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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Sep 28. 2020

냉장고 청소하는 날

옹심이와 영심이


사실, 제가 음식 사진과 글을 자주 올리지만 저희 집 냉장고는 호텔방에 있는 냉장고(미니바)보다 조금 큰, 

아주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를 사용해요. 이 냉장고는 원래는 고랑이가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음료수와 주류보관용 냉장고였는데, 저희 둘 다 큰 지출을 할 수 없는 탓에 결국 저희 집 메인 냉장고로 승격을 하게 됩니다. 보통 장은 1주일에 한 번 보고 있고, 재료는 제가 바로바로 소분해서 날짜를 써두고, 차곡차곡 정리를 해야하니  필요한 만큼만 사게 돼요. 그리고 냉장고가 워낙 작다 보니 10일에 한 번은 싹 다 비워서 냉장고 털이를 할 수 있는 음식을 하게 되는데, 코로나 덕에 정말 당근 하나도 썩거나 끄트머리를 버리는 것 없이 생활하게 되었어요. 냉장고에 남은 야채를 다 채 썰어서 동남아시아풍의 볶음국수부터, 그 볶음국수가 남으면 김말이, 볶음밥, 그리고 집에서 만든 시장표 손만두 까지. 그중 고랑이의 최애 음식은 ' 감자 옹심이'입니다. '옹심이'라는 발음을 어려워해서 늘 '영심이'를 찾는 고랑이.

이 정도면 냉장고 털이 음식치고는 맛있어 보이죠? 시장표 왕만두를 만들어 보았어요.
감자 옹심이

다시마와 멸치, 표고버섯, 그리고 냉장고에 남은 야채로 육수를 낸 뒤, 양파와 호박은 깍둑썰기 해주고, 색이 예쁘게 남아있는 작은 당근은 두껍게 채를 썰었어요. 감자는 깨끗이 씻어서 강판에 잘 갈아준 뒤, 소금 간을 해주고 천으로 감자 물을 빼줍니다. 물기가 쫙 빠진 감자는 한쪽에 모아 두고, 감자 물은 따로 받아서 10분 정도 두면 그릇 바닥에 감자 전분이 생깁니다. 다시 감자 전분과 물기가 쫙 빠진 감자를 고루 뭉쳐서 작은 새알심 모양으로 만들어 줍니다. 잘 끓는 육수에 옹심이가 익을 때까지 끓여준 뒤, 액젓과 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처음에는 고랑이가 자신 있게 감자 물을 바로 싱크대에 갔다 버린 적이 있던 터라 잘하고 있나 감시하고 있었는데, 동글동글 알맞은 모양으로 잘 빚어놓은 옹심이를 보고는 칭찬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보았어요.

감자 물을 잘 제거 중인 고랑이. 힘이 불끈불끈-
예쁘게 잘 굴려서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리고 냉파용 떡갈비

열심히 조수 역할을 잘하는 고랑이를 위해, 오늘은 새로운 냉장고 털이 메뉴 하나를 더 준비해 보았어요.

바로 냉동실에 남아있던 고기들을 갖은 야채와 다져서 만든 떡갈비입니다. 물렁 물렁에서 물컹물컹 에 접어든 배와 파, 버섯, 양파와 마늘, 손톱만큼 생강까지. 집에 떡이 없어서 요즘 싸게 샀던 아스파라거스 남은 것을 떡 대신 떡갈비 모양 잡을 겸 썼는데 생각보다 뭉치기도 쉽고 잘 어울리더라고요.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사온 야채 다지기를 열심히 돌리고, 고기를 치대고, 뭉치고... 어깨가 좀 아파왔지만 열심히 일한 요리 조수에게 이 정도쯤은 해줘야죠.

그새 익은 잘 익은 옹심이
그렇게 완성된 떡갈비입니다.

노릇노릇 떡갈비가 맛있게 구워지는 동안, 옹심이도 준비가 되고, 그 새 고랑이가 며칠 전에 오븐에 구운 비트루트로 샐러드를 만들었어요. 지난번 수제비에 넣어 먹었더니 정말 찰떡궁합인, 집에서 키운 고추를 잔뜩 넣은 양념장도 꺼내고, 막 익어서 냉장고에 넣은 깍두기도 꺼내고, 떡갈비와 쌈을 싸 먹고 싶다며 양상추도 냉장고에서 꺼내니 냉장고에 누가 왔다 간 듯 다 깨끗이 비워졌어요. 친구들에게 저녁 메뉴 사진을 보냈더니 다들 '냉파'라는 단어를 써서,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이렇게 나오네요.

'냉파'란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로, 새로 장을 보는 대신 냉장고 안에 있는 묵은 재료들을 남김없이 사용해 끼니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참조: 구글 검색)
고랑이가 샐러드도 만들고, 며칠 전에 만든 깍두기도 꺼냈어요.
엄마의 꽉 찬 냉장고

옹심이에 김가루와 들기름도 뿌리고, 양상추에 떡갈비와 야채를 싸 먹으니 냉장고 정리도 성공적으로 하고, 뜨근하고 그 감칠맛도 있어서 즐겁게 먹어봅니다. 참, 옹심이는 우리가 팥죽이나 호박죽에 넣어 먹는 '새알심'을 강원도 사투리로 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옹심이 육수가 오늘따라 깊어서인지,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강원도 감자의 그 찰지고 고소하면서 달큼하기까지 한 맛이 생각나네요. 예전에 농활을 갔을 때, 막걸리를 한 잔 걸치며 새참으로 먹던 그 찐 감자의 추억도, 친구들과 속초에 놀러 갔을 때 바로 눈앞에서 갈아서 정말 맛있는 감자를 고대로 맛볼 수 있던 감자 지짐이도, 엄마와 손잡고 시장에 가면 뜨끈하게 봉투에 그 온기가 올라올 때 집어 들어, 쫄깃쫄깃함이 입가에 내내 머물던 감자떡도 자꾸 생각나서 이 동글동글 옹심이는 추억 덩어리인가 봅니다. 다음에는 한국에 가면, 단 거 잘 안 드시면서도 이웃 아주머니께 받은 초콜릿 하나도 아까워서 늘 버리지 못하고 냉장고와 냉동실을 늘 가득가득 채우며 지내시는 엄마에게 '냉장고 좀 비우시라고, 이런 건 제발 버리시라'라고 잔소리하지 말고 감자옹심이와 떡갈비라도 만들어 드리고 제가 먼저 엄마의 냉장고에 숨통을 좀 트여놓고 와야겠어요.


그저 감자만 갈아서 만들었을 텐데, 최고의 재료에는 가장 간단한 레시피. 감자 지짐이- 기다림이 절대 아깝지 않아요. 

제목 사진출처: http://www.ghibli.jp/works/ponyo/#frame&gid=1&pi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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