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카와 앵무새를 보고 온 날
전날 너무 많이 울었다. 베갯잇을 다 적셔가며 난 왜 이럴까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가끔씩 이런다. 예전에 어떤 소설가가 그의 책에서 자신은 피아노의 88반 건반을 모두 사용하듯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타고 했는데, 나도 마치 그런 것 같아서 공감이 갔었다. 또다시 감정의 하강곡선을 타는 나를 받아들이며 그렇게 퇴근 후 저녁 내내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는 집 근처를 벗어나 조금 더 멀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운전을 두려워하는 나는, 그래도 운전 경력 2년인데, 4km를 못 갈까 싶어서 용감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조금씩 어스름이 감도는 저녁, 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한쪽엔 골프장이 보이고 한쪽은 공원으로 이루어진 곳. 울창한 산맥이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문득 내가 영양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곳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 그윽한 산맥이 얼마나 웅장한지 아름다운지를 자각하지 못했는데, 주말에 놀러 왔던 선배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곳, 가평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푹 빠져버렸다.
티켓을 발권하고 플라워 가든으로 입장했다. 손목에 두른 티켓을 스캐너에 찍을 때 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언덕 위로 계속해서 숲길이 이어졌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장의 뛰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윽고 갈림길, 페루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알파카를 보기 위해 옆길로 들어섰다. 그 지점에서 조그마한 다람쥐가 잽싸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도토리를 물고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꼬물이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다가갔지만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알파카가 있는 목장에 도착. 이미 가족 단위,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울타리 문을 열고 나도 살짝 그 틈에 끼어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알파카는 뒤쪽으로 다가가면 뒷발로 걷어차일 수 있다고 사육사가 알려주어서 뒤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았다. 대신 살며시 앞쪽으로 다가가 유심히 지켜보았다. 온몸에 얼룩이 있는 알파카가 연신 바닥에 있는 풀을 먹고 있었다.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나한테 달려들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 차마 손을 대진 못하였다. 사육사가 알파카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정말인지 연갈색과 검은색 알파카가 나를 보고 호기심을 가지며 계속 따라와서 "오지 마! 오지 마!"라며 겁을 냈다. 온순하기 짝이 없는 귀여운 알파카를 겁내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 외에도 호숫가의 청둥오리들, 폴짝폴짝 뛰는 토끼, 음메에에 하고 우는 양, 뒤뚱뒤뚱 오리,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앵무새, 꼬꼬댁 울어대는 닭, 연못 속 잉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는 라쿤을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동물들이 우울한 마음을 환히 개어주어 기뻤다. 문득 이곳에서 일하는 사육사들은 동물을 참 좋아하는 분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닌 게 아니라 사육사들은 키우는 반려견도 데려와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반려견들은 숙소에서 기다리는 중)
한 시간의 가든 산책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는 레스토랑에서 한식 식사로 마무리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은 금요일 오후는 나에게 또다시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매일매일 이렇게만 살자 다짐하며 조용히 밤잠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