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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사는 사회 Apr 03. 2021

현우가 꿈꾸는 세상(4)

소설입니다.

연구원에서의 하루는 쳇바퀴 흘러가듯 흘러가고 있었다. 현우는 연구원이라는 조직이 언제나 과업이 우선시되고, 사람은 조직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한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현우가 아무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어도 누구 한사람 이를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현우가 일을 안했다고만 생각했다. 


현우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이런 것에 집착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인생의 목적이 단순히 돈벌고 자신 만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사는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손해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겸손하며 사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연말로 갈수록 기획팀 일은 바빠만 갔다. 특히 연구기관들의 업무실적을 평가하는 12월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각 연구기관의 업무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원장들의 연봉이 결정되니 원장들은 여기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기획팀이었다. 새벽까지 야근은 계속되었고 현우도 계속되는 야근에 점점 지쳐만 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제 기관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팀장님도 현우도 그날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나왔다. 옆 자리의 강이 형은 어제 밤 샌다 그러더니 지금은 컴퓨터만 켜져 있고 숙직실에서 자고 있다. 

다들 마무리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김강씨, 자리에 있나?”

현우가 대답했다.

“아뇨, 어제 밤새고 지금 잠깐 휴게실에서 자고 있습니다”

“얼른 내 자리로 오라 그래”


순간 현우는 망설였다. 어제 강이 형은 밤새서 일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지금 꼭 깨워서 데려와야 하는 건가? 지금 데리러 가면 부장님은 좋아할 순 있어도, 현우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뭐야 김현우, 내말 안 들려?

“예 저 그게...”

“빨리 데리고 오라면 데리고 올 것이지 지금 반항하는 거야?”

“......”


보다 못해 팀장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현우씨, 괜찮으니까 김강씨 얼른 데리고 와.”     


현우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부장님은 왜 이렇게 결과만 중요하다고 생각 하실까? 결과만 중요하다면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상관없단 말인가?‘ 현우는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과정을 거치면 결과는 당연히 좋게 나올 수 밖에 없지만, 결과를 좋게 만들기 위해 과정을 무시한다면 부하들의 신임을 잃을 것이다.


“부장님, 이건 옳지 않습니다. 조금만 기다렸다 김강씨가 오면 그때 들여보내도 되지 않습니까? 꼭 지금 가야하는 것입니까? 죄송하지만 전 깨우러 갈 수 없습니다.”

“뭐야? 김현우 이 자식 미쳤어?”


부장은 책을 집어 던졌다. 책은 그대로 날아와 현우의 얼굴에 맞았다.

“......”


보다 못해 팀장이 나섰다.

“부장님 제가 깨우러 갈께요. 현우씨가 마음이 여려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부장은 그래도 화가 안 풀렸는지 씩씩 거렸다.

현우는 생각했다. ‘그래 이제,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자. 여기서 계속 안주하게 되면 영혼의 발전도 없고 계속 후회만 남을 거야.’ 


현우는 다시 한번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족들의 나에 대한 기대와 사랑하는 윤경이...이들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비록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예전부터 나의 꿈을 알면 결국엔 잘 이해해 줄거야.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느냐 이지, 돈과 명예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자 현우는 더 이상 미룰 것이 없었다. 


 현우는 그 다음날 원장을 찾아갔다.

“원장님, 제가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연구원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자네, 갑자기 왜 이러지? 그말 진심인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게.”

“아닙니다 원장님, 제가 어느 한순간에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10년 이상 생각해 왔던 문제입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제 꿈을 펼치려 새로운 날개짓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 김현우씨 잠깐만 진정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나?”

“원장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전혀 맞지 않는 버터를 먹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조직 생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지금까지는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만,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지식만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과 희생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교육이 된다면, 먼 훗날 이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도 서로를 존중하는 행복한 사회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현우는 그길로 연구원을 나왔다. 하늘은 흐렸지만, 속은 뻥 뚫린 것 같았다. 

하지만 현우는 윤경이가 이해해줄 수 있을지, 지난 번 정원이처럼 또 떠나가 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또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그래도 현우는 이제야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한없이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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