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Jan 27. 2022

#7 내 인생 최악의 집

(이전화)

https://brunch.co.kr/@lk4471/556


의찬(가명)이의 집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최악이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드라마, 영화에서 혹은 실제로 본 집들 전부 통틀어서, 가장 끔찍했다.


집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담배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심지어 나는 웬만한 건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비염인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담배냄새는 내 호흡을 압박해왔다. 단 5분도 버티기 힘들 거 같았다.


몇십 년 간 누적된 담배연기 때문인지, 벽지는 누렇다 못해 까만 상태였다.

"의찬 할머니, 혹시 할아버지 아직도 담배 피우시나요?"

"네. 핍니더."

"혹시 끊으실 생각은 없으신지? 할아버지 본인 몸에도 안 좋고, 더군다나 의찬이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끊으라고 해도 절대 안 끊습니더. 오히려 더 화만 냅니더. 물건도 던지고. 그래서 그냥 포기했습니더..."

"아..."


의찬이의 방에 들어갔다. 방 안의 모습은 집 외관에 비해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침대 맞은편에 바로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의찬이의 집에서 컴퓨터가 제일 최신식처럼 보였다. 의찬이가 하루 6~7시간 사용하는 컴퓨터... 이걸 어떻게 해야 할 텐데...

"의찬아, 방 안에도 담배냄새가 나는데 안 불편해? 잠은 잘 와?"

"네. 괜찮은데요? 잠도 잘 자요. 항상 이래 왔어서."


다 큰 성인 남성이 10분도 버티기 힘든 환경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의찬이... 하...


"의찬 할머니! 할아버지랑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의찬이 할아버지와는 오늘 첫 대면이지만, 의찬이와 의찬이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평소 불 같은 성격을 익히 전해 들었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의찬 할아버지, 여기 제가 온 이유는요. 선생님인 제가 봤을 때, 의찬이는 가능성이 엄청 많은 아이예요. 주변에서 조금만 신경 써준다면, 공부든 뭐든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아이예요."

"(중간에 말을 끊으며) 아닙니더. 쟤는 뭘 해도 안 되는 아입니더... 즈그 애비랑 똑같습니더. 고집만 세고 할 줄 아는 건 없고. 공부시켜도 안 합니더. 해봤자 안 됩니더. 저번에도 학원 보내줬는데, 힘들다길래 그냥 그만두라 했습니더."

"의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러시면 안 되죠. 뭐든 실력이 늘려면 꾸준히 그리고 어느 정도 한계점을 돌파해야 한다는 거 할아버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할아버님이 옆에서 조금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북돋아 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의찬이가 이렇게 빨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 그래도 소용 없습니더... 쟤는 시켜도 잘 못하는 애입니더."

"아니, 의찬 할아버지. 의찬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애라니깐요. 제가 그동안 3년 동안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가망성이 없는 애라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할아버님, 딱 3개월만 지켜봐 주세요. 의찬이가 얼마나 변하는지,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앤지 보여드릴게요. 대신에 의찬이한테 '너는 안 된다. 그냥 포기해라.' 같은 말씀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찬이와 저를 믿어주세요. 할아버님."

"(...)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의찬이는...(중략)"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더 이상 의찬 할아버지를 설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담배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건강을 위해서, 손주를 위해서 담배를 끊겠다.' 같은 대답을 기다렸지만 할머니의 말씀대로 완고하셨다.



더 오래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사실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25분이 나에게는 한계였다. 마치 누군가가 내 마스크 안으로 담배연기를 계속 뿜어대는 것만 같았다.

'의찬이 할머니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했으니 괜찮을 테고... 의찬이 할아버지한테는 이 정도 말씀드렸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셨겠지? 이제 의찬이랑 다시 얘기해봐야겠다.'


의찬이를 불렀다.

"의찬 할머니, 의찬이 데리고 잠깐 산책 나갔다 오겠습니다."


의찬이의 집을 방문한 이후, 왜 의찬이가 의지가 그토록 약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집 안에 자욱한 담배연기, 눈만 뜨면 보이는 컴퓨터, '안 된다. 너는 안 된다.'라고만 하시는 할아버지, 양치질도 안 시키는 할머니, 그 밖에 환경들... 의찬이의 의지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만약 의찬이라면 이 담배 냄새 맡으면서 집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내가 민약 의찬이라면 의지만으로 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인 나라도 힘들 것 같았다. 이제야 아무리 동기부여를 해줘도 집에만 갔다 오면, 주말만 지나면 리셋이 되었던 의찬이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선생님과의 약속을 뒤엎은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주변 어른의 도움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서 멋지게 성장하는 의찬이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의찬아, 선생님이랑 공부 다시 하자."

"(당황) 네?"

"너 게임이랑 공부량 때문에 그러지? 게임은 바로 끊지 말고 서서히 줄여나가는 걸로 하고, 공부량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선에서 천천히 늘려가는 걸로 하자. 그럼 어때?"

"음... 괜찮은 거 같아요. 사실 너무 많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동안 즐기던 것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게."

"아, 그랬구나... 그건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이 너를 봐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깐... 그건 너도 알고 있지?"

"네..."

"남은 3개월 동안 서서히 공부량을 늘려가는 식으로 가보자. 지금은 힘들어도 또 금방 적응될 거야."

"네."


(잠깐 침묵)


"의찬아. 선생님은 저번 주에 너를 보자마자 큰 그림을 그렸거든."

"무슨 그림이요?"

"자, 눈을 감고 상상해봐. 네가 선생님이랑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반에서 1등 하는 그림, 네가 원하는 00 고등학교에 높은 성적으로 입학하는 그림, 네가 사범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되는 그림, 선생님과 같이 일을 하는 그림, 너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풍족하게 행복하게 사는 그림. 어때? 멋지지 않아?"

"(웃음소리)"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다짐해보자. 자, 선생님 따라 해봐. 나는 할 수 있다."

"엥?"

"따라해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더 크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이번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믿어볼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렇게 우리의 도전은 다시 시작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