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러 간 미국
나의 첫 미국 이벤트는 부기 바이 더 베이(Boogie By the Bay, BBB, 줄여서 비비비라고 부른다)였다.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에서 열려서 한국에서 갈 수 있는 미국 대회 중 가장 거리가 가까운 대회이기도 하다. 주로 10월 초에 열려 개천절이나 한글날 연휴에 열리는데, 그럴 때면 연차를 얼마 쓰지 않고 갈 수 있어서 많은 한국인이 참가한다.
내가 갔을 때도 연휴가 겹친 덕분에 다수의 지인들과 함께해서 처음 가는 미국 이벤트였음에도 마음이 든든했다.
미국에서는 워크숍이나 소셜 댄스를 하러 갔을 때,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유럽이나 아시아 이벤트보다 미국 이벤트에 어르신들이 많은 이유는 미국의 춤 역사가 제일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미국에는 웨스트 코스트 스윙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로 불리는 Carlito 할아버지가 있다.
연세가 여든이 훌쩍 넘었는데, 춤을 추면서 상을 받았던 기록으로는 1992년이 시작이다. 어느 정도 춤을 추게 된 이후부터 기록이 남는 걸 생각하면 웨스트 코스트의 시작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춤을 춰온 댄서로서 어린 댄서들의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올린 영상을 보면 몇십 년 전, 젊은 Carlito의 춤을 볼 수 있다.
Carlito는 늦은 시간 소셜 시간에도 나와서 춤을 추는데, 젊은 사람들처럼 몸을 화려하게 움직이며 추지는 못한다. 그저 아주 조금 걷고, 움직이고 팔을 들었다 내리는 정도의 간단한 동작만 하는데도 음악에 맞추고 파트너에게 적절한 리딩을 하니 괜찮은 춤을 출 수 있었다. 나와 춤출 때는 무릎이 안 좋아서 한곡을 겨우 추고는 앉아야 했지만 춤을 추는 대신 춤에 대한 역사와 지식을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춤을 췄음에도 항상 자신을 비기너라고 말하고 다닌 탓인지 다른 댄서들과 함께 “더 비기너”라는 이름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Carlito는 오래전부터 춰서인지 근육이 굳어있음에도 어색하지 않게 추지만, 다른 할아버지들은 딱딱한 느낌을 준다. 팔에는 힘을 적당히 풀어도 몸으로 춤을 출 수 있는데, 힘을 빼고 추기 어려워해서 그런 것 같다. 은퇴 이후에 춤을 시작해서 춤을 위한 근육을 새로 만들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나이에 따라 몸을 쓰는 방법이나 배우는 속도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나이가 참가 조건인 대회들도 있다. 35살 이상만 참가할 수 있는 소피 잭앤질(Sophisticate J&J)과 50살 이상만 참가할 수 있는 마스터 잭앤질(Master J&J) 대회처럼 말이다.
춤솜씨를 떠나서 마스터 잭앤질에는 대부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분들이 나오지만 가끔은 젊어 보이는 분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대체 저분은 몇 살일까 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곤 하는데, 대부분은 손주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게 사는 분들이었다. 한국에도 마스터 잭앤질에 출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덕에 다들 잊고 있지만, 손주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이렇게 나이에 상관없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게 된다. 나보다 한 세대는 더 사신 분들이 춤추는 걸 보면 나도 춤이라는 취미로 평생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릴 때 취미 하나는 가지라는데 그게 나에게는 이 춤이다. 잘 추기까지는 어려운 춤이지만 잘 추는 게 아니라 그냥 즐겁게 추기가 어렵진 않다.
춤을 춘다고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취미기에 나는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춤을 출 것이다.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