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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쓴 단상들

by 루비


의사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 중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와 ‘거울은 혼자 웃지 않는다’가 기억에 남는다. 전자는 코끼리를 묶어놓다 풀어도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많았다. 나는 아직 미성년이던 대학생 시절부터(대학교 1학년 때는 만 18세여서 어떤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했다) 스물두 살이 되던 대학교 4학년때까지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내 동생이 내가 이 얘기를 하도 많이 하니깐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는데 정작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내 동생은 세상을 등져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우리 집안은 무교 집안이어서 천주교 세례도 혼자 스스로 받았기에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혼란스럽지만, 진리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 진리를 인간의 힘으로 알아내기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기독교 사상에 반하는 진화론을 펼쳤지만, 이과보다 문과적 성향인 나는 그래도 성경 말씀이 더 진리처럼 느껴진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나의 왕따와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지겨워하지만 난 한 번도 가해자들한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적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말한 내가 오히려 지탄받는 세상 속에서, 너무도 깊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 억울함과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이 크고 그것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계속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보통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약하고 순한 사람을 희생양 삼아 결속력을 맺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마음 약한 사람들은 도저히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대할 수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아프게 되는 것 같다. 내 동생도 그 희생양이 되어서 고등학생 때는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학생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교수, 교사들이 오히려 피해 학생을 따돌리고 가해 학생을 두둔하고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나는 세상에 좋은 선생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이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어서 일본에서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국의 <마틸다>라는 소설도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며 인기를 끌었고, 중국의 <로빙화>라는 소설과 영화도 오래도록 사람들 가슴속에 회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주 웃으며 행복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등학생 때 졸업앨범에 쓴 좌우명이 ‘항상 웃는 거다’였다. 감수성 예민하고 염세적이던 시기에 그런 좌우명을 쓴 내가 안쓰럽긴 하지만, 야자가 끝나면 만화책방과 서점에 들르던 추억이 있기에 그리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내 동생은 애니메이션도 잘 만들고 기획, 창작, 작화까지 혼자서 스스로 잘 해낼 정도로 잘하지만, <재능의 불시착>이란 소설처럼 단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스펙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누나로서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태주의 <풀꽃>처럼, 사랑으로 어여쁘게 바라봐줄 생각을 하기보다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그런 자각은 언제나 가장 연약한 자들의 몫이다. 그래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또한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나비효과>란 영화를 보면서 인생은 운명과 자유의지의 결합일까? 하지만 그마저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정해진 게 아닐까란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그 외에도 보고 싶은 영화가 많지만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무거운 영화도 감당할 수 있지만 어쩔 땐 너무 지쳐서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증하는 드라마나 영화도 있지만, 미화하고 휴머니즘으로 포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많아서 가끔 공감을 못 할 때가 있다. 현실은 그보다 더 잔인하고 차갑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위안이 되는 것은 문학과 음악이다. 대게 고전이 된 문학 소설은 현실보다 더 잔인할 만큼 그럴듯하게 사실적으로 혹은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요즘에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도 꼭 읽어보고 싶다.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이자 어린이동화라고 한다. 20대 때 서점에 가서 표지에 끌려 만지작거리다 놓고 오긴 했는데 모든 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니아 연대기.jpg


그러고 보니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나에게는 독서 모임이 참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마치 독서 모임을 한다고 하면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위축됐었는데 요즘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텍스트힙(독서문화를 장려하는 분위기) 열풍이 불어서 사람들의 기준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 가는 것도 좋아했는데 요새는 미술관 가는 사람들도 늘었다는 뉴스도 보았다. 유행 일변도인 세상에서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은 이해를 받기 위해서는 때론 묵묵히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참 이율배반적인 게 자신이 좀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은 조아리기 바쁘면서 평소 아래로 보거나 만만하게 본 사람에게는 웅크리고 있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더 세상 사람들의 위선에 두려웠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씀처럼 세상을 재미난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어느 평화로운 나라는 뉴스가 공주님, 왕자님 태어나는 일이라 참 심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매일같이 살인, 방화, 사기, 학교폭력, 교권침해, 정치 싸움이니 얼마나 스펙터클 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불닭 라면처럼 매운 라면을 참 좋아하는데 하루하루가 참 즐거운 것 같다. 그리고 ‘거울은 혼자 웃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자주 웃고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예능 프로그램은 좀처럼 흥미를 못 느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동화와 시, 소설을 많이 읽고 웰메이드 영화를 많이 볼 생각이다. 그래서 꼭 혼자서 감당하지 못해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꼭 힘이 되어주고 싶다. 물론 제일 먼저 나부터!



2025년 5월 17일 오후 03_54_2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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