋째는 아이다. 아이가 이유도 없이 생후 50일에 3박 4일 고열로 입원을 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일인실에 입원을 하고 삼다수 생수, 젖병, 분유, 기저귀, 물티슈....많은 짐을 싸서 병원에 머물렀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골반이 아직 들쑤셨던 산모는 아이와 함께 입원해서 진한 신고식을 치뤘다. 엄마가 되는 신고식. 그렇게 갑자기 아이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100일정도부터는 사경치료를 다녔다. 한 해를 다니고 마쳐서 끝이다 싶었는데 두돌이 지나도 말을 못했다. 언어치료를 다니며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더러 너무 예민하다고 스스로도 잘 자라는 게 아이라고 유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아이가 내 기질을 많이 닮은 것을 알기에 더욱 면밀히 아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세 돌을 앞둔 지금, 아이를 조금 느슨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중이다. 아이가 아팠던 것도, 아이가 고개가 기울었던 것도, 아이가 말을 못했던 것도 사실 내 잘못은 아니다. 그냥...그저 아이가 그럴수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무엇을 잘못 했을까? 나를 탓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명탐정처럼 단서를 찾으려했다. 지금도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버릇을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래...초등 입학까지 기저귀를 차겠어? 그래...조사를 좀 빼고 말할 수도 있지...그래....애 발음이 원래 뭉개지지 뭐....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는 에너지가 많고 높은 사람들처럼 아이를 사랑한다고 뼈 으스러지게 안고 네가 최고라고 자주 말하는 엄마는 못된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이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잘 챙겨서 같이 커 가려고 노력한다. 그것만으로도 불안이 높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내가 엄마로 지난 시간 살아온 궤적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42년 간 변하지 않는다. 예민하고 걱정이 많으며 에너지가 낮고 화를 자주 낸다. 나는 변한다. 결혼 후 5년 간 계획이 틀어지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관계가 소홀해지면 인연이 거기까지구나 하며 아이는 사랑하지만 거리를 두어 내 욕심 많은 불길에 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작아졌다가 커지고 높아졌다가도 낮아진다. 이 모든 일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해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죽는 날 바라보는 나는 이 모든 모습의 총합이겠지. 그러니, 변하는 사람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헤엄치는 인생임을 겸손한 마음으로 이해해보려 한다. 적어도 이미 일어난 일을 신이 아닌 내가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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