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부터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데일리 리포트 쓰는 법을 가르쳤다. '데일리 리포트'는 하루 동안 한 일을 적은 기록을 말한다.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서 얻고자 한 교육적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둘째,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아는 메타인지력을 기를 수 있다. 셋째, 반성(셀프피드백)과 행동수정을 통해 좀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과연 초등학생이 어른들도 하기 힘들다는 데일리 리포트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로 판명 났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데일리 리포트를 잘 활용했다. 그중에 한 달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친구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날은 데일리 리포트를 제출하는 첫 번째 날이었다. 첫날이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아이들의 숙제를 살펴보았다. 그중에 눈에 띄는 데일리 리포트가 하나 있었다. 바로 수한(가명)이의 데일리 리포트였다.
수한(가명)이의 첫날 데일리 리포트
엄청 잘 쓴 데일리 리포트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한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면 무언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성실함이 보였다. 또한 6학년 남자아이 치고는 자로 줄도 긋고 글씨도 또박또박 쓰는 등 아주 깔끔하게 숙제를 해왔다. 수한이를 따로 불러서 칭찬도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데일리 리포트 쓰는 법을 가르쳐준지 약 2주가 지났다. 아이들은 여전히 꾸준하게 자신들을 하루를 종이에 기록해나갔다. 수한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검사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수한이의 한층 업그레이드된 데일리 리포트
첫날의 데일리 리포트에 비해서 업그레이드된 부분들이 보였다. 감사일기는 전체적으로 쓰라고 알려주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습관 체크리스트에 대해서는 수한이에게 알려준 적이 없었다. 수한이는 저번에 예시로 올라온 내 데일리 리포트를 보고 참고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글을 쓴 지는 이미 일주일이 넘었다고 했다. 하루에 1시간, 1편을 목표로 한글파일에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수한이의 말을 듣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수한아, 기왕 글 쓰는 김에 브런치 작가 한 번 해볼래? 초등학생 브런치 작가 어때?
오! 재미있겠는데요! 좋아요. 한 번 해보죠!
수한이에게 브런치에 가입하는 법, 글 올리는 법, 저작권이 없는 사진 받는 법들을 가르쳐주었다. 어떤 식으로 제목을 지어야 할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 지도 조언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있던 진원이도 갑자기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단다. 그렇게 나는 2명의 초등학생 브런치 작가 지망생들을 코칭하게 되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여전히 수한이는 글을 쓰고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쓰기가 추가된 수한이의 데일리 리포트
4일 전에 작가신청을 했는데 떨어졌다고 했다. 나도 그 아픔을 알기에 위로해주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담담해 보여서 위로를 포기했다. ㅎㅎ
"브런치 작가 떨어졌는데, 서럽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그런 거 없어?"
"선생님, 어차피 글은 매일 쓸 거고 나중에는 브런치 작가에 합격할 거니깐 괜찮아요. 매일 쓰는 게 더 중요해요."
수한이의 대답을 듣고 '와! 이 놈은 진짜 크게 될 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데일리 리포트 검사가 끝나고 수한이의 일기장을 검사하는데 깜짝 놀랐다.
일기의 내용을 보면, 수한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있다. 즉 메타인지력이 매우 높은 학생임을 알 수 있다.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학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데 오히려 수한이는 학원을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것도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수한이에게 물어보니, 원래 취미가 축구였는데(축구 실력이 우리 학교에서 Top5 안에 드는 실력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축구를 못하게 되어서 새로운 취미를 하나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주 멋진 생각이다!
아직 데일리 리포트를 쓴 지 1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저 정도의 성장이라니... 아이들은 참 빨리 적응하고 변화하는 것 같다. 이 친구들이 지금처럼 꾸준하게 성장한다면 앞으로 5년, 10년 뒤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너무 기대된다.
나로 인해서 아이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뿌듯하다. 이 맛에 교사를 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