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다. 이제 옷만 갈아입으면 오늘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메이크업샵 탈의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엄마가 내 쪽으로 다가오신다.
"아들~~ 오늘 정말 고생했어. 엄마는 이제 마음이 홀가분하네~~~"
그리고 봉투 하나를 건네주신다.
"아, 그리고 이건 아빠가 쓴 편지다. 혹시나 결혼식 때 아버지 덕담 순서 있을까 싶어서 미리 써놨다고 하네. 나중에 집에 가서 읽어봐라."
"엥? 그때 덕담 안 하기로 했잖아요. 편지 쓰셨으면 덕담하겠다고 말씀해주시지... 그리고 우리 사이에 새삼스레 편지는 무슨~~ ㅋㅋ 알겠어요~ 나중에 한 번 읽어볼게요."
신혼여행은 다음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거실에 대자로 누워 쉬고 있었다.
"자기야, 아까 아버님 편지 받았다며? 자기는 내용 안 궁금해? 난 궁금한데~"
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에이, 아빠랑 자주 보는데, 무슨 별 내용 있겠어? 편지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지. 궁금하면 네가 읽어봐~"
아내가 아빠의 편지를 읽어줬다.
00에게
아들아! 결혼 축하한다.
너는 언제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었지만 제대로 표현하기는커녕 그동안 잔소리만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늦었지만 이 못난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훌륭하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이번 기회에 꼭 하고 싶구나.
이제까지는 우리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경험자로서 너에게 당부 한마디 남긴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밖에서는 나쁜 남자라는 소릴 듣더라도 마누라한테만은 착한 남자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 다툴 일이 있으면 웬만하면 아니 무조건 네가 먼저 양보하길 바란다.
아빠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점은 엄마와 너희들에게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이다. 느지막하게 만회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도 과거의 일을 지울 수가 없구나. (가끔 엄마가 원망할 때면 뼈에 사무침) 밖에서는 착한 사람으로 통했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할 때는 위로가 되어주지도 같은 편이 되어주지도 않았고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방탕하였으며 자식에게는 술과 찌들어 많은 시간을 같이 놀아주지도 제대로 대화도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의 너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혹여 아빠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항상 멋진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되길 바란다.
며느리에게
00아. 못난 우리 아들 짝이 되어줘서 고맙고 우리 가족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앞으로 00이가 잘하겠지만 혹시 너에게 잘못하는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우리에게 일러라.
언제나 우린 네 편이 되어줄게~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악착같이 살지 말고 즐겁게 재미있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기 바라며 초심을 잃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여행 가길 바란다.
신혼여행 잘 다녀오너라.
2020. 8. 29
아빠가~
편지 내용을 듣던 도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이상하게 계속 눈물이 나왔다. 아내가 왜 우냐고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것 때문에 운다.' 하고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편지 내용이 슬펐던 탓일까? 아빠의 진심이 담긴 편지 내용이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일까?
아빠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6살 때 아빠 등에 업혀 바닷가에서 수영하던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축구 못 한다고 놀림을 받아, 주말마다 아빠에게 축구를 배웠던 기억. 초등학교 6학년 때, 산삼 찾을 거라고 매주 아빠와 함께 미륵산에 인적이 드문 길로 가다 옻나무에 옻이 오른 기억.
중1 때, 아빠 퇴근만 하고 오면, 같이 장기를 뒀던 기억.(내가 이길 때까지 하자고 계속 우겨서 엄마에게 혼난 적도 있음ㅎㅎ) 중3 때, 아빠랑 같이 농구하면서 아빠가 슛을 하는데 완전 블락해서 기분 좋았던(?) 기억(그때, 삼촌이 나를 보고 불효자식 놈이라고 했음.. ㅋㅋㅋ).
고등학생 때,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싸우고 가출할 마음으로 집 밖을 나와, 동네 뒷산에 올라가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는데, 1시간도 안 되어 아빠가 나를 찾아온, 그리고 같이 바다를 바라본 기억. (아빠는 왠지 내가 거기 있을 거 같다고 하셨다.)
성인이 되어 아빠와 함께 처음 술을 마신 기억. 군대 휴가 나올 때마다 아빠와 당구를 치러 갔던 기억.(아빠에게 이기기 위해 군대 안에서 쉬는 시간에 당구만 쳤음...) 2년 전 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때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했던 아빠의 문자...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빠의 존재가 나에게 아주 컸다는 것을 알았다. 편지에서 아빠는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해서 후회스럽다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아빠였다. 세상 어느 아빠가 아들이랑 주말마다 산에도 가고 농구, 축구도 하고, 같이 장기도 두는 등 이렇게 아들에게 좋은 추억들을 남겨줄 수 있겠는가? 아빠는 그냥 좋은 아빠가 아니라 훌륭한 아빠였다. 그리고 아빠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아빠의 반만 닮으라고 하신다. 심지어 내 아내도 항상 "아버님은 정말 어머님한테 잘하시는 것 같아. 정말 멋있으셔"라고 얘기한다.
아빠! 아빠는 충분히 멋있는 아빠, 좋은 남편이셨고, 지금도 그러세요. 아빠처럼 좋은 남편, 멋진 아빠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아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아빠 #아빠의편지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