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들이 진짜 배우고 싶은 내용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해줘. 선생님이 수업 준비해올게."
"음... 선생님! 저 배우고 싶은 거 있어요. 글씨 좀 예쁘게 쓰는 방법 알 수 없을까요? 워낙 글씨체가 나빠서..."
"그래? 그럼 다수결로 정해보자. '나는 글씨 예쁘게 쓰는 방법에 대한 수업 듣고 싶다.' 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동안 글씨체를 교정하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그냥 놔뒀다고 한다.
우리 반에는 글씨가 예쁜 아이들도 있지만, 일기나 숙제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로 악필인 아이들도 꽤 되었다. 심지어 악필인 아이들은 자기가 쓴 글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반 악필 친구들
악필인 글을 보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왠지 그 글을 읽기가 싫어진다. 반면 글씨가 예쁜 글은 내용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좋아 보인다.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글씨체가 심리에 주는 영향은 은근히 크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글씨 교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지금 글씨 교정을 잘해서, 습관화하면 평생 갈 수 있겠지?'
근데 문제는 나 또한 글씨체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글씨체는 초등학교 3학년 때가 전성기)
평소 글씨체
일단 나부터 글씨체를 교정해야 했다. 글씨가 엉망인 채로, 아이들에게 글씨 지도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한참을 자료를 찾다, 좋은 자료를 발견했다!
글씨 유튜버 NAIN나인
바로 글씨 유튜버 NAIN나인님의 채널이었다. 나인님의 영상을 보고, 나는 아름다운 글씨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해보았다.
재생목록에 들어가 보니, 나인님의 글씨체 강좌가 있었고 3시간 동안 열심히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선긋기, 동그라미 그리는 연습하기, ㄹ 적기 연습 등 폭풍 연습한 결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교정 후 아름다워진 나의 글씨체
(다음날 학교)
내 글씨체의 Before, After를 보여주며,
"얘들아, 선생님 글씨체 바뀐 거 보이지? 너희들도 할 수 있어! 내일 글씨 연습할 줄공책이랑 잘 깎인 연필 꼭 준비해오세요!"
다음날 바로 글씨체 교정 작업에 들어갔다. 내 글씨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사람의 글씨를 계속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인님의 동영상을 수업에 활용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하기 전에, 나중에 Before, After 비교를 하기 위해서 기존의 글씨체로 애국가 1절을 적도록 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제일 기초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가기로 했다. 우린 글씨 교정의 기본 중의 기본, 선 긋기와 동그라미 그리기를 한참 동안 연습했다.
선 긋기와 동그라미 그리기
그리고 자음 중에 끝판왕 'ㄹ'쓰기도 연습했다.
'ㄹ' 쓰기 연습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필기를 하도록 했다. 우리에겐 필기 또한 글씨 연습의 일부분이었다. 글자 간격, 높이,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집중을 해서 글을 썼다.
무려 2시간 동안 폭풍 글씨 쓰기 연습이 끝나고, 아까 연습하기 전에 적었던 애국가 1절을 다시 적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글씨체를 평가하고 감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글씨를 제일 잘 쓰는 친구에게는 곰돌이 스티커를 아래쪽에, 글씨체가 가장 많이 좋아진 친구에게는 great 스티커를 위쪽에 붙여주기로 했다.(각 분야별로 두 명씩 뽑기로 함)
모든 투표가 끝났다. 자, 우리 반의 명필 2명과 가장 글씨체가 드라마틱하게 바뀐 2명의 친구를 소개하겠다.
"자, 오늘 활동으로 내 글씨체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15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8명의 학생은 글씨체가 거의 그대로인 것 같다고 했고, 2명의 학생은 애매하다고 했다.
25명 중에 15명이라! 꽤 좋은 성과였다. 허나 걱정되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오늘 수업이 하나의 활동으로만 끝나고, 다시 아이들의 글씨체가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하지만 아이들이 저녁에 올린 데일리 리포트의 내용을 보고 나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우리 반 악필들의 데일리 리포트
위 데일리 리포트는 글의 맨 처음에 언급한 우리 반 악필 친구들이 쓴 것이다. 예전보다 글씨체가 훨씬 나아진 것이 보였다.(위에 올라가서 한 번 비교해보시기를 ㅎㅎ) 학교에서 배운 바른 글씨쓰기를 일상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중 대성(가명)이의 데일리 리포트에 있는 소감 한 문장은 나를 감동시켰다.
대성이의 하루 소감
부디 내가 가르친,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이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