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와 다빈치
원래 목적지는 <쁘띠프랑스>였다. 올봄에도 다녀왔지만, 어린 왕자 체험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유럽 전통의상 체험도 가능하다고 해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도착하니 매표소가 자리를 옮기고 없었다. 이탈리아 마을이 개관했기 때문에 통합 매표소가 언덕 위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언덕을 걷고 또 걸어 <쁘띠 프랑스>와 이탈리아 마을 통합 매표소 앞에 도착하고 나니 갑자기 이탈리아 마을이 가고 싶어졌다. 왼쪽으로 가면 <쁘띠 프랑스>, 오른쪽 언덕 위로 올라가면 이탈리아 마을이었다. 이탈리아 마을의 정확한 명칭은 <피노키오와 다빈치>이다. 전날 피노키오 노래를 들었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피노키오를 보러 가라고 안내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황화 코스모스가 군데군데 심겨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거대한 피노키오 동상이 서 있었다. 어떻게든 피노키오 동상과 함께 사진을 찍어보고자 했지만 경사진 언덕이라 삼각대를 마땅히 설치할 곳이 없었다. 나는 몇 번 시도해보고 포기했다. 그리고는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피노키오를 두 눈에 가득 담아왔다. 몇 년 전 피렌체에 갔을 때 봤던 피노키오 목각인형들이 떠오르면서 이렇게 나를 동심으로 이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로 들어서니, 마치 진짜 이탈리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탈리아 건물 외형을 그대로 복원해놓았다. 폐장 1시간 전에 도착한 지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첫 번째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베네치아에서 봤던 무수한 가면들이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가면을 3개를 사 왔는데 이사하는 과정에서 모조리 잃어버리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반갑고 이 많은 걸 수집해오다니 정말 설립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어떤 분일까 궁금해졌다. 퇴장 직전에 지하에 있는 다빈치 전시관도 들렀는데 각종 예술품이며 다빈치의 발명품 모형 등 정말 어마어마했다. 아마 설립자분은 굉장한 부호이면서 또한 예술적 안목이 뛰어난 사람일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사실 올라오면서 왜 이렇게 높다란 곳에 지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전망대에 올라오면서 사라졌다. 청평 호수와 그 옆의 여러 건물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 정말 감탄을 자아냈다. (다만 옆에 산 중턱을 깎아 공사 중이어서 그 부분은 보기 안 좋았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자연환경을 부러워했던 마음이 어느새 가평에 대한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높다란 곳에 올라가면 심하진 않지만 다소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풍경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왔다. 그다음에 간 곳이 바로 다빈치 전시관이다. 다빈치 전시관에는 비록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본 <모나리자> 그림이 떡하니 있었다. 삼엄한 감시 속 유리 보호막 안에 있는 그림을 수많은 인파 속에서 관람하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이곳은 나 혼자라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뿐만 아니라 <암굴의 성모>, <최후의 만찬>도 있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은 밀라노에나 가야 볼 수 있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좋았다. 문득 고등학교 2학년 영어 시간이 떠올랐다. 영어 선생님이 여러 퀴즈를 내주었는데 나는 대충 thirteen(13)이라는 숫자가 귀에 꽂히자 The last supper(최후의 만찬 영문 명칭)라고 정답을 맞혔던 일화이다. 이날도 이 그림을 보자 예수를 포함해서 전부 13명이 맞는지 하나하나씩 세어보기도 했다.
다빈치 전시관에는 다빈치의 그림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뽐냈던 그의 업적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비록 모형이긴 하나 이렇게라도 역사적인 천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들뜨게 해 주었다. 여러 동력장치 전시를 보니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 애니메이션과 대학로에서 봤던 연극 <무한 동력>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을 융합해서 나도 무언가 창조적인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빈치 전시관 끝에 있는 아말피 해안 대형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철커덩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혹시 내가 여기 있는 줄 모르고 문을 잠가버려 지하에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코로나19이기도 하고 폐장 시간이 다 되어서 방문객이 거의 없는 곳을 혼자 쏘다니려니 은근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것 또한 하나의 모험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인생 자체가 모험과 도전의 연속 아닐까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