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어느덧 학년 말이 되었다.
학년말이 되면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내년에 우리 담임 선생님은 누구일까?"
복도를 지나가다 4학년 남자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저희 믿고 있어요. 올해 5학년 하셨으니깐, 내년에도 5학년 하시는 거죠? 저희랑 같이 해요."
교무실에 들어가다 1학년 아이들을 마주쳤다.
"체육 선생님(일주일에 1번, 1학년 체육을 가르쳤음)~ 내년에 저희 반 선생님 해주면 안 돼요?"
주말한글학교에 다니는 3학년 수환이가 나에게 장난을 치며 말했다.
"선생님, 내년에 저희 반에 오세요. 같이 놀아요."
아이들에게 이런 스카웃 제의(?)을 받으면 마치 인기 스타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잔뜩 기분이 업된 상태로 우리 반 교실로 돌아왔다.
5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선생님, 내년에도 저희랑 같이 가실 거죠?"
장난스럽게 아이들 앞에서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글쎄? 하도 다른 학년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서 좀 고민해 봐야겠는데?"
"안 돼요!!! 그냥 저희랑 같이 해요. 내년에는 더 말 잘 들을게요. 제발요."
"저희는 아직 선생님한테 배울 게 많이 남았다고요! 선생님도 아직 못 가르친 게 많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선생님이 저희 졸업시켜 주셔야죠. 선생님 아니면 안 돼요!"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우리 반 아이들. 그럼 나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당연히 나 또한 내년에도 우리 반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올해 초, 난 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을 맡은 첫 순간부터 내년 6학년까지 2년 동안 아이들과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과 내년에도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난 1년 동안 학교 일이 너무 바빠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당장 행사가 급해, 아이들에게 독서나 자습을 시킨 경우도 많았다. 만약 내년에 이 아이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빠지는 수업 없이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었다.
1년 동안 데일리 리포트, 저녁 스터디, 자기계발 순위 제도 등 정말로 여러 가지 학습도구들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학기 초에 내가 원했던 만큼의 성취를 아직 못 이룬 상태였다. 딱 1년만 더하면, 아이들의 지식수준과 공부 습관을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셋째,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나 편하고 좋았다. 워낙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이 많았기에 이제는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항상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셔서 너무나 든든했다. 이분들과 함께 1년만 더 행복한 학교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부장을 달기 때문에 나에게는 학년 선택권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 내 의사를 말씀드리러 갔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다.
"교실남 선생님, 죄송한데... 혹시 내년에 6학년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워낙 선생님이 고학년 아이들을 잘 다루시기도 하고, 지금 5학년 담임도 잘하고 계시기도 하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좋아하니깐요. 사실 올해는 6학년에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았어서... 좀 부탁드려요."
하하. 겉으로는 아무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내년에 6학년 제가 맡을게요."
"아, 그리고 5학년 아이들이랑 학부모님들이 교육과정 설문조사에서 제발 내년에도 교실남 선생님 같은 반 하게 해달라고 쓰셨더라고요. 교실남 선생님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그렇게 적었을까요? 선생님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내년에 6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 내년 저희 담임 선생님 선생님 맞죠?"
"아닌데? 아직 정해진 거 아닌데? 누가 그래?"
"어? 분명 우리 교회 집사님이 그러셨는데?"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지 3일도 안 됐는데, 벌써 교회까지 퍼지다니... 재외는 참 소문이 빠르다...
"아, 저는 영양사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아직 확정된 거 아니야. 너희 말 안 들으면 선생님은 다른 학년으로 가버릴 거야."
눈치 빠른 서진이가 행간의 의미를 캐치하고는 말했다.
"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선생님 내년 담임 선생님 맞는 거 같은데?"
시인을 하면 반 분위기가 들뜰까 봐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학년 발표 나려면 1달은 더 있어야 해. 지금 선생님은 너희들이랑 하고 싶긴 하지만, 너희들 말 안 들으면 나중에 다른 학년 쓸 수도 있어. 그러니깐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거 봐. 내가 말했잖아. 교실남 선생님 우리 반이라고! 오예!!!!"
"선생님 올해도 같은 반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올해도 잘 부탁해, 얘들아!"
그렇게 다시 천방지축 시금치반(시간을 금처럼 다스리는 반) 아이들과의 1년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