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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Oct 17. 2024

돌을 사랑한 남자 - 5. 상처

 그의 머릿속에는 문득 어린 시절이 유튜브 숏츠가 바뀌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호는 어린 시절, 틈만 나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덜덜 떨던 아이였다. 그날도 선호의 부모님은 선호를 앞에 두고 목소리를 높이며 큰 소리로 싸웠다. 엄마는 아빠에게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참을 듯 말 듯 화나 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결국에는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야 마는 것이었다. 심한 날에는 아빠는 부엌에서 칼까지 가져와서 엄마를 위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선호는 공포에 질려서 자신의 방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벌벌 떨며 웅크려 흐느끼곤 했다. 그러면 잠시 후 엄마가 다가와서는 선호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곧장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모텔로 가서 잠을 자곤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호의 엄마와 아빠는 평소처럼 생활했다. 엄마는 이혼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선호 너 때문에 참는다고 했고 아빠는 묵묵하게 새벽같이 일터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곤 했다.     

 

“네 아빠는 어려서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래.”

“아빠가요? 아빠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부모님 사랑은 못 받고 자랐잖아. 그래서 가족에게 사랑을 줄 줄 몰라. 바깥사람들한테나 잘하지 가족한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아빠가 안 됐어요.”     


그러고 보니 또 다른 기억이 파고들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선호를 거실에 앉혀두고 술에 취한 채 흐느끼곤 했다.


 “아빠는 엄마가 두 살 때 돌아가셨어. 엄마가 보고 싶어. 아빠는 엄마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선호는 그 말이 너무나 사무치게 들렸다. 선호는 아빠에 비하면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 생각에까지 미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자신은 그럼에도 사랑을 주고받는 법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선호는 사랑이 뭔지 모른 채 자랐다. 그저 씩씩하게 좀 더 빨리 철드는 어른으로 자랐을 뿐이다. 철이 빨리 드는 것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교감이나 따뜻한 정, 나눔이란 것의 의미를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선호는 줄곧 외롭고 쓸쓸한 애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자신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사랑이란 걸 느끼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부, 지위, 직업, 외모, 호화로움, 부유함에 빠져들곤 했다.     


선호는 친구도 없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따뜻한 감정의 교류를 해 본 기억이 까마득했다. 친구는 나를 돋보여줄 친구, 나에게 필요한 존재여야만 했다. 먼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깊은 마음에서 아껴준 적이 없다. 왜냐면 선호는 사랑받아본 기억이 없으니깐. 선호는 언제나 배운 대로 행동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소설책에서 배운 내용, 영화 속에서 배운 것들을 따라 했다. 선호에게는 영혼이 깃들 여유가 없었다. 선호는 그렇게 사랑이란 것과 철저히 유리된 채 외로운 삶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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