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제빵사 되다

스콘과 호두파이

by 루비

중학교 1학년 토요일 CA시간, 친구의 제안으로 시외로 제과제빵을 배우러 다녔었다. 그때 하루에 5,000원 하는 재료값이 너무 부담이 됐지만, 차마 엄마한테 말할 수 없어서 매일매일 받는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충당했다. 지나고 보니 사실 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지만, 13살 어린 나이에 빵을 만들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제는 거의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빵을 만들게 됐다.(몇 년 전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만든 적이 있기는 하다.) 교육청 주관으로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근처 제빵소에 가서 스콘과 호두 파이를 만들고 왔다. 시간 조율이 안 맞아 출장시간을 훨씬 넘기게 되어 약간의 볼멘소리가 있었지만 막상 다 만들고 나니 그럴듯한 빵의 모양과 식감에 모두 환호성을 연발했다.


제빵소는 학교에서 그리 멀리 있지는 않았지만 꼬불꼬불 한참을 숲 속을 향해 들어가야 했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이 잘못 알려준 건 아닌가 겁을 먹고 헤매기도 했다. 막상 도착하니 진짜 시골 같은 풍경에 떡하니 자리 잡은 제빵소가 무척 위풍 있어 보였다.


제빵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벽에 걸린 앞치마를 가져가서 두르는 것부터가 베이킹의 시작이었다. 양쪽으로 주머니가 달린 남색깔의 앞치마를 두르니 다들 제법 그럴듯한 제빵사처럼 보였다. 제빵사님이 여러 가지 재료를 계량해서 준비해주시고 알려주신 레시피에 따라 밀가루와 설탕, 소금, 버터, 호두, 연유, 건포도 등을 섞어 버무렸다. 오랜만에 하는 요리 실습이 교대 시절 실과 시간을 떠올리게 해 추억으로 젖어들게 했다.


버무린 반죽으로 한 개당 100g이 되게 저울에 올리며 스콘 모양을 잡아갔다. 나와 특수 선생님은 약간 무성의하게 느껴질 정도로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마치 빈대떡 만들 듯이 반듯반듯하게 압착해서 모양의 틀을 잡았다. 내가 만든 스콘이 볼품없으면 어쩌려나 걱정했는데, 제빵사님은 스콘이 원래 그렇다며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셨다. 정말 막상 30분 동압 오븐에 굽고 내어보니 가장 스콘답게,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스콘 재료(좌), 호두 볶기(우)


스콘이 오븐에서 구워질 동안 호두파이도 만들었다. 호두파이 만드는 것은 스콘보다 더 쉽고 간단했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납작하게 만든 후 파이 모양 틀에 넣고 나서 틀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제거해준다. 그리고는 포크 끝으로 반죽 바닥에 구멍을 송송 내어서 구울 때 부풀어 오르지 않게 한다. 마지막으로 호두 조각을 잔뜩 집어넣고 그 후에 물엿과 설탕, 계란 등을 버무린 충전물을 넣고 구우면 끝!


완성된 스콘(좌), 호두파이 반죽(우)

알고 보니 제빵사님의 따님이 내가 1 지망으로 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하는구나 새삼 신기했다. 제빵사님은 이곳 마을에서 오랜 시간 마을 체험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하셨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중단됐지만, 다시금 여러 제빵 관련 노하우를 바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고 재밌게 체험하다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라고 하셨다. 얼굴에서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다 구운 스콘과 호두파이


호두파이가 구워지는 동안 만들어놓은 스콘을 맛보았다.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스콘을 토마토 주스와 함께 먹으니 빅토리아 여왕이 즐겨 먹었다는 빵이 이런 맛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빵사님이 나누어준 봉투에 뜨거운 스콘과 호두파이를 하나하나 담으며 이날 활동에 정점을 찍었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어 입구는 봉하지 말라는 제빵사님의 말씀을 지키며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처음엔 가기 싫은 마음으로 꾸역꾸역 갔지만, 막상 빵을 완성하고 돌아오고 나니 정말 즐겁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아, 어쩌면 좋지! 가평이 계속해서 너무 좋아지려 한다.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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