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네치아

by 루비

남자가 여자를 만나 첫눈에 빠지는 시간이 8.2초라고 한다. 내가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해서 베네치아에 반한 시간은 0.0001초도 안 걸렸을 듯싶다. 스위스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하여 밀라노역, 베로나 역을 거쳐 도착한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 처음에는 여기가 베네치아인 줄도 모르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름다운 물의 정경에 그만 넋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여기가 베네치아 역이구나.’ 싶어서 후다닥 뛰어내렸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의 배경이 된 바로 그 베니스, 베네치아에 도착한 것이다.


베네치아에는 2박 3일 동안 머물렀는데 도착하기 전에 거쳐 간 런던, 파리, 인터라켄하고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 아래 표지판을 따라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넜다. 12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바다 위의 도시답게 걸어가는 내내 아름다운 물의 풍광을 자아냈다. 베네치아의 명물인 가면과 이탈리아 가죽공방을 둘러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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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걸으면서 마주한 베네치아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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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가면들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해서는 한 카페에 들렀는데 카페에 앉아 광장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연주가 여행의 낭만을 한층 더해주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두칼레 궁전의 위용과 아름다운 음악, 내가 정말 베네치아와 사랑에 빠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던 찰나, 이내 곧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그동안 표지판만 따라 다리를 건너 건너 호텔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바로 앞에 선착장이 보였다. 가서 물으니 산타루치아 역 앞 광장까지 간다고 해서 표를 끊고 수상버스(바포레토)를 탔다. 수상버스는 출발하고 비는 점차 거세져 폭풍우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렇게 바다 위를 20분간 항해하여 무사히 산타루치아 앞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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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 선착장


산타루치아산마르코.PNG 구글 맵에서 살펴본 산타루치아 역에서 산마르코 광장 가는 길


아뿔싸! 그런데 나는 내가 묵었던 호텔이 어딘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호텔이 있던 지점까지 걸어갔지만 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워낙 다리로 이어진 골목길이 많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포기하고 나는 경찰서로 직행했다. 경찰서 안에는 이탈리아인 경찰관이 여러 명 있었다. 이탈리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영어를 사용해서 상황 설명을 했다. 울상이 되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애원하는 나를 경찰관들은 웃어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호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번뜩 내가 아침에 출발하기 전 호텔 앞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던 것이 생각났다. 가방을 뒤지니 식당 영수증이 나왔다. 나는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키가 큰 경찰관 두 명이 나를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호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방 침대에 누워 그날의 베니스 여정을 되새김질했다. 베네치아와 사랑에 빠지며. 다음날 가게 될 피렌체는 어떤 곳일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사실 이 글은 여행 다녀온 후 5년 지나서 작성한 글이다. 여행 다녀온 직후 적어놨던 글들과 머릿속에 남아있는 추억을 되살려 작성하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 여운과 행복감이 생생히 남아있다. 그만큼 여행의 추억은 강렬한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산타루치아 역이 산타루치아라는 노래의 그 산타루치아란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은 넓고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것은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하는 바이다. 계속해서 우리가 알고 떠나고 여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한번 베네치아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이탈리아 민요 산타루치아

https://youtu.be/nOXS_Gioj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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