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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Oct 08. 2022

사랑은 어지러운 것.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젊은 청춘 남녀는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꿀 것이다. 그런데 동화 속에서나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바람은 현실의 장애물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한 때 사랑했던 사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건,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일까.

 영화 같은 사랑을 그린 로맨스물이 여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를 끄는 건,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을 대리 충족해주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나 영화 <노트북>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은 어떤가. 낭만적인 감정의 교류와 장밋빛 로맨스보다는 육체적인 동물적 탐닉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뽀즈드느이세프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날 선 의견을 펼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숭고한 감정에 대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는 걸, 남자들이 필요로 하는 건 몸뚱이 하나뿐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온갖 추잡한 짓을 일삼은 여자는 용서해도 꼴사납고 촌스럽고 추한 옷을 입은 여자는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 크로이처 소나타_49쪽(뿌쉬낀하우스)


 뽀즈드느이세프는 젊어서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눈에 차는 귀족 가문 출신의 순결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 새 삶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신혼여행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고 사랑과 끝없는 증오의 싸움을 격렬히 반복한다. 다시금 평화를 되찾는 듯하다가 아내에 대한 끝없는 질투심에 괴로워한다. 의사와의 관계에 대해, 새로 나타난 바이올리니스트와의 관계에 대해 끝없는 상상을 하며 아내에게 적개심을 보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체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격렬한 질투의 본능이 싹트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고 두려워졌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델로>에서 자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질투하는 오델로 장군이 연상되기도 하고, 기차에서 만난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부인의 말에 냉소적으로 말하는 뽀즈드느이셰프의 주장이 정말 사실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부부들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더해진다.

 결국 소설은 비극으로 치닫으며 끝을 맺는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묻는 독자들에게 <크로이처 소나타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답한다.


첫째, 사회적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보편적으로 굳게 믿고 있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거짓된 과학으로 무장한 주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
둘째, 결혼 전에는 물론 결혼 후에도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에 빠져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서정적이며 고결한 행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모독적인 동물적 행위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가정교육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
셋째, 여성이 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피임은 죄악이며 금욕적인 삶이 결혼 생활에서는 더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
넷째, 인간이 아이를 짐승의 새끼처럼 키우는 행위를 멈추고, 인간의 아이로 자라도록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점.
다섯째, 결혼을 했든 결혼을 하지 않았든 간에 육체적 사랑이 칭송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신에게 봉사하거나 인류나 조국, 과학, 예술 등에 봉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목적이라는 점.


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라 일컬어지는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를 이 한 작품만으로 이해하기란 어렵겠지만, 61세란 나이에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혼을 하여 8남매를 두었지만, 아내와의 불화로 가출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던 점이 결혼생활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는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빌려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을 통렬히 비판했지만, 뽀즈드느이세프의 휘몰아치는 감정에 대한 몰입으로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랑이란 있다고 믿고 싶다면 지나친 이상주의자일까. 아직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한 61세가 되지 않아서 인생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세상엔 분명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다이아몬드처럼 진귀한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톨스토이가 비판한 바로 그 지점, 관능이나 육체적 쾌락이 아닌, 서로의 마음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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