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연 Jun 28.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행운은 준비된 자의 것.

2010년  6월.

여권 만료일이 다 되었다.

'이제 해외 나갈 일도 없을 테니 갱신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갱신을 했다.

7월의 어느 날.

삼성중공업에서 협력사 모범사원 해외 인프라 견학을 보내주는데 우리 회사에서 한 명이 가게 되었다고 한다.

경력 있는 남자 사원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못 가게 되었다. 내일 당장 여권을 원청에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못 가게 된 사람은 우리 반원이었다. 그래서 우리 반 사람 중에 대신 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지금 여권 있는 사람 있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거의 모든 회사에서 남자 사원들이 가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다들 없다고 했다.

"저는 있는데..."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이주연 씨가 가는 걸로 합니다. 내일 아침에 여권 가지고 오세요."

이런 행운이 다 생기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로또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실제로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잘 짜인 코스로 흥미롭고 알찬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현장에서 4년을 일한 후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땄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모두 현장에서 경험을 하고있고 수시로 받는 안전교육 덕분에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산업안전기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은 퇴근도 없고 휴일도 없고 항상 바빴다. 나에게는 한도 끝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볼 수 없었고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스트레스만 잔뜩 쌓이는 이런 일은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어야 좋다고 생각하고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그래도 이 자격증이 정년퇴직 후에 어떤 행운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장일이 내게는 딱이었다. '땡'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어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면서 살아가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노트에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고 틈틈이 짧은 글을 써 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2021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고 야드에 일감이 줄어들면서 시간이 제법 많아졌다.

그때 소셜 미디어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웹 서핑을 하다가 가슴에 확 꽂히는 글을 발견했다.

'꿈을 품고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그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라는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 놓고 수시로 읽으면서 나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행운이 찾아왔다.

야드에 일감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정부와 거제시의 지원금을 받아 교육훈련을 실시한다고 했다.

한 달간 교육을 받게 되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이런 것이리라.  행복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생긴 것이다.

현장에서 일도 하지 않고 시간도 많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올려 작가 신청을 했다.

3일 후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 기뻐서 심장이 뛰었다.

드디어  '작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작가다.

이때부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이 신나서 춤을 추는 것 같다.

페이스북 친구의 게시물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지점에 있다.'


내 동료 중에는 일과를 마치고  '퀼트'를 하는 친구도 있고  '타로카드'를 배우는 친구도 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