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랑을 주고받아보세요. 진심으로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진정한 인연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
“네. 제가 옆에서 많이 도와드릴게요.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과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세요. 선호씨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제가 전력을 다해 지지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선호의 두 눈에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그에게는 새로운 사랑의 씨앗이 꿈틀거렸다. 절망의 끝에서 새 삶을 향한 시작이 시작된 것이다.
선호는 그날로 집에 가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도 이제 진짜 사랑을 시작해 보겠다고.
선호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드라마도 보고 글도 쓰고 기타도 연주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극복해 나갔다. 그가 외로울 때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책에서는 한껏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몇 시간씩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내면의 고독, 진정한 창조자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선호도 어느새 고독에 익숙해지고 내면이 단단해짐을 느껴갔다.
선호는 새롭게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음악 감상 동호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에 클래식을 좋아하던 민혜가 생각났다. 민혜가 클래식 공연 감상을 즐기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딴 거 유세나 부리려고 듣는 거지 하면서 무시하던 선호였다. 돌이켜보니 자신은 정말 민혜의 관심사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야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다니 씁쓸한 맛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