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님
여사님
"여사님~~"
".............."
"여사님~~~~"
이 근처는 나 밖에 없는데 누군가 여사님이라는 낯선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안전모를 보니 원청 탑재 1부 반장이었다.
"여사님 쓰레받기 잠깐 쓰고 갖다 드릴게요."
"네~~"
이렇게 듣기 좋은 말로 하는데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사님이란 말은 결혼한 여자에게 붙이는 존칭이면서 사회적으로 저명한 여성 이름 뒤에 쓰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호칭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결혼을 했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으며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일하고 있는 나 역시 썩 괜찮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일할 때 안전모를 쓰고 얼굴에 두건을 쓰고 마스크를 하고 보안경을 쓰기 때문에 얼굴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호칭으로 불러주는 저 사람은 분명 멋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일할 때 간혹 '아줌마'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아줌마' 기질이 나온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의 '아줌마' 기질은 억세고 당차며 부끄러움도 잘 모른다. 욕도 잘하고 해야 한다면 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거나 못 들은 척한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아주머니'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말이다.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괜찮게 받아들인다.
우리 반장은 나보다 5살 적다.
반장은 나를 부를 때 '누님'이라고 한다.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작업지시를 하면 무조건 '예'라고 대답한다.
'누님'은 '누나'라는 말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누나라는 말에는 다정하고도 친근한 정감이 깃들어 있다.
또 이 세상 대부분의 누나들이 남동생들에게 친절하다. 그래서인지 '누님'이라고 부르는 우리 반장을 보면 동생 같기도 하고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무조건 작업지시에 충실하게 따른다.
우리 회사 취부사 중에 임꺽정 같이 힘도 세고 일도 잘하는 사원이 있다. 이 취부사의 첫인상은 우락부락하고 무서워 보였다.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취부사가 나에게 "누~"라고 불렀다.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누~'라는 호칭은 '누이'의 줄인 말이다. 가수 설운도 씨의 '누이'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 노래를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누~'라는 호칭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말은 참 정답게 하네"하면서.
그 후로도 그 취부사는 항상 나를 누나도 아닌 누이도 아닌 '누~'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는 그 취부사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정답게 대하고 있다.
러그반에 지원을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반에는 남자사원이 전부 외국인이다. 20대부터 있다.
"안녕. 티엔"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안녕하세요. 누나"
"안녕. 그룽"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안녕세요. 누나"
"안녕. 민 코코"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그때 네팔에서 온 카르키라는 사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 아닌데... 할머니야"
카르키는 우리말을 잘한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농담도 잘했다. 내가 몇 살 인지도 안다.
그때 옆에 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누랄리가 말했다.
"여기서는 무조건 누나라고 불러야 해. 안 그러면 기분 나빠한다고 학교에서 가르쳐줬어."
웃음이 나왔다. 그 학교가 핵심을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순수하고 착하다. 모두 나를 '누나'라고 불러주는 그 애들과 일하면 기분이 좋다.
호칭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다른 곳은 어떻게 호칭을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조선소서 함께 일하다가 일감이 없어지면서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건설현장으로 가서 일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었다.
"그곳은 여사원에게 뭐라고 부르나요?"
"여긴 여사원은 나이 불문하고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남자사원은 무조건 반장님이라고 불러요. 조선소 반장이 여기는 팀장입니다."
우리는 '이모님'에서 님자는 빼고 '이모'라고 부르면 대체로 무난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