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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이 힘든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

by 교실남

“와! 남자 선생님이다!!! 예~~~~~~”


올해 3월, 다문화 가정 자녀가 절반 이상인 이 학교에 첫 부임을 했을 때 유독 저를 반겨준 한 5학년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귀여운 얼굴을 한 기현이는 앳된 외모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유명한 악동이었습니다. 기현이는 워낙 자기주장이 세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적어 친구들과 자주 다퉜고, 의자를 들썩거리거나 딴짓을 하는 등 수업시간에도 집중을 잘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처: 프리픽


그동안 악동 이미지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 되어서 그랬던 걸까요? 또한 선생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기현이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았습니다.

“기현이요? 좀 문제가 많은 학생이죠. 수업 태도도 안 좋고, 무엇보다 친구관계가 안 좋아요. 매일 애들이랑 싸워요.”

“선생님, 얘는 원래 이래요. 작년에도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고 계속 딴짓만 했어요.”


하지만 제 눈에 기현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보였습니다. 기현이를 믿어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만 있다면, 충분히 좋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급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행복해하는 기현이로 말이죠.


그렇게 기현이의 행복한 학교생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어떤 과목을 못하는가에 집중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리하여 학교 교육은 창의적이고 다양한 능력을 지닌 어린이를 틀에 박힌 사고를 지니고, 무능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어른들로 키워낸다. (중략)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그의 명저 <진정한 행복>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덕성과 강점을 발휘하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강조하고 있다. (중략) 이처럼 강점의 발견과 발휘는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 모두를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회복탄력성, 김주환>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의 핵심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현이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바라며, 우선 기현이의 강점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개학한 지 2주 차 즈음인 3월, 기현이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현이는 다문화 가정이라 한국어 실력이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어휘들을 사용해 가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반의 다른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경우, 맞춤법이나 문법을 틀리는 것이 두려워 매 번 비슷한 패턴과 주제의 내용의 일기를 쓰는 반면 기현이는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가끔 기현이는 일기장을 통해 자신의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 글, 부모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긴 글 등은 평소 장난꾸러기인 기현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기현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현이의 일기

목표를 달성했을 때 하는 칭찬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목표는 ‘열심히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자 ‘다소 힘든 목표’이기 때문이다. 같은 높이로 나아가고 있을 때 하는 칭찬은 별 의미가 없다. 계단 한 층을 끝까지 올랐을 때 칭찬하는 것이 좋다. 게임에 빗대어 말하자면 레벨업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는 순간이 칭찬효과가 극대화되는 절호의 기회다.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가바사와 시온, 쌤앤파커스>


기현이가 게임의 레벨업처럼 새롭게 성장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저는 반 친구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기현이를 칭찬했습니다.

“기현이가 어제 선생님이 말한 죽음에 대해서 일기를 썼는데, 너무 생각이 참신하고 멋져서 선생님이 한 번 읽어줄게요.”

“틀리는 거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멋지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현이가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기현이를 듬뿍 칭찬한 후에는 더욱더 강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해법들을 제안했습니다.

“기현아, 책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잖아. 그때는 사전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 처음에는 좀 힘들더라도 계속 경험이 쌓이면 어휘력이 늘어서 나중에 사전을 찾는 횟수도 적어질 거야. 무엇보다 네가 일기를 쓰는 데 엄청 도움이 될 거야.”


선생님의 칭찬과 조언을 받은 기현이는 그다음엔 더 업그레이드된 글쓰기로 저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기현이의 일기


기현이는 과제집착력에 있어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제집착력은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고 몰두하여 문제가 풀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능력을 말합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에 아이들에게 심화 문제를 내줬는데, 유일하게 기현이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에 수학문제를 풀어왔습니다. 집에서 2시간 넘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어느 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칭찬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와~ 2시간 넘게 고민을 했다니 대단한데! 수학은 정답을 못 찾더라도 오랫동안 집중해서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늘거든.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앞으로 기현이는 수학 실력이 엄청 늘 거 같아!”


그동안 살펴본 기현이의 강점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과제집착력과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현이의 강점을 찾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결과, 몇 달 뒤 기현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학업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현이의 학업성적은 중하위권이었습니다. 하지만 2학기에 들어서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급상승했습니다. 특히 수학의 경우, 반의 1인 1역에서 항상 수학 선생님을 맡을 만큼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학을 필두로 다른 과목의 성적들까지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둘째,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장난만 치고, 친구들을 괴롭히던 악동 이미지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모범생의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기현이의 이미지가 바뀌자, 신기하게도 친구 관계 또한 좋아졌습니다.


셋째, 기현이 스스로 성장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못 했던 자신이 공부를 잘하게 되고, 친구 관계가 안 좋았던 자신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게 된 것이니 얼마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뿌듯했을까요?


뿐만 아니라 기현이의 변화는 반의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선생님, 기현이는 절대 안 바뀔 줄 알았는데 바뀌는 것보고 충격받았어요. 저 진짜 이제 열심히 살 거예요.”

“기현이가 바뀌는 거 보고 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현대의 교육 시스템은 평균적인 민주 시민을 양성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따라서 주로 강점을 살리기보다는 모든 방면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평범한 교양을 지닌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부족한 점, 약점만을 들여다보게 되죠. 결과적으로 학기 초의 기현이처럼 자신의 강점은 모른 채, 약점에 사로잡혀 불행한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계시진 않는지요? 이야기에 나오는 기현이처럼 약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것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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