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과 스테파네트가 생각나는 곳

가평 양떼목장

by 루비

아름다운 단편 소설, 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 앱을 켜고 알퐁스 도데의 <별> 오디오북을 들었다. 중학생 때 교과서에서 처음 접한 이 소설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과 함께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꼽는 책이다. 별빛이 아름답게 수놓은 밤하늘 아래에서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교감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오는 듯했다.


근처 양떼목장을 다녀오니 괜스레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이었다. 양을 멀리서 본 적은 있어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내 버킷리스트에는 ‘대관령 양떼목장 다녀오기’가 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늘 미루어오다 결국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주 피아노 레슨을 받다 선생님께서 “양을 쓰다듬는 감촉처럼.”이란 말에 “양을 만져본 적 없는데요?”라고 반문한 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대관령 양떼목장은 아니지만 집 가까이 있는 양떼목장에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어서 가게 된 곳이 <가평 양떼목장>이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가본 적 없어서 비교불가이지만 <가평 양떼목장>도 꽤나 운치 있고 양들과 친해지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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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을 끊고 건초 교환권을 가지고 건초 교환소로 갔다. 교환해주는 사람은 없고 자율 교환대였다. 건초 한 더미를 가지고 양떼가 있는 울타리 안으로 갔다. 이미 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건초를 양에게 먹이고 있었다. 나는 어떤 양에게 주면 좋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눈앞 5m 거리에서 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양은 이내 내 손에 들린 건초더미를 발견하고는 나를 향해 직진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주친 양과 나. 나는 처음에는 손으로 건초를 조금씩 꺼내서 양의 입에 넣어주었지만 이내 양의 저돌적인 기세에 놀라 건초더미가 든 봉투 통째로 양에게 주었다. 양은 봉투에 머리를 넣은 채로 열심히 건초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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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나는 생애 처음으로 양털을 쓰다듬어봤다. 엄청 부드럽고 폭신한 털을 상상 했는데 예상 밖의 촉감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의 엉클어진 머리칼, 또는 싸구려 옷의 모자에 달린 털 같은 느낌이었다. 솜뭉치가 뭉텅 그려 엉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성격만큼은 정말 온순했다. 새하얀 양과 함께 목장에 서있으니 정말 행복한 기분이었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엄청 행복해 보였다. 여기서 별똥별 하나만 떨어져 준다면, 진짜 알퐁스 도데의 소설 속 목동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들과 함께 있는 기분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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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양들이 계속 건초만 먹는 통에 고개를 드는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어 사진은 겨우 몇 장 건졌을 뿐이다. 혹시 밤하늘에 별이 보일까 싶어 올려다보았지만 주변이 환해서 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양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을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주변은 온통 푸르른 산에,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며 즐거워하는 가족들, 추억의 사진을 찍는 커플들의 모습, 그리고 솜털 같은 털 뭉치로 몸을 감싼 양떼들까지. 어쩌면 소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우리네 일상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지만, 이렇게 잠시나마 여유를 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https://youtu.be/jovnL1Ih7OM 조승우가 읽어주는 알퐁스 도데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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