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많은 성공을 하면 자연스레 사람이 따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더 예뻐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바르게 살고 더 많은 성취를 하면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대게는 질투에 의한 것이지만, 질투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신이 질투해서 그런다고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상대의 부족한 점이나 결함을 들먹여서 마구 비난하며 자신의 죄책감을 던다.
나는 대학생 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 책은 호스피스 운동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이란 책이었다. 거기서 우연히 읽은 대목이 내 마음을 끌었다.
『내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발표가 나던 날, 다들 평상시와 다름없이 친절하게 나를 대했습니다. 하지만 상에 대해 언급하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미소 뒤에서 말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아동 심리학자인 동료 교수가 멋진 꽃다발을 보내왔습니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그 순간부터 나는 이 남자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대학생 시절 여행 기획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홍콩, 마카오에도 다녀오고 대한적십자사 UCC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 준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제 그 원인을 내 인격 부족이나 내 탓으로 돌린다. 작은 결함을 발견하면 침소봉대하며 여기저기 소문을 냈고 정당화했다. 그렇기에 점점 더 악순환에 고리에 빠진다. 현직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신규 교사 때부터 상을 받고 군계일학이라고 칭찬받았지만, 질투하고 멀어지고 상처받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를 해명하려고 하면, 내가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고 비난하기 일쑤였고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한때 1년간 스토킹에도 시달려보면서 ‘나대지 말라’는 문자까지 받았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겸손’이라는 필수 덕목을 넘어서 그냥 주눅 들어 사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나를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고 위축된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하면서 해소한다.
어려서 <미운 아기 오리>라는 동화책을 안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 강연장에서 그 동화를 다시 만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실 나댄다, 겸손하지 못하다는 표현도 차이의 불균형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아기 오리가 백조가 모여있는 연못에 가면 그런 표현을 들을 일도 없다. 오랜 시간 아프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나와 어울리는 곳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날개를 퍼덕이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