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과의 진료가 좋은 점은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나의 슬프고 우울한 점도 나누긴 하지만, 좋은 일들과 미래지향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다. 그리고 그럴 때 기분이 더 좋은 것 같다. 처음에는 진료실에서는 나의 힘든 부분이나 아픈 부분만 꺼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나 스스로도 스스로를 편견 속에 가둔 것 같다. 그런데 20분 안에 그런 푸념만 늘어놓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면 나 또한 그 대화 속에서 스스로 깨달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 읽었던 책 중에 <모모>라는 독일 동화가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책인데 모모라는 여자아이는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는 아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다 모모를 좋아한다. 나는 모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면 정작 내 이야기는 할 데가 없어진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럴 때 의사 선생님이 야야말로 나에게 모모 같은 존재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 의사 선생님도 나처럼 힘든 마음이 드시지 않을까? 우연히 지식인에서 정신과의사라는 직업이 안 맞는다는 어느 고민글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내 주치의샘은 직업 만족도가 높으신 것 같다. 병원도 잘 되고 환자도 많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정말 유능하게 답변하고 들어주신다.
한때 나를 상담해 주시는 상담사분과 상담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자해를 하는 청소년에 관한 영화를 보고 함께 토크를 나누는 활동이었는데 나는 그때 나에게 상담은 정말 안 맞는다고 느꼈다. 누군가가 자해를 하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내가 들어주고 적절한 방향으로 안내하기에 내 감정이 너무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나 쉽게 휩쓸릴 것만 같았다. 그런 면에서 상담사나 정신과의사 분들은 예민한 감성을 지니면서도 당찬 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만약 어려움이나 감정적 슬픔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런 강인함을 키우지 못하셨을 것 같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 같다.
상담학회에서 받은 상담자격증은 아니지만, 의미치료상담사 자격증이 있는 나도 가끔 아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담임교사로서 학부모 상담도 한다. 전문상담교사나 상담사 자격증이 있는 분들에 비하면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꾸준히 상담치료를 받는 게 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내 내면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 마음도 좀 더 유연해지는 것 같다. 나의 관심사는 문학이나 창작에 더 가깝지만, 언젠가는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 관련 책들도 탐독해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람은 정말 작은 우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 봤던 애니 속 신기한 스쿨버스를 탄다면 사람의 뇌 속으로 여행해보고 싶다. 인체의 신비전에서 아인슈타인의 뇌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의 뇌라는 것은 참 신비로운 영역인 것 같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매주 진료시간을 통해서 나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도록 해야겠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