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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누굴 닮았길래 수학 점수가 이 모양일까요?

by 교실남
“선생님, 지한이는 누굴 닮았길래 수학 점수가 이 모양일까요?”

몇 년 전, 1학기 학부모 상담 주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지한이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셔서 아들의 낮은 수학 성적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셨습니다.


“(한숨) 하... 수학 공부를 아무리 시켜도 아이의 수학 실력이 늘지를 않으니... 생각해 보니, 제 아이는 저를 닮은 거 같아요. 제가 어릴 적에 수학을 많이 못했거든요. 사실 지금도 지한이가 저한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가끔씩 힘들 때가 있어요. 진짜 지한이가 저한테서 수학 못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이렇게 수학 점수가 안 나오는 걸까요?"



지한 어머니가 걱정을 하시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매 번 수학 단원평가를 치면, 지한이의 점수는 반에서 항상 꼴찌였습니다. 평균 점수는 20~30점 정도로, 수학학원을 따로 다니는데도 수학 성적이 형편없이 낮았습니다. 지한 어머니는 지한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가 유전적인 문제라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웃음) 어머니, 일단 제 생각에는 유전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앞 학년에서 배웠던 내용을 지한이가 잘 몰라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수학은 타과목들과는 달리 계열성이 도드라지는 과목이거든요. 예를 들어 사회 같은 과목은 역사를 잘 몰라도 지리를 배울 때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수학은 덧셈, 뺄셈을 못하면 곱셈을 아예 못하죠. 기본적인 하위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 그다음 상위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게 수학입니다. 평소에 지한이가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관찰했을 때, 지한이는 기본 사칙연산들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문제 푸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항상 절반도 못 풀더라고요."


"아, 저도 어릴 때 사칙연산 잘 못했어요. 역시 유전이었어. 유전이 맞아."


"어머니, 유전이 아니라니깐요. 사칙연산의 속도를 높이려면, 문제를 많이 풀어서 숫자와 빨리 친해지는 게 중요해요. 제가 봤을 때 지한이는 수학 문제를 많이 안 풀어본 것 같아요. 요즘 사칙연산 연습하기에 좋은 교재들이 많이 있거든요? 아마 그런 문제집 몇 권 정도만 아이에게 풀게 하면, 금방 계산 실력이 올라올 거예요."

"아니, 그건 선생님 기준에서 그런 거 아닌가요? 선생님은 뭐든 지 잘하시니깐,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겠죠. 우리 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은 달라요. 저번에 교육 관련한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거기서도 유전적으로 수학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유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수학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한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는 유전이 아닌 사고방식의 문제였습니다.


"(웃음) 아니, 어머니 유전이 아니라니깐요! 지금 어머니의 '우리 아들이 수학을 못 하는 것은 유전 때문이다.'라는 고정적 사고방식 때문에 지한이가 수학을 더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혹시 지한이한테 유전 얘기하셨나요?"


"네, 몇 번 했어요."


"아마 지한이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수학 문제를 틀릴 때마다 '아, 다음부터 잘해야지!'가 아닌 '역시 나는 엄마의 수학 못 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수학을 못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일종의 자신이 수학을 못 한다는 것을 합리화할 '면죄부'를 주는 거죠.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변화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지한 어머니에게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했습니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사주팔자, 유전, 손금 등과 같이 내 능력과 성격은 고정되어 있어, 나 스스로의 의지로는 정해진 운명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은 사주나 유전에 관계없이,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만 하면 내 능력과 성격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요?


"어머니, 일단 어머니부터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어머니가 고정형 사고방식을 갖고 계시면 아이도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지한이가 제게 다가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저 수학이 너무 안 돼요. 엄마도 어릴 때 수학을 못했다던데, 아마 유전인 거 같아요. 아무리 해도 안 돼요."


이런 류의 얘기들을 아이들에게 워낙 많이 듣는 터라, 아예 저희 반 아이들을 전부 불러 모아 말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략)


"얘들아, 두 사람이 똑같은 능력치를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중에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이구동성으로)성장형 사고방식이요!"


"맞아. 그만큼 사고방식이 중요해. 태어날 때부터 뭔가를 바로 잘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니? 너희가 생각하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예를 들어보자. 우린 흔히 이 사람을 그냥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달라. 모차르트는 태어날 때부터 음악교사인 아버지에게 각종 음악과 관련된 훈련을 받았어. 모차르트의 집은 온갖 악기들도 가득했다고 해. 갓난아기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음악을 잘할 수밖에 없었겠지? 너희가 주변에 머리가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아마 대부분 어릴 적부터 자신도 알게 모르게, 피나는 고통과 노력을 했을 거야. 선생님은 너희들이 사주나 유전 따위에 불평불만할 시간을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갈고닦는 데 썼으면 좋겠다.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봐! 분명 바뀔 수 있어. 얘들아 할 수 있어!"



그 이후, 사고방식의 변화 때문이었을까요. 교실 안을 보면 시간이 날 때마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지한이를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도 매일 1시간 이상씩 엄마와 함께 수학 공부를 한다고 했습니다.


2학기 말, 지한이의 수학 점수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평균 20~30점대였던 지한이의 수학 점수는 80~90점 정도가 되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변화였습니다. 그동안 지한이가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기에 감격스러웠습니다. 당시 아이들 앞에서 지한이의 태도와 노력을 엄청 칭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지한이는 6학년이 되었고, 저도 6학년 담임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지한이와 같은 반은 되지 못했습니다. 지한이의 상태가 궁금해서 지한이 담임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작년에 지한이 수학 정말 못했었는데, 그래도 2학기 말에는 지한이가 수학 실력을 많이 끌어올렸어요! 요새는 어때요?"


"(깜짝 놀라며) 네? 지한이가 수학을 못 했었다고요? 엥? 아닌데······. 제가 그동안 애들 단원평가 시험 친 평가지 가져올게요."


지한이 담임선생님이 가져온 지한이의 평가지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 점수가 90점 이상이었습니다.


‘작년에 20~30점대의 수학 점수를 받던, 엄마 유전 때문인 것 같다고 불평하던 그 친구가 이 정도의 점수를 받다니!’


심지어 담임선생님은 지한이가 원래 수학을 잘하는 학생인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지한이는 앞으로도 계속 수학을 잘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도 잘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이미 지한이의 사고방식은 고정적 사고방식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한이는 그때의 성공 경험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하게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고방식은 한 사람과 성장과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가요? 혹시 평소에 ‘유전 때문에, 머리가 나빠서, 원래 의지가 약해서’라는 말을 자주 쓰지는 않나요? 이번주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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