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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22. 2020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

준비된 자는 걱정이 없다.

최근 우리 지역에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거리두기가 1.5단계로 격상이 되었다. 거리두기 1.5단계에서는 초등학교 같은 경우 2/3 이하로 밀집도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학교도 앞으로 전면 등교가 아닌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섞어서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얘들아, 거리두기 격상으로 다음주부터 앞으로 2주간, 온라인 수업이랑 대면 수업 병행하는 거 알고 있지? 우리 6학년은 다음주 월, 화는 온라인 수, 목, 금은 대면 수업을 하기로 했어."


"(아이들의 탄식) 안 돼.... 학교를 못 오게 되다니..."


"이대로 우리의 6학년은 사라지는 것인가... ㅜㅜ"


"선생님, 그러면 같이 영화 촬영하기로 한 거는 어떻게 돼요? 하..."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허나 거리두기 격상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하지 않는 듯하다. 학기초부터 내내 아이들과 함께 최악의 상황(예: 코로나가 더 심해지는 상황)을 대비했기 때문이다.




(2학기 대면 수업 시작하는 날)


"얘들아, 망하지 않으려면 우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해. 지금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은 뭘까?"


"다시 코로나가 심해져서 학교에 못 나오는 거요..."


"맞아. 지금은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서 등교를 할 수 있지만, 언제 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지 몰라. 특히 겨울이 점점 다가오고 있잖아. 바이러스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강하다고 해. 그리고 겨울엔 추우니깐 사람들이 실내 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공기 중의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져서 감염 확률도 더 높아지고... 아직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온 상황이 아니잖아? 언제 또 바이러스가 퍼질지 모르니, 우리는 그 상황에 항상 대비해야 해. 그럼 우리가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1학기 때부터 나에게 지겹도록 들은 내용들을 아이들은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좋은 습관 만드는 거요."


"메타인지력을 높이는 거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거요."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설정을 만드는 거요."


"맞아. 그럼 이것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비책을 한 번 같이 세워보자."


몇 시간의 의논 끝에, 우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2가지 대비책을 세웠다. 첫 번째, 하루 동안 쓴 데일리 리포트를 매일 온라인 밴드에 인증하기로 했다. 데일리 리포트는 자신의 안 좋은 습관들을 알아채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능력, 즉 메타인지력을 기르는데도 유용하다. 



두 번째, 매일 저녁 온라인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학습 자료가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은 차고 넘쳐난다. 당장 EBS 홈페이지에만 들어가 봐도, 유튜브에만 들어가 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올려놓으신 질 좋은 강의들이 많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 워낙 떠먹여 주는 교육에 익숙하기도 하고, 일단 공부하는 습관과 환경설정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저녁 줌 스터디를 통해,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과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설정을 만들기로 했다. 





(다시 현재 시점)


"얘들아, 그래서 다음주부터 2주간 월, 화는 온라인 E학습터로 수업이 진행될 거 같아. 9시에 일단 줌에서 출석체크하고..."


"선생님, 그럼 쌍방향 수업은 하나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쌍방향 수업을 하냐, 안 하냐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수업 형태가 지금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가이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공부 습관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라고 보았다.


"흠... 쌍방향 수업은 저번에 경험해봤다시피 우리에겐 비효율적이잖아. 우리가 기기(컴퓨터, 캠)가 다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쌍방향을 하기에는 우리 반 숫자도 너무 많고(현재 26명)..."


"맞아요. 쌍방향 수업은 우리한테는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혼자 공부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거 같아요. 저한테 필요한 것만 골라서 할 수 있으니깐요. (TMI 친구...)"


"일단 선생님이 제일 걱정되는 거는 지난 두 달 동안 힘들게 만들어 놓았던 생활 패턴들이 다시 무너지는 거야.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안 간다고 밤늦게 게임하고, 늦게 일어나고 이런 생활 말이야..."


몇몇 아이들이 찔리는지 내 눈을 피한다.


"선생님 생각에 제일 중요한 건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도 줌터디(온라인 줌 스터디)를 하는 건 어때? 일단 예전처럼 E학습터 강의를 듣는 건 똑같으나, 친구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를 하는 거지. 서로 공부 자극도 되고, 아침에 공부하는 습관도 그대로 유지가 되고 1석 2조 아니겠어?"


"E학습터는 좀 별로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거 같아요. 구체적인 시간은요?"


"9시부터 12시 10분까지 1시간 30분씩 2타임 끊어서 하는 걸로 하자. E학습터 다 들으면, 너네가 원하는 공부 하면 돼."


"선생님, 그럼 저녁에도 예전처럼 줌터디 계속 하나요?"


"당연하지~ 그것도 저녁에 공부하는 습관 만드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우리는 아주 스무스하게 온라인 수업 준비에 대한 얘기를 끝마쳤다. 1학기 때,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터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얘들아 너희들한테 누누이 얘기하지만, 이 코로나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는 아무도 몰라.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백신이 상용화되려면 내년 하반기는 되어야 한데... 그 말은 앞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나 지금보다 심각한 상황들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지. 진짜 최악의 경우에는 평생을 이렇게 전염병과 싸울 수도 있어.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지금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뭐라고 했었지?"


"음... 좋은 습관을 만드는 거요?"


"환경설정이요?"


"혼자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요?"


"(흐뭇해하며) 너희들 말이 맞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습관, 환경설정, 자기주도학습능력 전부 필요해. 선생님은 너희들이 어떤 중학교에 입학을 하던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어떤 수업을 하던지 간에, 그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주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해. 사실 어떤 중학교에 갈지,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는 너희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 너희들 자신을 믿고,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학습을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이게 선생님이 지난 8개월 동안 너희들에게 바라는 전부야. 아, 근데 말하다 보니 뭔가 졸업식 마지막 대사 같은 느낌인데? ㅋㅋㅋㅋㅋ"


"(반 전체 웃음) 그러게요. ㅋㅋㅋ 아... 이제 2달 밖에 안 남았네... ㅜㅜ"


"남은 두 달 동안 빡세게 트레이닝 시켜줄 테니 기대하거라 ㅎㅎ"


"안 돼~~~~~~~~~~"


부디 지금 나의 교육이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로나 #거리두기격상 #온라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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