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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워터 May 13. 2023

아빠 한번, 나한번

아이에게 양보하고 규칙을 따르는 법 가르치기 

내게는 4살, 2살인 두 딸이 있다. 딸내미들과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 에피소드는 각 공간마다 특정패턴이 반복되는데 그중에서 백미는 자동차 안이다. 


둘째는 차만 타면 안전벨트를 섬베옷 찢듯 잡아 뜯으며 사자후를 외친다. 이 싱그러운 소음을 참던 첫째가 인내심을 잃으면 고주파 사격을 시전 한다. 이쯤 되면 교통사고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커버할 음악이 필수적이다. 드라이브뮤직 선정 기준은 부녀간(당사자는 첫째 딸이며 둘째는 태어난 지 11개월이라 협상하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합의에 기초한다. 합의는 총 3차에 걸쳐 진행됐는데. 1차는 딸내미 듣고 싶은 것, 2차는 딸내미 세 번, 아빠 1번, 3차에 와서야 공평하게 한 번씩으로 변경됐다. 각 합의가 전부 극적 타결로 이뤄졌는데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합의는 불쌍한 아빠를 적극 호소한 끝에 얻어낸 첫째 딸의 파토스적 결정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두 딸만 차에 태우고 운전을 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재즈에 파묻혀 우수에 젖고 싶은 기분이었다. 탑승 후 첫 곡은 당연 크레용팝의 빠빠빠였다. 빌어먹을 유튜브 알고리듬으로 우연히 재생된 곡인데 딸내미는 듣자마자 흠뻑 빠져버렸다. 처음엔 신기해서 계속 틀어줬으나 6개월 내내(주 운전회수 등 고려하면 대략 500번 들은 것 같다)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모처럼 재즈 스피릿이 충만한 날에 빠빠빠라니 서글픈 모순이다. 나는 30분 같은 3분을 참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빠차례’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만의 암묵적 룰이다. 상대방 노래가 끝날 때 정확하게 내 차례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노래를 한번 더 들어야 한다. 나는 권리주창 후에 재즈노래를 틀었다. 화창한 날씨와 재즈가 이렇게 어울렸던가. 3초 같은 3분이 지나가버렸다. 10초 즈음 남았을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저히 크레용팝 비트를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모든 노래는 시작과 끝이 비슷한 구조니까 자연스럽게 첫 부분으로 옮기면 재즈음악을 한 번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다. 즉시 실행에 옮겼다. 혹시나 정적이 발생할까봐 첫 소절이 시작한 직후로 넘겼다. 그야말로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구간점프야라고 생각하고 백미러를 봤다. 그녀는 옆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3초가량 재즈음악이 흘렀고 딸내미는 작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이제 내 차례야’.


곧 재즈음악이 멈추고 크레용팝 음악이 차 안을 가득히 매웠다. 옆자리에서 안전벨트를 죽어라 물고 뜯던 둘째는 비트에 맞춰 코를 골고 있었다.  난 그렇게 아빠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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