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김치, 고들빼기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백김치... 그리운 이름
제가 살고 있는 호주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오기도 했고, 아직 코로나의 영향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하루 종일 난방을 틀어놓기엔 조금 부담스러워서 저녁때만 틀고 있는데,
쌀쌀한 집 공기 덕에 뜨끈한 솥밥을 해서 달걀프라이에, 찌개 하나, 김치와 김을
자주 올려서 먹었더니 김치가 '똑-' 떨어졌더라고요.
그래서 오래간만에 제가 좋아하는 한국 만두와 김밥 재료, 김치를 살 겸
시내와 가까운 큰 한인 마트에 갔어요.
제가 야채 코너에서 깻잎과 쌈야채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커다란 봉지 하나를 들고 나타난 신나게 나타난 저희 집 프랑스남자 고랑이.
고랑이가 들고 온 큰 봉지에는 조금 시들시들하지만 가격이 괜찮은 알타리 몇 묶음이 있었어요.
"자기야, 이거 총각김치. 나 김치 클래스 또 필요하다."
이 프랑스 남자, 한국 요리를 정말 마스터할 생각인가 봐요.
고랑이가 알타리를 집어 온 김에 총각김치를 만들려고 과일 야채 코너를 다시 쑥 둘러보는데,
오늘따라 단감도 가격이 괜찮고, 오이도 가격이 나쁘지 않고... 하나둘씩 집어 들었더니
쇼핑백 세 봉지를 가득 채우게 되었네요. 정말이지, 저는 늘 일을 이렇게 벌리네요.
그래서 이참에 고랑이가 그토록 원하는 총각김치와 김치도,
단감을 산 김에 단감을 넣은 물김치도,
그리고 전부터 고랑이에게 말로만 소개했던 오이소박이도
만들기로 했어요. 신이 난 고랑이는 집에 오자마자 신문지 몇 장을 바닥에 바로 깔더라고요.
저와 함께 종종 김치를 만들었던 터라, 파뿌리도 깨끗이 씻어서 다듬어 두고,
지난여름 집에서 키운 고추 말린 것도 꺼내오고 제법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더라고요.
장 보고 온 날은, 청소에 3시간 정도 운전해서 한인마트와 동네 큰 야채가게를 다녀온 터라
오자마자 알타리를 씻고, 다듬고 저녁 준비를 하다 보니 하루가 다 가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저의 김치 조수인 고랑이에게 이번 김치만큼은 배추 절이는 것부터 해보라고
바다소금과 배추를 건네주었어요. 프랑스 남자, 이젠 제법 배추가 숨이 죽은 게 어떤 건지 아네요.
저는 그동안 무와 오이를 썰고, 당근은 꽃 모양을 내보고, 단감은 편을 썰어서 준비해 봅니다.
오이소박이를 하겠다고 한 터라 양파와 당근 부추는 송송송 썰고 다지고요.
지난번에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백김치를 혼자 했던 터라 이번에는 여러 가지김치를 하는 김에
뚝딱뚝딱 저의 프랑스인 김치 조교와 함께 해야 할 일을 나누어서 하나씩 하나씩 했어요.
그 와중에 메모를 틈틈이 하는 프랑스 남자. 이번에는 찹쌀가루 사 오는 것을 제가 깜박해서
밀가루로 대신 풀을 쑤거나 아니면 그냥 안 넣을 수도 있다고 했더니 그 마저도 메모해서 적어두더라고요.
그러더니 그의 한마디.
"어디 묵은지? 어디 돼지 묵은지찜? "
조만간 다시 한인 마트 가서 묵은지는 사 와야 할 거 같아요. 묵은지 맛을 아는 프랑스 남자.
프랑스 남자의 진짜 김치
참 이상하죠. 처음 이곳에 유학을 왔을 때는 김치를 직접 담그는 하우스 메이트 언니의 솜씨와
그 정성에 '어떻게 김치를 집에서 하냐'라며 놀라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이곳에서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한국이 그리워지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무척 그리워지고 그래서 한국음식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 되네요.
해외에 나와서 살 수록, 한국음식만큼 삼시세끼 먹어도 안 질리고 속 편한 음식은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저를 만나기 전에는 한국음식은 '김치' 밖에 모르던 이 프랑스 남자조차도
이젠 한국음식을 며칠 안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다며 한국음식을 찾을 때가 많아서 가끔 저를 많이 놀라게 해요.
다음에는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든 '프랑스 남자의 진짜 김치'에 대한 글을 한국에 소개해달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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