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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Oct 07. 2020

아주 특별한 김치전


"케이가 며칠 내로 떠날 거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한국에서 추석 연휴 잘 보내라는 친구들의 메세지 사이에 도착한 전 직장동료 C의 문자였어요. 아, 케이는 제가 호주에 있는 시간 중, 세 번째로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저희 직장 상사이자 제 첫 호주 친구예요. (참조: 나의 직장 상사 K  ). 서로 힘든 시간, 기쁜 시간을 함께하며 4일 차이밖에 나지 않는 서로의 생일에 늘 매년 서로를 챙기곤 했어요. 서로 좋아하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 병씩 사다 주기도 하고,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케이의 딸을 위해서 저는 명절 때면 전이나 김치부침개, 만두 등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곤 했어요. 유리멘탈인 저를 위해서 '누가 너를 괴롭히면, 이렇게 욕을 해줘'라며 호주 욕을 가르쳐주던 케이. 넓은 호주 땅에 차 없이 낑낑거리며 무거운 툴박스를 들고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는 저를 위해 새벽에 커피 한잔을 뽑아서 집 앞에서 저를 기다렸다가 같이 출근을 하고, 16시간을 넘게 근무한 날에는 함께 케이의 차가 울리도록 즐거운 노래를 스피커를 높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퇴근을 하곤 했어요. 저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함께한 순간이 빼곡하게 쌓여 타지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저를 지탱해주는 일상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케이에게 늦은 생일선물과 카드를 보내려고 집 주소를 물어보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아서 걱정은 했는데... 뒤늦게 알게 되었죠. 케이의 건강이 최근 4주에 매우 악화되었고,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녀가 '그저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 다정한 메세지는 제가 마지막으로 케이에게 받은 메세지가 됩니다. '그냥 빨리 케이에게 일찍 선물과 카드를 보낼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을 울다가 또 울면서, 케이의 딸에게 케이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담긴 사진들을 정리해서 이메일을 보내주었어요. 또, 저는 이 슬픈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전 직장동료들에게 연락해서 함께 케이를 위해 각자 셰프 단추 하나씩을 내어서 그녀가 늘 우리의 곁에 함께 있고, 정말 존경하는 그녀의 삶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로 약속을 하며 그렇게 긴 추석 명절을 보내게 됩니다.

"... 병원에서 나와서 치료를 몇 가지 받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나에게 효과가 없었어.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나는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을 즐기려고 해. 지금은 집 앞 작은 공간에, 음식에 쓸 채소를 가꾸며 내가 늘 좋아하는 정원을 가꾸는 일은 하고 있어....(2020년 8월 29일, 케이(K)가.)"-케이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

타지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실 추석 연휴와 설 연휴를 잘 모르고 있다가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연락에 늘 뒤늦게 알게 되어요. 그래도 전에는 같이 살던 솜씨 좋은 한국인 언니 덕에,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은 고랑이를 위해, 그리고 늘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제 걱정에 메세지를 보내는 엄마를 위해 늘 명절 때면 간단하게 전을 부치고, 만두를 만들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곤 해요. '타지에 있어도,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잘 지내며 이렇게 서로 잘 보듬고 챙기며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늘 감사하다고-' 그렇게 가족들과 엄마와 친구들에게 사진과 메시지를 보낸 지 벌써 다섯 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3년을 함께 저와 그렇게 몇 번 명절을 고랑이는 전을 부치는 날을 손을 꼽아 기다리고, 혹시 장 보면서 빠진 게 없는지 깻잎부터 고명으로 올릴 빨간 고추까지 알아서 챙기곤 해요

몇 해동안 타지에서 해먹은 명절 음식들.
새송이 버섯전, 표고버섯전, 깻잎전, 고추전, 호박전...

올해는 간단하게 넙적넙적하게 썰어서 계란 물을 묻힌 새송이 버섯전, 별표로 칼집을 넣어서 속을 잘 채워 준 표고 버섯전, 고랑이가 제일 좋아해서 속을 듬뿍 넣은 깻잎 전, 그리고 매콤한 한국 고추에 속을 통통하게 채워서 노릇노릇 익혀준 고추전, 남은 속으로 동글동글 눌러준 동그랑땡을 했어요. 한인 마트에 두부도, 한국에서 보는 애호박과 비슷한 호박도 없어서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름을 잘 둘러서 자작하게 전을 올리니 잊고 지낸 명절이 제법 그럴듯하게 다가옵니다. 고랑이는 전을 지지는 기름 냄새에 신이 나서 이젠 척척 양념장도 준비하고, 테이블을 세팅해줍니다. 이번 추석에는 고랑이에게 처음 '막걸리를 전과 함께 먹는 방법'을 소개해주기로 해서 더욱이 신나게 소주잔을 꺼내는 모습에 그만 '풉-'하고 웃음이 나고 말았어요. 지난 명절에는 어땠나... 생각을 곰곰이 해보다가 지난 설에 전을 좀 넉넉히 해서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케이와 케이의 딸을 위해 도시락통을 채워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났어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한국음식 3년이면 알아서 상을 차립니다.
짜잔 완성입니다.


케이가 딸이 특히 표고버섯 전과 깻잎 전을 무척 좋아했다고, 자기가 직접 김치를 만들려고 책도 배추도 샀다고, 네가 예전에 일하면서 만들어준 김치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음식이라며-제 작은 보답에도 늘 크게 마음을 받아주고 고마워했던 케이. 전을 뒤집다가 또 눈물샘이 터질 것 같아서 잠시 불을 끄고, 팬에 남은 기름을 키친타월로 닦는데, 냉장고에 마침 잘 익어가고 있는 김치가 생각났어요. 남은 깻잎을 아주 잘게 썰어주고,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김칫국물과 들기름을 부침가루에 개어서 김치전을 한입 크기로 부쳐봅니다. 바삭바삭한 베이컨을 좋아하던 케이를 위해서, 베이컨도 넣고 바삭함이 살아있게 만들었던 김치전을 정말 자기에게 '맞춤형 팬케이크'라며 어린아이같이 좋아했던 케이. 김치전을 담는데 자꾸 케이의 세상 좋은 웃음을 생각을 하는 저를 보는 고랑이는 말없이 막걸리를 소주잔에 채워주었어요.

부족하지만, 짧은 시간에 만든 올해 추석 모듬전.


케이와 또 다른 친분이 있던 고랑이는, 저와 케이가 서로 챙긴 시간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케이를 정말 좋아하고 챙겼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제가 김치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더라고요. 오후에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자주 가는 와인 가게에서 케이와 제가 몇 번이나 서로를 위해 사주었던 와인을 집어 들 때부터, 제 기분이 너무 처지지 않도록 계속 조잘조잘 말을 하며 저를 도와줄 일들을 알아서 찾아서 하는 고랑이.

고랑이: (김치전을 가리키며) 케이가 네가 해준 김치전 진짜 좋아했었어.
네가 김치전 만들어 준 날, 나한테도 자랑했었거든.
유자마카롱: 그래? 그건 몰랐어. 
고랑이:아, 진짜 케이 보고 싶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고랑이는 능숙하게 선물 받은 본인 젓가락으로 전을 양념장에 푹 찍어 먹으며, 김치전도 입에 오물오물 먹으면서 소주잔에 담은 막걸리도 한 잔 먹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빨개진 눈으로도 웃으면서 저에게 말합니다.

"자기야, 오늘도 우리는' 맛집 투어'야. 막걸리 좋아요! 케이 보고 싶어..."

케이. 너에게 김치전과 막걸리를 같이 먹는 즐거움을 알려줄 걸... 네가 정말 좋아했을 텐데. 나는 늘 왜 이렇게 늦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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