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20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확진자수를 확인한다. 332명? 332명?? 332명???
하...
한숨을 내쉰다. 일주일 뒤면 바로 결혼식인데... 우린 이미 4월 달에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이미 한 번 미뤘다. 결혼식이 미뤄져, 3월에 혼인신고를 하고 이미 6개월째 같이 살고 있는 중이다. 이미 부부와도 다름없는 상황에서, 마치 결혼식이 숙제와도 같은 이 상황에서 또 결혼식이 미뤄질까 두렵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4월 결혼식 청첩장 300장을 세절기에 갈고 있던 나를 보고, 동학년 선생님이 농담으로 8월 결혼식도 연기되는 거 아니냐고 농담으로 놀렸었는데, 지금 그 말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렵다.
아내는 며칠째 잠을 못 잔 상태다. 10일 전만 했어도 드디어 결혼식 한다고 잔뜩 들떠있는 상태였는데...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가고부터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온몸에 힘이 없어 보인다. 작년 7월부터 준비했던 결혼식을, 무려 1년 2개월 동안 준비한 결혼식을 또 미룰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오전부터 지인들에게 계속 연락이 온다.
"야, 걱정돼서 전화해봤다. 결혼식 예정대로 하는 거 맞지?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음... 아직 잘 모르겠어. 좀 있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여부 발표 난다는데 기다려 봐야지..."
와나...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한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이 되면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모이는 행사에는 집합금지가 적용된다. 즉, 우리의 결혼식도 50인 이내의 하객들로 구성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가족, 친지 빼고는 우리의 결혼식에 올 수 없다는 뜻이다.
아내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결혼식을 위한 노력들이 또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고 한다. 결혼식 준비하던 지난 1년 2개월 동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작년 7월 웨딩박람회, 11월 프러포즈, 12월 스튜디오 사진 촬영, 1월 드레스픽, 혼수준비, 2월 청첩장 돌리기... 코로나 이후의 상황도 떠올랐다. 3월 청첩장 회수, 혼인신고, 4,5,6월 결혼식장과의 계속된 의견 조율, 7월 다시 청첩장 돌리기, 아내의 다이어트, 아내와의 셀프축가연습, 8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된 이 상황까지...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청첩장...
갑자기 화가 났다.
'왜 남들 쉽게 하는 결혼식을 우리는 이렇게 하기가 힘든 거지? 너무 짜증 난다! XX...'
우리보다 힘든 여건에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우린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잘 컨트롤되지 않는다. 현실도피를 위해 침대에 누웠다. 2시간 동안 벙찐 상태로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앞으로 또 지인들에게 다시 연락을 돌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니 끔찍했다. 이 힘든 과정들을 또 거쳐야 된다니...
이불속에서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두려움, 분노, 아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보였다. 당장 이 상황들과 감정들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당당히 마주하기로 했다. 그때 갑자기 문득 한 가지 통찰이 떠올랐다.
상황을 바꾸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by 빅터 프랭클
지금 나 혼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라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 내 힘으로는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킬 수 없다. 즉, 상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먼저 현 상황에 대한 내 태도부터 바꾸기로 했다. 불평, 불만, 걱정에 내 에너지를 쏟기보다, 문제해결에 내 힘을 집중하기로 했다. 항상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말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이 위기처럼 보이지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어!'
난 항상 특별한 결혼식을 바라 왔다. 남들과 똑같은 결혼식이 하기 싫어, 주례도 없애고 결혼식 오프닝부터 아내와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했다. '지금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결혼식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
얼마 전에,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결혼식을 했다는 어느 부부의 기사를 봤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더 이상 결혼식을 미룰 수 없고 특별한 결혼식을 바라는 우리에게 딱이었다! 당장 온라인 결혼식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먼저 관련 업체들을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비용이 비쌌다. 우리가 넉넉한 형편은 아니기에,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어떤 플랫폼을 사용할지부터 고민했다. 라이브 방송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인스타, 밴드, 유튜브, ZOOM 등이 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드신 하객 분들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가장 편한 플랫폼은 유튜브였다.(다른 프로그램들은 어플을 깔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음.)
바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구독자 1000명이 안 되면 방송이 안 된다는 글도 있고, 1000명이 안 돼도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글도 있었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어! 구독자 1000명이 안 되는데도 라이브 방송이 된다! (혹시 안되시면, 프리즘 라이브라는 어플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미리 라이브 방송 예약 시간을 설정해놓고, 하객 분들에게 링크를 보내기로 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줄 친구도 한 명 구했다.(일말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해준다고 한 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ㅠㅠ)
코로나 결혼식의 모습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겠다는 우리의 의사를 전하니, 부모님도 찬성하셨다. 일단, 온라인 라이브 방송은 해결!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먼저 50인 이내의 하객들로 결혼식을 구성해야 했다. 내 쪽에 25명, 아내 쪽에 24명의 사람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식장에 전화해서 50명 이내에 직원도 포함인지 물어보니, 지자체별로 지침이 조금씩 달라 확인해보고 월요일에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휴...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관련 내용 완벽 습득, 하객들에게 온라인 결혼식 안내, 결혼식 동영상 만들기, 식사권 조정, 노래 연습 등이 있었다. 예비신부님과 같이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보니, 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불속에서 틀어 박혀서 현실도피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했다.
분명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상황을 바꾸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빅터 프랭클의 명언과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결혼식을 준비하려고 한다. 현실도피를 하기보다, 당당하게 마주하면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좋아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