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의 목적은 ‘어른의 몸속에 갇힌 아이’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엄마 몰래 상담실에 온 소연은 자신이 여든 노인이 되어도 아이 같을까 봐 겁내고 있었다. 대학을 졸 업하고 입사한 첫 회사에서 소연은 동료들과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대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동기들과 밥을 먹으러 가긴 했지만, 두세 명씩 끼리끼리 걸을 때 끼지 못하고 늘 혼자 눈치 보며 뒤따랐다.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었다.
소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라고 칭할 만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20대가 된 지금까지도 직장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소연은 완충재를 가득 채운 방에 갇혀 자란 것이나 마찬가 지다. 엄마가 모든 걸 준비해 주었고, 소연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소연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와 모든 걸 공유하지만 정작 진짜 힘든 일은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어려움도 엄마와는 공유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냥 두려워했다.
소연은 작은 바람에도 휘청댈 만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단한 자기중심이 없다 보니 작은 흔들림에도 크게 휘청거리고 이겨낼 힘 또한 없다. 유년기라면 부모가 바람을 막아주겠지만 성인이다 보니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소연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진즉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야 했는데, 따뜻하고 좁은 포대기에 싸인 채 성장해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소연은 아무런 준비 없이 밖으로 내던져진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완충재로 가득하던 방에서 천천히 나와 자신의 두 발로 걸을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연이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엄마는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라며 겁을 주었다. 어떤 외부 활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대인 관계 맺는 방법, 자기표현 방법을 소연은 몰랐다. 엄마의 과보호 속에서 성공과 좌절 그 어떤 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랐다.
그 결과, 소연은 상사가 던진 사소한 질문에도 당황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사수가 업무를 알려주어도 머릿속이 하얘져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 이렇게 실수가 계속되니 소연은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걱정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게 하려던 엄마의 지나친 보살핌이 오히려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막은 셈이다. 과도한 보호가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다 보면 영혼이 파괴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 의존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이다. 부모와 한 몸 같던 융합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입장을 가진 ‘나’가 굳건히 자리 잡아야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연은 화법부터 어른의 형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한테 ○○했어요”, “엄마가 ○○했어요”라는 식으로 타인이 어떻게 해서 힘들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하고 싶어요”, “동료들이 나를 따돌려서 외로웠어요” 같은 자신의 입장이 없었다. 그런 소연이 엄마 몰래 상담받으러 온 것은 매우 큰 용기를 나 자신을 드러낸 행동이었다.
소연은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변하고 싶어요”라며 변화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담은 3회기 만에 막을 내렸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날 이후 소연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의 상태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상담자로서 뿌듯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나도 함께 성장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해피엔딩만 있지는 않다. 지금 소연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심리 상담의 목적은 ‘어른의 몸속에 갇힌 아이’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이 어린아이에 머무른다면, 어른들이 모인 세상에서 어린아이가 어른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모양새가 된다. 아이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 명의 어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