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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Aug 14. 2018

범행 현장

#041_흔적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딱 하나의 발자국, 현장에 남은 흔적이라곤 이것뿐. 시체에서도 주변에서도 다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표식일까? 지금 현장에선 의미 없는 증거다.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 이것이나마 이용하게 된다면? 흔적을 방송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놈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할 텐데, 다른 피해가 앞당겨질 위험이 높다. 무턱대고 보도하는 것도 사람들의 불안을 살 수 있다. 심리전은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


반듯이 누워있는 시체, 10mm 로프로 미라처럼 동여매고, 군데군데 매듭이 있다. 매듭들의 크기나 모양이 일정하고 잘린 형상과 길이가 일정하다. 강박증세가 있는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매듭이지만 누구나 아는 매듭법이다. 시체를 옮기는 용도였을 테다. 


사망원인은 목에 그어진 칼자국, 목으로 한 줄의 칼자국, 들쑤셔지지 않고 단 한 번 깊게 그어졌다. 시체는 깨끗이 씻겨있다. 살해 직후 경직이 일어나기 전 털을 깎고 씻겼을 것이다. 사후 경직까지 2~3시간, 범행 현장과 시체를 씻긴 장소는 아주 가깝거나 동일하다. 범인은 피해자를 알거나 면식일 가능성이 높다. 마취제와 같은 약물이 사용됐다면 예상이 틀릴 수 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인 가능하다. 주변 CCTV나 탐문조사를 해야겠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큰 소득을 얻긴 어려울 것이다.


현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범죄는 이전에 없었지만 초행 범이 아니다. 포박 매듭, 모두 깎인 털, 단칼에 베어진 목을 보니 능숙하다 못해 숙련자인걸 한 번에 알 수 있다. 이 수준에 오를 때까지 이 놈을 몰랐다니, 의도적으로 숨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인가? 청부살인이라면 이런 흔적은 남기지 않았을 터. 분명 미제 사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로도 찾지 못하면 해외까지 범위 확장을 염두해야 한다.


지금은 보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TV 뉴스로 전달하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문처럼 올리는 방법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추가 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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