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 by Freepik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내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과 ‘선물’이란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는 말’이고, 누군가는 ‘봉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킨십'이라고 한다.
나는 살면서 무례한 남자들을 접하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간절히 기다렸다. 사랑이란 결국 ‘이해받는 언어’일까, 아니면 ‘이해하려는 태도’일까를 늘 고민했다. 그런 내게 장류진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한 편의 답처럼 다가왔다. 처음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고, 내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오늘 읽은 소설을 통해서 꼭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된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란 짧은 단편소설이다.
이 글에는 소설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이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작품을 읽고 오시길 권합니다.
지훈은 같은 회사 변호사 지유를 짝사랑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자신에게 청첩장을 내민다. 그렇게 마음을 접어야지 했는데 3개월도 안 돼서 그녀는 배우자상을 당한다. 다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있는 후쿠오카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다.
이 소설을 보면 다소 당황스러운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일본의 문화인 혼탕과 지훈이 지유의 전화를 끊고 욕설을 내뱉는 장면, 마지막에 거지인 줄 알고 종이컵에 동전을 넣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커피를 마시던 할머니였단 걸. 이 세 사건은 소설 속 다음 문장으로 압축된다 "가만 보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아요." (본문 88쪽)
지훈은 지유와의 첫날밤을 기대하고 그녀의 모자를 자신의 가방에 넣어두는 묘책을 부리지만, 그녀는 이를 눈치채고 가방에서 지훈이 안보는 사이 이미 모자를 가져간 후였다. 그리고 전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자고 싶었죠?"
"지유씨는 아니었나 봐요?"
"전, 반반?"
뭐 이런 게 다 있지.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뭐 이런 게 다 있지.
"아무래도, 자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러니까 꼭 잘 필요가 있나, 그런 거죠."
.. 중략..
전화를 끊고 지훈은 지유가 열어놓은 가방을 보며 ‘이 씨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소중한 황금연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하며 욕을 한다. 순간 얼굴이 얼얼해졌다. 정말로 지유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앞에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했다. 지훈은 아마도 사랑의 언어가 ‘스킨십’인가 보다. 하지만 지유는 아닐 수 있다. 더더구나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1년 만에 만난 첫 여행에서 서둘러 첫날밤을 보내려 하는 지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유가 이해가 간다.
지훈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지유의 ‘사랑의 언어’였다. 그는 스킨십을 통해 진심을 전하려 했지만, 지유는 존중과 배려 속에서만 마음이 열린다. 결국 사랑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말한다.
지훈은 지유의 거절 앞에서 온 마음을 다 끌어들여 자신의 진정성을 설토한다. 하지만 지훈의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냐는 말에 지유는 "제가 말을 잘한 게 아닐까요"라고 응수한다. 지훈은 점점 분노가 차오르고 수화기 너머로 울고 만다. 순간, 이건 사랑도 진심도 아닌, 그저 활활 타오른 욕망이 꺼져버린 것에 대한 분노란 생각이 들었다.
지유가 사별한 남편과 결혼한 건, 어쩌면,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준다고 느껴서가 아닐까? 둘의 청첩장에 그려진 리본 맨 청둥오리는 남편이 그렸다고 한다. 지훈은 어떻게든 지유와 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지만, 지유의 사별한 남편은 지유의 세심함을 이해해 주고 따스하게 안아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만 앞서서 상대를 소유물로 바라보면, 그런 사랑은 도달할 수 없음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