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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래서 여행을 가는구나!

by 교실남

지금은 아내와 함께 1박 2일 거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항상 내 차지였던 운전대는 지난 2개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운전 기술을 마스터한(?) 아내가 잡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했어도 불안 불안했는데, 내가 마음 놓고 글을 써도 될 정도로 이제 제법 안정된 운전실력을 보이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어쿠스틱 콜라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네요~ 왠지 내 맘이 떨려오네요~'

거가대교 풍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른다.

"(둘이서 열창) 두근두근하는 내 맘, 왠지 싫지 않네요. 이제 사랑을 시작할래요."


"와... 좋다."


"그러게. 진짜 좋다."


전에는 여행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아내와 함께하기 전까지, 난 여행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을 따라, 어른이 되어서는 친구들을 따라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솔직히 사람들이 왜 굳이 여행을 가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난 단지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게 재미있어서 여행을 따라 간 거지,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간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제주도 4박 5일 여행을 가서, 달랑 성산일출봉 하나만 보고 4일 동안 제주도 PC방에만 있다 온 에피소드만 봐도 이미 말 다했다... ㅎㅎ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과 귀한 시간을 들여가면서 여행을 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 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책을 읽으면 되는데 피곤하게시리 여행을 가다니... 차라리 여행 갈 돈으로 저축을 하거나, 책을 한 권 더 사 보거나, 자기계발에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사귀기 초반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와 많이 다퉜다.



몇 개월 전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혼인서약서에도 있음.) 대신 코로나 시국이니만큼 사람 간에 접촉이 많은 여행 장소는 피하기로 했다.


약속을 한 뒤로 4번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내 마음은 이랬다.

'그래... 아내가 그렇게 원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남편이 희생해야지... 하... 근데 진짜 가기 싫다... 그냥 집에 가만히 누워서 쉬고 싶다... 아니야... 그래도 남편으로서 도리는 해야지...'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갔다.


근데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특히 이번 여행은 여느 때보다 달랐다. 여행지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내와 함께 노래 부르기,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독서하기, 같이 반신욕하면서 명상하기, 스파에서 숨참기 대결하기, 저녁 밤바닷길 걸으면서 야경 감상하기... 이 모든 과정들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여행의 재미'라는 것을 느꼈다.


'아... 그동안 내가 여행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닐까? 아내와 함께하는 과정은 즐기지 못하고, 그냥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임무(결과)에만 너무 집중한 것은 아닐까?'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의무감에만 매달려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00아, 너는 여행이 왜 좋아?"


"음... 너랑 새로운 것도 많이 보고 같이 좋은 추억 남기고 싶어서?"


"(잠시 생각하다) 그래! 앞으로도 나랑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이제야 여행의 맛을 조금은 알 거 같다.



#신혼부부 #여행 #여행의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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