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가구와 신혼생활
집안을 둘러본다. 그리고 색깔의 수를 세어본다. 역시나 베이지톤을 머금은 하얀색이 제일 많다. 식탁, 서랍장, 전자레인지, 밥솥, 아기 서랍장, 남편 컴퓨터 책상과 작은 방 칼락스 책장까지...모두 하얀색
하얀색을 선택한 것은 나의 취향 때문이 아니었다. 신혼집을 대학원 기숙사에서 시작한 우리는 아주 작은 예산으로 신혼집을 꾸려야했다. 당시에,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예산에 내 취향을 맞췄어.
'오늘의 집'이란 사이트가 유행을 하고 모두가 '내가 얼마나 예쁘고 감각있게 사는지 보세요~' 라고 알려주는 시대다. 그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저 깔끔하고 단정한 보금 자리를 꾸미면 되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젊었던 우리, 용감하게 이케아로 향했다. 이케아에서 주는 작은 연필과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종이 줄자 (마치 곧 초과로 넘어갈 것 같은 우리의 예산처럼 위태로운)를 들고 하루 종일 그 큰 공간을 누볐다. 쇼룸을 둘러보며 적당한 느낌과 길이를 가늠해가며 하나씩 물건을 담았다. 그리고 돌아와 밤 12시까지 엘리베이터 없는 기숙사 3층을 같이 오르내리며, 조립 가구 피스들을 옮겼다. 남편과 나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그가 말했다.
- 부자랑 결혼했으면 고생 안 했을텐데...
그 때는 그냥 그 말이 고마웠다. 침대를 제외한 모든 가구를 조립하며 꾸미면서도 힘든 마음보다 행복했던 것 같다.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 덕분에 그까짓 하루 이틀 피곤한 것은 별일 아니었다.
그렇게 하얗고 하얀 집에서 우리는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를 총 세 번 더 하면서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을 나눔하거나 버려야만했다. 집의 구조가 달라졌고 우리에겐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방 2개짜리 좁은 집에게, 베이지를 한 방울 섞은 화이트가 전부인 살림들은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사가는 집의 컬러감과 상관없이, 무난하게 원래 우리가 살던 집처럼 변하는 마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신혼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총 네 번의 이사를, 결혼하고 3년 안에 했고, 그 신혼 1년 안에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그래서일까? 집의 가구들이나 물건들이 모두 하얀색으로 그닥 임팩트를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의 희노애락이 칠해져 어느 날에는 다른 빛깔로 보이기도 했다.
하얀 집안을 조금 다르게 만드는 것은 커텐이다. 중문이 없는 우리집에는 들어오는 현관에 연한 연두색 커튼이 쳐져있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와 함께, 들어오면 마치 봄과 같은 상큼한 기분을 느끼게 하려고 말이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창에는 톤다운 된 민트색 커튼을 걸어두었다. 아이 매트가 깔려있는 거실은 온통 하얗고 밋밋해서, 창밖으로 푸른 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민트색 커튼만이 유일하게 시야를 환하게 해준다.
그리고 큰 방은 원목침대와 하얀색 아기 서랍장이 주를 이루고 거기에 회색 암막 커튼을 했다. 밤에는 편안하게 자려고 말이다. 반면에, 작은 방은 밝은 회색 커튼을 짧게 했다. 너무 답답해보이지 않게 말이다. 그래야 내가 책 읽고 글도 쓰는 공간에서 조금은 숨을 트일 수 있기 때문에.
집의 색깔들을 정리하며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살면서 사람마다 어떤 고유한 색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겠구나. 내 가치관이 이거라서, 내 취향이 저거라서. 하지만 그것을 내세울 수 없을 순간도 더러 있다. 그저 현실에 맞춰서 어떤 색을 취해야 할 때. 마치 신혼의 내가 집을 꾸미며 색을 정했던 것처럼...
그런데 돌아보니 그런 결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공간을 하얀색으로 채우고 5년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느낀다. 때로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색을 취하는 것도 멋지고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앞으로 이사를 가서, 우리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꾸밀 집의 색은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마음에 생각해 둔 것은 있다.
어디서든 돌아와서 편한 마음이 되는 색깔! 찬찬히 내가 집 안으로 스며드는 색깔!
각자 다른 색깔들로 서서히 물들어 갈 우리 셋의 미래를 조용히 머릿 속에 그려보며, 하얀 바탕을 여러 추억으로 칠해가며 살아갈 날들을 또한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