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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May 30. 2024

여성민요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여성민요의 정의


. 2024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남성 중심의 패권은 거대한 성과 같습니다. 역차별을 호소하는 20대 남성이 있지만 세상은 아직은 남성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그 힘과 질서에 적응해 온 시간이 역사이며 여성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농경 시대 여성들은 첫닭이 우는 새벽이면 밤새워 베틀을 돌리던 자리에서 일어나 겨를 골라내어 쌀을 씻고 물을 길어다가 불을 피워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은 불과 백 년 전까지 이 땅에서 살았던 평범한 여성들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점심을, 점심상을 물리고 나면 저녁상, 그렇게 해가 저물면 다시 옷이며 이불이며 바느질을 하고 베를 짜기 위해 베틀 앞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밭매러 가기도 하고 김매기, 모내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물론 남성도 일을 했습니다. 남성의 노동은 대체로 마을을 단위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들에 나와 함께 작업을 했고, 절차에 따라 들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여성들은 그들보다는 단조롭지만 홀로 해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노동의 현장에서 읊조리며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삶이 더욱 퍽퍽해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입니다. 임진난과 병자난을 겪으며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은 불행히도 성리학적 이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통적인 혼례 관습이었던 남귀여가혼(남성이 여성의 집으로 장가를 가는 혼인)이 친영제(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시집가는 혼례)로 정착되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던 것입니다. 


  여성은 혼인하기 전과 혼인한 이후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혼인 이전에는 누군가의 딸로서 자라지만, 혼인한 이후 여성은 며느리라는 새로운 가족으로 편입되어 살았습니다.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시집이라는 가족 안에서 아직 유보된 가족 구성원으로 살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널리 불렸다고 추정되는 시집살이 노래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알리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성민요에 관한 연구는 꾸준하게 이어졌지만,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여성민요가 채록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였습니다. 물론 조선 후기 민요를 한시로 승화시킨 이옥과 같은 분도 계시지만, 본격적인 채록과 기록은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연구자들은 여성민요의 존재에 주목했습니다. 여성민요가 지나고 있는 문예적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고정옥, 임동권. 서영숙, 강진옥, 이정아 등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연구자들이 진행한 연구를 살펴보면 여성민요는 ‘여성창자에 의해서 불리는 여성적 소재를 담은 여성적 시각의 노래’로 창자는 여성이고 소재는 여성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노래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성민요라 칭할 수 있는 다양한 노래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여성민요와 더욱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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