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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r 25. 2022

작고 여린, 약한 것들을 위하여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를 읽고

    

 자본주의 시대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 더 힘이 센 사람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한다. 상대적으로 적게 소유한 사람들, 힘이 약한 사람들,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고 천대받기 일쑤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퀴어, 장애인, 난민, 기초생활수급자, 외국인 등은 쉽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한다.


 퀴어와 장애라는 정체성을 지닌 체라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약자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약자이기에 받는 차별과 억압을 부당하다고 목소리 높이기보다는, 그마저도 희미하게 지워버리고 더 큰 포용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씨>라는 동아리에서 만난 대니와 산에 올라 장뇌삼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통해. 이 씨앗이 자라서 삼이 되고 산의 비밀이 되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이야기가 전해질 때 즈음이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장애인도 운전하고 마음껏 서핑을 즐기게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오긴 올까? 라며 이 소설을 읽으며 약간의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마음씨>라는 동아리를 통해 무심한 듯 조용하고도 건설적인 방법으로 삶에 저항해나가는 모습이 일견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약자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체는 예술과 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색채에 민감했고 자신의 몸에 조화롭게 배치할 줄을 알았다. 그녀는 옷이 아니라 그림이나 음악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시와 전시회를 좋아했고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밴드 연주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체.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퀴어와 장애라는 주홍글씨를 지닌 그녀가 정작 그들의 세계로 들어서려 하면, 사람들은 경계하고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녀를 자신들의 집단 안으로 들이는 일에는 주저했지만 체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정도는 망설이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소수자에 대한 시혜적 베풂과, 경계를 긋는 차가움의 공존으로써 여실히 다가왔다.


 체의 고백을 거절하는 양헬. 스페인어로 천사라는 뜻을 지닌 '양헬'의 이름 안에 포함된 영어의 지옥을 뜻하는 '헬'. 체에게 있어 양헬은 천국과 지옥을 섞어놓은 것과 같았다. 마음을 내주는 듯 보여도 일정 거리 이상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 바운더리. 그 밖에서 괴로워하는 소수자의 마음을, 그들의 삶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왜’라는 질문에 소설로써 답하고 싶었다고 한다. 무엇에 관한 ‘왜’인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계속 다른 존재가 찾아와 저를 걱정하게 하고 잠 못 이루게 하고 걸어온 길로 다시 돌아나가지 못하게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가 저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를 이끄는 방향으로 더 가고 싶을 뿐입니다. 제게 희망이 있다면 되돌아나가는 길을 자꾸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라는 말미의 문구가 넓은 의미의 공감과 연민, 연대의식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차가운 현실에 거부당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한 가지 더 기억하고 싶다. 작고 여린 체가 씨앗을 뿌리는 행위로써 자신만의 아름다운 행위를 이어나갔듯, 양헬이 체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우월감과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우리에게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무조건적인 배척과 혐오도 나쁘지만,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위 또한 옳지 못하다. 어떨 땐 오해와 색안경이 서로를 가로막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가 아닐까. 어눌한 발음으로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체, 소설로서 ‘왜’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던 작가, 그리고 독자, 독자들의 주변 사람들이 모여서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무화과나무에도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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