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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배웁니다.

by 교실남

10년 전, 첫 발령을 받고 교실 문을 열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친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요.


첫해 맡은 농구부 아이들은 제게 ‘도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농구부 아이들은 대부분 5학년이라 신장과 덩치가 상대팀들에 비해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스포츠클럽 대회에 도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냥 농구가 좋아서 하고 싶다는 아이들과 함께 저는 아침, 저녁, 주말을 가리지 않고 훈련을 했습니다. 몸과 정신이 힘들었을 텐데도 그 누구 하나 포기하겠다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체격 차이에 의해 대회에 나가서 6학년 형들에게 거듭된 패배를 당할 때에도 농구부 아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3전 전패를 당했지만, 승패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그것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도전하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3년 차에 만난 예슬이는 늘 수업이 끝나자마자 제 책상 앞으로 달려와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선생님, 이건 뭐예요?”, “선생님, 이건 왜 그래요?”,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매일 질문이 반복되자 솔직히 피곤하다고 느꼈습니다. 가끔씩 모르는 질문들이 나올 때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슬이 덕분에 저는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슬아, 선생님도 잘 모르겠네. 우리 한 번 같이 찾아볼까?”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교실은 정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교사와 아이가 함께 탐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교사는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는 걸 아이가 알려준 셈이죠.


2020년 코로나 시기에는 학교에 많이 나오지 못해 반 친구들과 아직 친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마니또 활동을 했는데요. 반 아이들 26명 중에서 유일하게 진석이만 마니또에게 선물을 못 받았습니다. 2주 동안 자신의 마니또를 지극정성으로 챙겼던 진석이의 얼굴은 실망감과 서운함으로 눈물범벅이 되어있었죠. “진석아, 괜찮아. 이 형아가 마니또는 아니지만 선물 줄게. 기운 내 인마!”, “진석아, 아까 발표해서 받은 제티야, 너 줄게.” 순식간에 진석이의 책상 위에는 아이들의 코 묻은 선물들이 쌓였습니다. 친구들의 행동에 감동한 진석이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습니다. 이때 저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배려’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제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눈앞의 작은 식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롭게 배운 것에 재미를 느끼고,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에도 하루 종일 힘을 냅니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제가 교실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교사는 흔히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일 받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도전, 호기심, 배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 등 아이들이 건네는 이 값진 것들은 어떤 연수나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실을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되는 학습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제게 가르쳐 주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교사가 아이를 성장시키듯, 아이들도 교사를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배우고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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