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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합창부

by 교실남

2023년 1월, 재외 한국학교행 최종 관문인 면접까지 합격한 이후 들뜬 마음으로 중국에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실남 선생님, 저 00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올해 혹시 합창부 지도 가능하실까요?"

"흠... 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근데 누구시라고 하셨죠? 잘 안 들려서요."

"아, 재외한국학교 교장입니다. 합창부 지도할 선생님이 필요해서요. 그럼 합창부 맡아주시는 거죠?"

"(잠깐 고민후) 아... 네!"


하하... 불과 1분 남짓 통화로 합창부 업무가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YES맨이었다. 예기치 못한 업무가 하나 더 생겼지만, 또 하나의 경험을 쌓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합창부 지도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보다 아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의 전화 통화 이후 음악 학원에서 합창에 필요한 반주법과 지도법을 몇 가지 익혀갔다.


재외 한국학교에는 각 학교마다 특색으로 밀고 있는 활동들이 있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사물놀이, 오케스트라, 합창부를 주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합창부는 그동안 초중등 음악 전담 선생님이신 중등 음악 선생님이 담당해 오셨는데, 오케스트라 등 여러 업무가 부담이 된다고 하셔서 합창 업무를 거절하셨다고 한다. 때문에 초등 선생님 중에 지도할 선생님이 필요했고, 기존 선생님 중에서는 아무도 한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 나에게까지 제안이 오게 된 것이다.



모집부터 난관


합창부를 운영하려면 최소한 20명 이상의 3~6학년 학생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3~6학년 학생수는 고작 40명 정도였다. 무려 3~6학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여러 동아리들 가운데서 합창부 동아리를 선택해야만 합창부가 운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근데 생각보다 합창부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매번 재미없는 노래들만 해서 재미없어요."

"작년에 너무 지루했어요."

"2년 했는데, 이제 다른 동아리들도 좀 해보고 싶어요."


이대로라면 10명도 모으기 힘들었다. '굳이 아이들이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담당 부장님께 가서 여쭈어보았다.

"부장님, 아이들이 합창부를 하기 싫어하는데 굳이 합창부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들도 싫어하고 저도 아이들이 싫어하는 걸 굳이 지도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다른 동아리 활동도 하고 싶을 텐데, 합창부 하게끔 억지로 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리기도 해요."


"교실남 선생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는데, 합창부가 나름 우리 학교 전통이라서 안 돼. 그동안 외부 손님 오시거나 할 때 대부분 합창부가 공연했었거든. 초등 합창부 나름의 순수함과 귀여운 매력이 있어서 매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 작년에 나도 애들 노래 부르는 거 보고 얼마나 감동받았는데!"


"근데 애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 같던데..."


"어쨌든 없애는 건 안 돼요."


올해 새로 바뀌신 교장 선생님(합창부를 제안한 교장 선생님X)께 찾아가 전후사정을 얘기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부장님과 비슷한 반응이실 거 같아서 포기했다.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목표는 동아리원 모집!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합주부로 유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아이들이 불만을 가지는 부분을 해소하면 됐다.

-재미없는 노래들만 불렀다. -> 아이들에게 곡 선택권을 줬다. (뮤지컬이나 가요곡도 허용했다.)

-지루했다. -> 재미를 위해서 가끔씩 노래방 및 댄스 타임도 가지기로 했다. 내가 작곡한 노래들도 부르기로 했다.

-다른 동아리 해보고 싶다. -> 올해 하는 합창부는 마치 다른 동아리에 들어온 것 같이 파격적으로 바뀔 예정이니, 선생님을 믿고 참여해 달라.


각 학년마다 돌아다니며, 위와 같은 해결책들을 얘기하며 내가 작곡한 노래들을 들려주거나 때로는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감사하게도 총 22명의 학생들이 합주부에 들어오게 되었다.



즐거운 시간


합창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자, 발성연습해 볼게요. 선생님이 먼저 부르면 여러분들이 따라 하는 거예요. 처음은 '멈' 발음을 해볼 건데요. 멈 발음은 호흡이 입으로 안 빠져나가게 도와줘서, 좀 더 고음이 쉽게 잘 될 거예요. 자, 시작!"


"멈멈멈멈멈멈멈멈멈"

"멈멈멈멈멈멈멈멈멈"


마치 아기새처럼 나를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발성연습이 끝나면 학기 초에 아이들이 정한 곡들로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춤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제안으로 율동도 곁들여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몸치인 선생님을 대신해서 안무는 우리 반의 춤꾼 하민이가 직접 짜기로 했고 노래에 어울리는 무대 의상은 패션 센스가 좋은 6학년 여자 아이들이 담당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니, 아이들은 오히려 활동에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습하는 아이들


연습에 지치면, 가끔씩 노래방 혹은 댄스 타임을 가졌다. 이 시간은 끼가 있는 아이들이 무대로 나와 친구들과 선후배 앞에서 자신을 뽐내는 시간이었다. 랜덤 플레이 댄스곡이 바뀔 때마다 마치 미리 약속한 듯이 나와서 1~6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공연시기가 다가오면 2주 전부터 동아리 시간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약 50분)에도 연습을 했다. 단 하나의 공연을 위해, 놀고 싶을 텐데 한 명도 빠짐없이 점심시간에 나와 공연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기특했다.


하지만 난 아이들과 즐겁게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난 합창부가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가?


동기부여가 되어있고 에너지가 충만했던 합창부 활동 초반에는 나도 아이들도 의욕 충만한 상태로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학기말이 될수록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숫자가 적기 때문에, 한 명의 학생이 여러 개의 활동에 참여한다. 예를 들면 우리 반 하민이는 합창부, 사물놀이, 컵스카우트, 학생회를 동시에 했다. 학생회 행사 때문에 몇 주 간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활동 준비를 하다가, 학생회 행사가 끝나면 이번엔 합창 공연 연습을 해야 하는 식이었다. 나 또한 합창뿐만 아니라 학생회, 컵스카우트를 전부 담당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너무 커졌다.


"이번 방학식 때는 합창부 공연하죠."

"선생님 퇴임식 때, 합창부에서 노래 한 번 불러주죠."

"이번 새해인사는 합창부에서 노래 부르죠."

"학생과 관련된 행사는 학생회나 합창부가 해야죠."


끊임없이 떠밀려오는 행사들에 우리는 지치고 말았다.

"선생님, 저희 이제 못하겠어요. 내년에는 다른 거 하면 안 돼요?"


도대체 합창부는 누구를 위한 활동인 것일까?



합창부 아이들과 합창부 폐지 여부를 의논한 뒤, 교장 선생님께 그동안의 상황과 우리들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교장 선생님은 깜짝 놀라신 듯했다.

"아, 합창부가 교실남 선생님이 올해 처음 만드신 게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거였어요? 저는 선생님이랑 애들이 합창을 좋아해서 그동안 자발적으로 공연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학기 초에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걸... 담당 부장님이 아무 말씀을 안 하셨는지, 교장 선생님께서는 합창부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 교장 선생님은 잠깐 고민 뒤에 이어 말씀하셨다.

"교실남, 선생님. 그래도 우리 학교가 외부 행사도 많고 한데, 합창 그대로 하는 건 어때요? 지금 애들이랑 잘하고 계시잖아요. 선생님이 그동안 가르쳐온 것도 아깝기도 하고."


"교장 선생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동원되어서 공연을 하는 건 교육적이지 않다고 봐요.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행사를 위해서,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이 희생하는 건 주객전도라고 봐요. 저는 행사가 있을 때 정말 아이들이 원한다면 공연을 하되,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듣고 보니 선생님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그래요. 그럼 아이들이 원할 때, 합창 공연을 하는 걸로 해요."


"교장 선생님 올해부터 우리 학생회가 다모임 형태로 바뀌잖아요. 합창부 동아리를 아예 없애 버리고, 아이들이 원할 때 학생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건 어떤가요? 합창부가 정규수업 동아리 활동으로 운영이 되니깐, 다른 동아리를 하고 싶은데 합창부 활동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아, 그리고 학생회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면 그때는 제가 책임지고 지도하겠습니다."


"그래요. 올해는 합창부는 폐지하고 학생회 위주로 그렇게 한 번 해봐요."




그렇게 합창부는 사라지게 되었다.


합창부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원하던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점심시간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학생회 활동에도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예쁜 목소리로 합창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학교의 주체인 아이들이 만족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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