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Nov 09. 2020

최고의 효도는 애정표현

한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부모님께 애정 표현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어버이날이 되면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편지도 쓰고, 부모님 생신이 되면 선물도 챙겨드리고, 평소에 애교도 많이 부렸던 기억이 난다. 매 번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그 날 학교와 학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부모님께 신이 나서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5~6학년 즈음부터 갑작스런 신체와 정신,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해 부모님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만 했어도 '우리 아들 공부 못 해도 좋으니, 몸만 건강해라.'라고 했던 부모님은 5학년 말 즈음부터 나에게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줬다. 친구 관계, 학교 생활, 요즘 감정 상태 등 다양한 소재의 대화들은 점점 사라지고, 식탁에서는 대부분 공부에 대한 얘기만 나오게 되었다.


"아까 수학 학습지는 풀었니?"


"네 친구 00이는 공부를 매일 밤 12시까지 한다더라."


"왜 너는 그 모양이니? 좀 열심히 해라!"


항상 대화의 끝은 부모님의 잔소리(특히 엄마)로 귀결되었고, 대화를 할 때마다 매 번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난 부모님과의 대화를 피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고 사춘기가 왔다고 표현했다. 갑자기 사춘기가 와서 애가 이렇게 된 거라고... 예전엔 착했는데, 애가 사춘기가 오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변한 환경들, 친구관계, 오히려 먼저 변한 부모님의 인식 변화 등 여러 요인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내 행동은 고작 '사춘기 때문에'라고 전부 설명이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친구들을 보니, 나만 이런 문제들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세부적인 이유들은 달랐지만, 맥락은 비슷하게 모두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진짜 말이 안 통해."


"무슨 말만 하면 맨날 잔소리야."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과 싸우고 가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또한 부모님과의 갈등에 3번 정도 집 밖을 뛰쳐나간 경험이 있다. 내가 하는 행동마다 간섭을 하고, 심지어는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다.'라는 이유로 꿈과 대학마저 정해주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과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부모님과 나는 뭔가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잘 안 통할 것이고,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멀어진 만큼, 부모님에 대한 애정표현도 어색해져만 갔다. 그리고 부모님과 불화를 겪는 친구들의 모습과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이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색했다.


대학교 2학년 초, 엄마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당신의 꿈을 나를 통해 이루려 한 거 같다고, 나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너무 욕심을 부려 미안하다며 우시면서 사과를 하셨다. 나도 방에 들어가서 그동안 부모님에게 했던 잘못들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부모님께 애정 표현을 많이 했을까?


아니다... 부모님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애정 표현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군대에 다녀오면 바뀐다더니, 군대에 다녀와서도 비슷하더라...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때는 재작년 말부터였다. 2017~2018년 나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떠나가고, 직장동료들에게 왕따 당하고, 아이들에게는 미움받았다. 군대에서 안 좋아진 피부로 인해서 외모 콤플렉스도 있었다. 사람들이 내 근황과 갑자기 노화한 외모에 대해 물어보는 게 싫어서, 사람들을 피했다. 이런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루에 9~10시간 이상씩 게임을 했다. 그때의 나는 폐인 그 자체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친구들, 직장 동료, 아이들 등등...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못난 아들을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건 우리 부모님이었다.



1년 반 뒤, 난 수십 번, 수백 번의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결국 슬럼프를 극복했다. 물론 내 곁에는 든든한 부모님이 계셨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


'이렇게 헌신적이고 나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이신데, 나는 왜 부모님에게 이 정도밖에 못 할까? 아들이 1년이 넘도록 폐인으로 지내는 걸 본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적어도 내가 받은 만큼은 부모님한테 돌려드려야 되지 않을까? 부모님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 중에 예전에 부모님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느니, 쑥스럽다느니, 습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느니, 다른 친구들도 그런다느니, 대중매체에서 그렇게 나온다느니 등 이러한 것들은 전부 핑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다. 남들은 그냥 남일뿐이다. 과거와 남들의 시선들은 제쳐두고, 지금 현재,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나의 마음만 신경 쓰자!'


그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나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1달에 1, 2번씩 뜸하게 전화를 하던 나는 매일 같이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를 했고, 카톡 문자에 서서히 하트도 넣기 시작했다.


작년 어버이날 아빠와 나눈 문자


그리고 예전에는 제대로 못 챙겨드렸던 어버이날, 명절, 생신 등도 이제는 항상 챙겨드린다. 형식적으로 챙겨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에 우러나와서 챙겨드린다.


최근에는 가을 제철 과일인 감을 보내 드렸다.


별 거 아닌데도, 이렇게 챙겨드리면 부모님은 엄청 감동받으신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색해하시더니, 이제 아들에게 애정표현도 곧잘 하신다. 사실 이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부터 진작 부모님께 애정 표현할 걸...





(학교 수업 시간)


"선생님, 저희 부모님은 뭐만 하면 사춘기라고 하고 제 말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부모님과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 와중에 부모님께 애정 표현이라니... 으...."


"얘들아, 근데 그거 아니? 너희들도 사춘기라는 변명 속에 매일 숨잖아. 너희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매일 엄마, 아빠 핑계 대고, 사춘기 핑계 대고, 맨날 변명하고..."


(순간 정적)


그때 성원(가명)이가 침묵을 깨며 얘기했다.


"쌤 말씀이 맞긴 맞아. 우리가 핑계 대는 것도 있지."


성원이의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잠시 후 지안(가명)이가 얘기했다. 


"선생님, 저 같은 경우는 마음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데, 몸이 잘 안 따라줘요... 뭔가 쑥스럽고..."


"맞아, 뭔가 쑥스러워요. 애정 표현을 안 하다가 갑자기 하기가 좀 그래요."


"음... 선생님이 저번에 얘기했었지? 마음속에만 담지 말고 직접 행동을 하라고. 아무리 너희가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표현 안 하면 부모님은 잘 모르셔. 처음에는 좀 어색하겠지만, 조금씩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봐. 점차 익숙해지면서 습관이 될 거야. 선생님 봐봐. 선생님도 이렇게 많이 바뀌었잖아?"


우리 반 아이들은 나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 #애정표현 #부모님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첫 제자의 합격 문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