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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당신의 밤하늘은 찬란히 빛나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1] 빈센트 반 고흐

The Starry Night(1889), 뉴욕 모마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짙은 파란색 하늘과 검은 초록의 나무가 서늘하고 어두운 밤임을 알려주고 있네요. 불켜진 마을의 창들은 무거운 노란색으로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오로지 달과 별들만이 온 힘을 다해 빛나고 있습니다. 

밤 하늘의 별들을 본 적이 있겠지요? 고흐의 그림처럼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하염없이 넋을 놓고 보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수많은 별들을 헤다가 말기를 반복하고 북극성과 카시아페이아 자리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곤 합니다. 

특히나, 그리운 사람이 있는 이들에게 밤하늘은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고마운 대상이 되어줍니다. 분명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닿을 수 없는 바로 그곳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니 더없이 반갑고 더없이 고맙지 않겠어요? 

그리움이 클수록 별은 더욱 빛나고 마음 속에 열망이 가득할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할 것입니다. 마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처럼 말이지요. 고흐의 그림 속 별들은 그 기세가 등등하여 전혀 사그라들지 않을 것처럼 위용을 자랑합니다. 밤하늘을 휘돌아감는 거친 바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굳세 보입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초승달도 마치 보름달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니 고흐의 마음은 분명 벅찬 상태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이토록 큰 그리움과 열망을 고흐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그리움을 가만히 묻어둘 수 없다면, 열망을 조용히 삭힐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고흐의 인생을 알기에 그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은 찬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슬픈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89년 고흐는 내측 측두엽간질로 인한 여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발작 사이사이에 흥분, 광기, 우울, 불안, 공허, 피로, 분노 등 다양한 정신적 이상 증세를 동반하는 질병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고흐의 정신질환에 관해서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의 연구와 분석이 진행되었고 제한된 정보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는 가장 신빙성있는 결론입니다.(출처: 'The Illness of Vincent van Gogh', Dietrich BlumerM.D., Published Online:1 Apr 2002)

평범하지 않은 성격으로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들과 불화를 겪어 왔고 극단적이고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보니 그의 행동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천적인 뇌질환으로 이러한 성격을 띠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결정적으로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당시 예술가들이 즐겨마시던 술, 앱생트를 마시면서 고흐의 정신질환은 더욱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에서 머무는 동안 술도 끊고 자신이 꿈꾸던 이상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정의 고조와 동요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면 끊었던 앱생트를 다시 마시곤 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찾은 술로 정신질환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흐는 절망에 빠지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창조적 에너지를 뿜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미친 듯이 쉬지 않고 그리다가 이내 모든 에너지를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 고흐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고흐가 밤하늘의 별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이 때였습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림만으로는 여전히 뭐랄까, 그래, 종교(신앙)를 향한 지독한 간절함을 채울 수는 없구나. 그럴 때면 별들을 그리기 위해 밤에 나가곤 한단다."

고흐의 밤하늘의 별은 즉, 갑작스레 밀려드는 미칠 듯한 열망과 엄습하는 불안, 사무치는 외로움과 끝없는 공허를 치유하기 위한 절실함의 소구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별이 빛나는 밤'은 따라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매달려 완성한 구원을 향한 처절한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평화롭게만 보이는 마을의 교회 첨탑은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자 하는 처절한 심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교회의 첨탑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반면, 왼쪽 전면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불타오르듯 솟아오르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살아움직이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인간의 한계와 자연의 무한함을 비교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 그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주로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시야를 가리기 위해 묘지 주변에 주로 심는 나무라고 하는데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은 결국 죽음에 이르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려는 암시였을까요. 

하지만 고흐는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를에서의 계속된 발작과 소동으로 입원을 반복하고 마을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자 1889년 스스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그 곳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창작활동에 불을 피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습니다. 생레미 정신병원에 있는 1년 동안 고흐는 무려 300점 정도의 작품을 그려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도 그 중 하나였지요.

정신병원을 퇴원할 당시 고흐는 담당의로부터 치료가 되었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고흐는 북쪽의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지내며 역시나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베르에서 지낸지 두달 남짓만에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 생을 마감했습니다. 




Field with Stacks of Wheat(1890), 바이엘러 미술관

그의 마지막 날들에 그린 그림 중 하나는 '밀 더미가 놓인 밭'(1890)이었습니다. 추수가 끝난 밀밭에 놓인 밀 더미들이 높이 쌓여있습니다. 거침없이 자라던 밀도 때가 되면 거두어지고 그 자리에서는 또 다시 새로운 밀이 자라겠지요. 이제 정리를 할 때가 되었다는 듯 고흐는 쨍한 여름의 어느 일요일 밀밭에서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그림 속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시선은 자꾸만 하늘이 아닌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원인 모를 발작들, 그 사이사이에 갑작스레 찾아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들, 자신의 마음이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의 정체들. 고흐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답답하고 외로웠을까요. 이러한 절망적인 심정을 어디에라도 풀고 싶어 그는 밤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찬란히 빛나는 별은 고흐에게 얼마나 심심한 위로를 주었을까요. 

그의 밤은 분명 낮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 있었으니까요.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에 대한 열망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밤하늘은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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