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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Sep 11. 2020

떡볶이를 제대로 망친 날

망한(?) 떡볶이

때는 딱 3년 전, 2017년 9월 초. 연애 초기에 고랑이가 제가 살던 집에 처음 놀러 오기로 했어요.

처음 남자친구를 초대하는 자리이니, 고랑이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한국음식을 해주고 싶었던 터라 주변에 외국인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제 외국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봤어요.(저도 외국인 남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 남자 친구(혹은 남편), 어떤 한국음식 제일 좋아해?" 떡볶이, 비빔밥, 파전, 잡채, 불고기... 끝없이 한국음식 리스트를 받았지만, 고랑이가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모든 이가 맛있다고 말하는, 그리고 집에 급하게 손님이 왔을 때 가장 간단하게 조리해 먹던 그 빨간 패키지에 잘 포장된 **떡볶이와 냉동 김말이, 한국 만두를 사 왔어요.

파도 어슷 썰기를 하고, 계란도 잘 삶고, 어묵도 넙적넙적 더 썰고, 라면사리와 다시마 물을 미리 만들어 준비를 해두고... 그렇게 준비를 해서 고랑이와 처음 한국음식을 먹어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떡볶이는 한동안 고랑이가 먹지 않는 음식이 됩니다. 한말로 망한 메뉴였던 거죠.


밥이 하기 귀찮은 날에는 떡볶이 패키지를 사서 이런 식으로 차려서 먹곤 했어요. 진짜 맛있는데...

너무 맵지도 않았고, 모두가 아는 그 진짜 입에 착착 붙는 맛이어서 저는 고랑이가 정말 맛있게 먹을 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그 떡볶이는 반도 채 먹지 못한 채 제가 며칠간 먹게 됩니다. 그나마 간장으로 양념장을 만들어서 고랑이에게 주니 만두랑 김말이를 알아서 찍어서 잘 먹더라고요. '어떻게 이 음식이 입에 안 맞지... 이게 국제커플의 문화 차이인 건가?' 싶어서 고랑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맛은 있는데, 너무 달아. 디저트가 아닌 메인 음식에 이렇게 단 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파는 패키지가 아닌 제가 다 만들어서 음식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다 먹기 시작하는 고랑이. 지금은 엄청 맵게 한 떡볶이, 수제비와 라면 사리를 듬뿍 넣은 라뽂이, 양파를 달달 볶아 계란물을 포근포근하게 올린 계란 떡볶이, 들기름과 참기름으로 고소하게 파, 고추기름을 내어 만든 기름 떡볶이 까지. 이젠 떡볶이를 먹는다고 하면 세상 신나 하는 고랑이는 제 옆에서 척척 계란을 삶고, 만두와 김말이를 준비하며 조수 노릇을 하다가 저 몰래 떡볶이 국물에 김말이를 찍어먹다가 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가 해 먹어도 맛있고, 남이 해줄 때 더 맛있는 떡볶이. 어디서 언제쯤 이 맛있는 음식이 시작되었을까요?

양파를 달달 볶아 계란물을 포근하게 얹어주는 부드러운 계란 떡볶이
떡볶이, 떡산적, 병자

신기하게도 국민간식 떡볶이는 조선시대 궁중요리에서 그 시작을 찾아보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보통 떡볶이의 기원을 '떡산적'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떡산적은 가래떡을 고기와 버섯, 야채와 함께 볶아먹는 음식으로 조선 선조 때 학자 유운룡의 시문집인 '겸암 집'과 영, 정조시대 실학자 유득공이 저술한 '경도잡지'에서 그 기록이 나옵니다. 또한 18세기 중엽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어머니께서 병자(‘餠炙, 떡볶이의 한자어)를 좋아하셨는데 영조 본인은 치아가 약해 씹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드라마 '해치'에도 등장하고, '동이'의 주인공이었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일컫는 말이고요. 하지만 '떡볶이'라는 한글 명칭을 처음 선보이는 문헌은 '비빔밥'이라는 문헌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19세기 말 요리서 인 '시의전서'라고 합니다. 또한, 은진 송씨 가문에 전해지는 음식 조리서 인 '주식시의'에도 이 떡볶이와 가까운 음식에 대한 표기가 보인다고 합니다. 옛 기록들을 살펴보다 보니 달콤 짭조름한 궁중떡볶이가 생각나서 침 흘리면서 읽었어요

흰떡을 5푼 길이씩 잘라 4쪽씩 내어 솥이나 퉁노구를 달구어 기 금을 많이 두르고 소고기를 가늘게 두드려 떡 썬 것과 같이 넣어 볶는다. 송이와 도라지를 납작납작하게 썰고, 석이도 채를 썬다. 계란을 부쳐 채 치고, 숙주나물을 유장에 주물러 한데 넣고 질지도 되지도 않게 소금과 장을 맞춘다. 생강, 파, 후추, 잣가루를 넣고, 김을 구워 부수어 넣고, 애호 박, 오이, 갖은양념을 다 넣는다.(주식 시의(酒食是儀) / 한국 식품 연구원 식품문화 한맛 한얼 제6권 2호 참조 (2013년 발행)
매콤하게 한 가득 끓은 떡볶이. 계란은 무조건 하나씩-
빨간 떡볶이는 어디서 온 걸까요?

그러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빨간 국물의 떡볶이는 어디서 온 걸까요?

그 기록을 살펴보면 1953년쯤, 6.25 전쟁이 끝난 뒤 서민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탄생한 고추장 떡볶이는 우리가 '며느리도 그 비법을 모른다는' 그 마복림 할머니가 중국음식점에서 실수로 가래떡을 자장면 그릇에 떨어트렸는데 그 맛에 반해,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양념으로 떡볶이를 노점에서 판매한 게 그 시작이라는 정설이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인 한국전쟁 직후 ‘떡볶이 할머니’로 불리던 노파가 가래떡을 고추장에 재워 간을 한 떡을 기름에 지져 팔기 시작했다는 일명 ‘기름 떡볶이’도 고추장 떡볶이의 유래가 되었다는 기록도, 1970년대, 대구의 윤옥현 할머니가 리어카에 연탄불을 올려놓고 팔 기 시작한 ‘마약 떡볶이’라 불리던 이 떡볶이 또한 고추장 떡볶이의 유래설들 중 하나입니다. 글을 읽다 보니 자꾸 입맛을 다시게 되네요.


저도 친척오빠들과 손잡고 찾아다니던 마복림 할머니 원조집, 친구들과 늘 참치 김밥을 함께 시켜서 그 라볶이 국물이 푹 담가 먹던 디** 라볶이, 부산 가면 여행자 티를 내겠다며 가던 다**, 오징어만 넣었을 뿐인데 그 맛이 깊은 오징어 떡볶이, 매운맛에 눈물 콧물 다 빼고 먹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면서 쿨피스를 한 잔 마시게 되는 **떡볶이, 시장 골목 돌아 야끼만두와 못난이를 통통하게 넣은 밀떡반 쌀 떡반 떡볶이, 학교 앞 포장마차에 앉아서 어묵 국물과 순대와 함께 먹는 떡볶이, 학원 앞 가판대에서 이쑤시개로 콕 찔러먹는 컵볶이, 그리고 남은 국물에 콘옥수수를 넣고 밥까지 볶아서 해주시는 엄마표 떡볶이 까지. 샐 수 없이 먹은 그 떡볶이 속에는 늘 친구와, 가족들과 그리고 추억이 늘 고스란히 보글보글 끓여집니다. 갑자기 검은색 플라스틱 봉지에 순대와 튀김과 어묵 국물까지 뜨끈하게 담긴 떡볶이가 너무 그리워지면서 아, 떡볶이가 먹고 싶네요. 정말이지. 매콤하게 양념해서, 라면 쫄면 사리에 비엔나소시지도 넣고, 야끼만두도 넣고, 깻잎도 송송 뿌려서요.

집에 남은 라이스페이퍼와 김, 매운 소스, 남은 잡채로 만든 김말이. 에어프라이어로 돌리거나 팬에 구우면 환상적인 김말이랍니다.


<참조문헌>

겸암집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245

한국 식품 연구원 식품문화 한맛한얼 제6권 2호 : http://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201367958869502.kr

 ‘매콤달콤’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25404

떡볶이가 궁중요리?…옛날엔 귀한 음식, 고추장 떡볶이 유래는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700&key=20140404.9900218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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