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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27. 2020

결국 다음주 신혼여행 취소했습니다...

'와... 드디어 3일 뒤 결혼식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1번의 결혼 연기, 발리 신혼여행 취소, 3번의 청첩장 돌리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이번 주에 있을 온라인 결혼식, 무려 1년 2개월 동안 준비한 결혼식...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되자마자 발 빠르게 50인 이하 하객으로 구성된 온라인 결혼식(유튜브 라이브 결혼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당장 결혼식이 취소될 거라는 걱정은 없었다. 설사 3단계로 격상이 된다고 해도 10인 이하로 직계가족만 모시거나, 정 안 되면 아내와 나 둘이서만이라도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3일 뒤 있을 온라인 결혼식을 준비했으나, 그래도 마음이 착잡하다. 애써 웃고는 있지만, 아쉬움과 슬픔에 매일 밤잠을 설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결혼식이 미뤄져, 혼인신고를 하고 이미 6개월째 같이 살고 있는 상태.)



10시 20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어제 확진자수를 확인한다. 320명? 320명?? 하... 사흘 만에 또 확진자수가 300명대로 증가했다...


'하... 감염 증가세가 줄어들기는커녕 이렇게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센데, 다음주에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신혼여행이라지만 이렇게 국가적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여행을 가는 건 좀 아닌 거 같았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신혼여행을 취소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말했더니, 바로 눈물을 흘린다...


"아니, 그냥 여행도 아니고 신혼여행이잖아... (눈물)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도 안 됐는데, 신혼여행까지 포기하기는 싫어... 그냥 가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3단계 격상이 문제가 아니라 어쨌든 지금 국가적 위기 상황인 건 맞잖아... 오늘 확진자 증가세를 보니깐 심상치 않은 거 같아. 그냥 이번에는 포기하고 다음번에 잠잠해질 때 가자."


"다음에 언제? 결혼 끝나고 신혼여행은 내 인생에서 한 번 밖에 없는데? 그냥 제주도에 가서 어디 안 돌아다니고 호텔에만 있으면 안 돼? 여태까지 다른 거 다 포기하면서 신혼여행만 보고 견뎌왔는데... 제발... 가면 안 돼?"


"우리가 설사 호텔에만 머문다 하더라도, 어쨌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잖아. 전국 각지에 사람들이 모일 텐데, 혹시나 우리가 감염이라도 된다면... 반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우리는 선생님이잖아. 애들 보고는 방역수칙 잘 지키라고 어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항상 얘기하면서, 신혼여행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인 우리가 여행을 다니면 애들한테 좀 부끄러울 것 같아. 진짜, 미안... 조금만 참자... 나중에 더 좋은데 가자."


"그럼 이번에 여행 취소하는데 드는 위약금은? 못해도 50이상은 드는데... 또 손해를 보자는 거야?"


"하... 어쩔 수 없지... 코로나에 걸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생각해보면 취소하는 게 맞는 거 같아."


한참 의논 끝에, 결국 신혼여행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내 의견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냥 너무 슬프다고 한다.



교감 선생님께 내 의사를 말씀드리니 굉장히 안타까워하신다.

"교실남아, 그래도 특별휴가는 그대로 쓰는 게 어때? 결혼식 하고 바로 일하는 거는 좀 그렇다... 일주일 동안 아내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아니면 차 타고 근처에 드라이브도 갔다 오고~ 푹 쉬다와! 기간제 선생님은 이미 구해놨으니 학교 걱정은 하지 말고!"


동학년 선생님들도 다들 걱정을 해주신다.

"교실남 선생님... 어떡해요... 아내 잘 달래주세요. 하... 빌어먹을 코로나...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일주일 푹 쉬다 오세요."


그 와중에도 슬퍼하는 아내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아내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아내와 함께 행복한 신혼여행을 보낼 수 있을까?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짜내었다. 온갖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캠핑도구 사서 집 안에서 캠핑, 직접 차 운전을 해서 당일치기로 집 근처 한적한 곳에 여행 가기, 인적이 드문 섬에 여행 가기 등등...


아내에게 내 의견을 말했더니 회의적이다.

"우리 캠핑은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리고 신혼여행이 캠핑이라니... 당일치기 여행은 괜찮은데, 그래도... 섬은 너무 더울 거 같아..."


이번엔 둘이서 같이 머리를 짜내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풀빌라 어때? 어디 이동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랑 접촉할 염려도 없잖아. 네가 좋아하는 수영장도 있고!"


"좋아!"


그제야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신에 지금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니깐, 상황을 지켜보다가 최대한 신혼여행 기간 막바지에 2박 3일 정도 예약을 하는 건 어때?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재미나게 놀자!"


"그래, 좋아! 그리고 아까 계속 울고 짜증내서 미안해... 나도 모르게 너무 서러워서 그랬어. 앞으로 안 그럴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나도 네 마음 공감 못 해주고 계속 신혼여행 취소하자고만 얘기해서 미안해..."


"자기야, 사랑해♥"


"나도 사랑해♥"


제주도 신혼여행은 취소되었지만, 우리의 사랑은 더욱더 돈독해졌다.



#신혼여행 #신혼여행취소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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